숏폼의 시대에 느리고 불편한 글쓰기를 택한 사람들

매일 폰만 보던 아빠, 글쓰기를 시작하고 벌어진 놀라운 변화들

by 로니부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면, 나는 스마트폰 속 무한스크롤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릴스, 숏츠를 하염없이 엄지손꾸락을 돌려제끼는 꼴이 초점없는 동공으로 멍하니 빠칭코 레버를 잡아당기는 도박 중독자의 그것과 비슷했다. 10분짜리 유튜브를 볼때도 그마저 길게 느껴져 2배속으로 돌려보던 내가 싫어졌다. 언제부터 내 집중력이 이렇게 산산조각 났을까.


아이가 낮잠을 잘 때면 나는 습관적으로 폰을 집어 들었다. '오늘은 뭔가 의미 있는 걸 해봐야지' 다짐하며 유튜브를 켰지만, 어느새 인스타그램 돋보기창에 디지털풍화를 맞을대로 맞은 갈등/논란 불지피기용 커뮤니티 캡처글들을 무한정 소비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남은 건 공허함과 피로뿐.


3줄 요약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것들

'요즘 사람들은 글을 안 읽어요.' 정말일까?

우리는 하루 종일 텍스트를 읽고 있지 않나. 카톡, 인스타 피드, 각종 커뮤니티 글, 뉴스 댓글까지. 심지어 유튜브 영상 밑 댓글도 읽는다.


문제는 '무엇을' 읽느냐다.

우리는 '나쁜 텍스트'에 지쳐버렸다. 클릭을 유도하는 낚시성 제목, 자극적이기만 한 내용, 광고투성이 복붙 글들. 인터넷은 점점 쓰레기장이 되어가고, 우리는 그 속에서 진짜 읽을 만한 글을 찾지 못해 지쳐간다.


세계 최고의 천재들이 모인 메타, 구글에서 만든 알고리즘은 우리같은 대중들의 취향을 수집하고 좋아할 만한 것만 보여준다. 편하긴 하지만, 내가 모르는 세계로 이끄는 문은 점점 닫힌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글만 읽고, 비슷한 영상만 보며, 점점 더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간다.


글쓰기, 나를 찾아가는 여행

육아휴직 중 나는 처음으로 '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지? 나는 어떤 사람이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두려워하지?


이런 질문들을 정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글쓰기였다.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생각들은 흐릿하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글로 쓰는 순간 윤곽이 선명해진다. '아, 내가 정말 원했던 건 이거구나' '내가 화가 났던 진짜 이유는 이거였구나' 하며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들여다보고, 경험을 의미로 바꾸는 과정이다. 매일 쏟아지는 정보와 자극들 속에서 내 목소리를 찾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알고리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영상 시대에 책읽기가 더욱 소중한 이유가 있다. 책은 알고리즘이 없다. 배속 재생할 수도 없다.

이 불편함이 오히려 선물이다. 느린 속도로 읽으며 사색할 시간을 갖는다. 한 줄 한 줄 곱씹으며 내 삶과 연결해볼 수 있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작가와의 긴 대화와 같다. 그들의 사유와 경험이 고스란히 전해져, 내 안에 새로운 시각이 자란다. 15초 영상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깊이와 여운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쓴다. 수려한 문장력, 빼어난 글솜씨를 가진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릴스와 숏츠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 그래도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콘텐츠가 아닌, 오래 남아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


글쓰기는 나에게 정신적 닻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내 생각을 붙잡아두고, 내 목소리를 기록하고, 내 경험을 의미로 바꿔주는 도구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세상이 아무리 빨라져도,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는 변하지 않는다. 이해받고 싶고, 연결되고 싶고, 의미를 찾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가장 섬세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글이다.


오늘도 나는 빈 화면 앞에 앉아 한 글자씩 써 내려간다.

이 느리고 불편한 방식이,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저항적이고 의미 있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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