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가 나에게 가져다준 것
어릴 때부터 유달리 글씨 쓰는 걸 좋아했다. 학창 시절 공부할 때 나만의 필기 자료를 만드는 건 기본이었고, 글씨 쓰는 행위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수업 시간 선생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받아 적으며 공부하기도 했다. 쓰지 않으면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나였다. 글씨를 잘 쓴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곤 했다. (물론 나는 내 글씨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글씨를 잘 쓰는 것도 유전적인 면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나는 모계 유전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다. 엄마가 젊은 시절 서예를 배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고, 지금도 업무 중 정리해야 할 것이 있을 때 반듯하고 빼곡한 글씨를 채워 넣곤 한다. 글씨를 많이 썼기 때문인지 유전적인 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글씨 쓰는 걸 좋아한다는 건 확실하다. 이런 나에게 책 필사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인스타그램 탐색 탭에서 필사 관련 피드를 보고 관심이 생겼다. 무턱대로 좋아하는 책의 좋아하는 문장을 옮겨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출발한 나의 필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로 자리 잡았다.
필사라는 것을 접한 건 처음이 아니었다. 코로나 첫 해에 집에만 갇혀 있을 즈음 어디선가 필사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책상 옆 서랍장에 굴러다니던 노트를 꺼내 연필로 책의 몇 구절을 옮겨 적었다. 연필을 사용했던 건, 내가 본 필사 사진이 연필 필사였기 때문이었다. 이때 시도했던 필사는 작심삼일도 아닌 작심하루로 끝이 났다. 어쩌다 그때는 취미로 이어지지 못했던 건지 의문이었는데, 의외로 쉽게 답을 찾았다.
나는 무엇을 하든 좋은 도구가 있어야 흥미가 붙는 사람이었다. 그게 문구 관련이라면 더욱 그랬다. 예를 들어, 공부를 할 때는 집에 굴러다니는 아무 펜이나 꺼내 쓰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자주 쓰는, 나에게 알맞은 굵기와 펜촉을 가진 펜을 쥐어야 그제야 공부를 시작하곤 했다. 달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지만 그건 내가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얘기일 것이고, 아무쪼록 나는 소위 말하는 '템빨'이 필요한 사람이다. 이번에 필사를 시작할 때는, 고민 없이 바로 핫트랙스로 향했다. 내가 보았다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는 넓은 모눈 형식의 노트를 사용하고 있었다. 연초에 다이어리를 고르면서 핫트랙스에서 몰스킨과 로이텀 노트를 구경했던 게 생각났다. 그렇게 달려간 곳에서 내가 선택한 건 '로이텀 미디엄 노트 하드커버 블랙 도트'였다. 아직 필사를 시작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값비싼 노트를 산 건 지금 생각해도 조금 무모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다.
단순히 책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게 대체 어떤 도움이 된다는 걸까. 의구심을 가졌지만 아무튼 글씨를 빼곡히 쓰는 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었으므로 망설임 없이 읽고 있던 책을 펼쳤다. 밑줄을 쳐두었던 몇몇 문장을 옮겨 적기 시작했다. 글씨가 엇나가는 게 싫어서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종이에 새겼다. 몇 문장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열정이 붙었는지, 약 한 시간 반 가량을 쉬지 않고 써 내려갔다. 시간이 그렇게 지난 줄도 몰랐다.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방 한가운데서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글씨를 쓰는 게 그렇게나 즐거운 일인지 몰랐다. 아주 천천히 심혈을 기울여서 썼기 때문에 한 시간 반이 지났음에도 그렇게 많은 양을 쓰진 못했다. 그러나 내가 쓴 검은 글씨로 채워진 로이텀 노트의 두 페이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몇 구절을 옮겨 적다 보니 그 책에 애정이 생긴 듯한 기분이었다. 나의 기록 생활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