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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시안
Oct 19. 2024
친구야. 아름다운 중년 삶을 응원해.
천연 잔디 위 축구하는 맨발. 호통한 웃음소리. 반가운 손짓.
제주에 둥지를 튼 그 첫해
아이들 픽업하러 학교를 갔다가
학교 천연 잔디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맨발로 축구를 하고
있는
한 엄마를 만났다
.
학교
운동장에 터줏대감처럼 서있는
600년 된
팽나무
그늘에
앉아서
오랫동안
그녀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
아이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그녀에게
큰 호기심을 느끼며 다가가 말을 걸었다
.
나도 끼워줄래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그녀는 호탕한 웃음을 짓더니
들어오라
크게
손짓을 했다
.
나도 그녀처럼
냉큼
신발을 벗고 맨발로
달려 나가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신나게 축구를 했다
.
놀이가 다 끝나고
나무 그늘에 앉아 우리는 서로 인사를 했다
.
그녀는 나와 동갑이었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와 관심사와 가치관이 무척 닮
은 이였다
.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
친구는
경상도 사람으로
제주엔 나보다 7년
먼저
내려왔다고 했다.
내가 그 친구를 만난 무렵은
아이들
학교가 폐교
위기를 막 벗어난
딱 그
지점이었다
.
시골 작은 학교가 폐교
기로
에
놓여
있을 때,
친구와 그전 학부모님들이
학교에 일이 있다면
밭매던 호미 집어던져놓고
귤 따던 일손도 내려놓고
달려와서
손발
걷어붙이고 움직여
학교를 살려냈다.
가만히 지켜보니
그
친구는
대단했다.
그녀가
학교에서
학부모 활동으로
하고 있는
일
은
내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
그것은 내 새끼 위해 치맛바람 날리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얘기였다.
그녀의 활동 동기는 정말이지 순수했고
활동은
일관적이고
꾸준했다.
그녀는
여전히
학교
살리기
학부모
활동으로
금요일
책 읽어주기. 도서관
사서활동
학부모
책 토론 모임과
다양한 학교 문화
행사
기획과 참여
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나의 최대
관심사였고
내가
활동하
던
어린이 문학 공부
활
동인
어린이 도서연구회
멤버이자
전래 놀이를 연구하고 강의하는
'
놀이하는 사람들
'
회원이
기도 했다
.
언젠가
학교 운동회를 할
때
학부모 달리기
경기
에서
그 친구가 트랙 위에 서서 달리기를 시작하자
전교생
아이들이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와아 함성을 지르며
이모 힘내요! 하며
그녀를 응원을 했다
.
그때 나는
그동안 그녀가
아이들과
진정성 있게
튼튼하게
맺어놓은
관계를
확인한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게 씩 웃음이 나왔다
.
나는
그런
친구가 참 좋았다
.
그녀와 함께 지내다 보면
이 친구를
엄마로서
나의 롤모델을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
친구는
늘 에너지가
넘쳤
고
니 자식 내 자식
구분 하지 않고
작은 시골학
교
아이들
모두를
사랑했으며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
을
가지고
베푸는
너그러운 엄마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
우리는
그렇게
아이들의 그림자처럼
아이들 뒤에서 조용하게
시골학교
학부모 활동을 했다
.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은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는 말처럼
우리 주변에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학부모들이
든든한 성처럼 하나둘 모여
아이들의
따뜻한
울타리가 되었다
.
열정이라는 단어는
그
친구에게 가장 어울리는 단어였다.
친구를 떠올리면
나는
여전히
열정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
내면
깊은 곳에서 샘솟는
아이들을 향한
순수한
사랑과
열정
.
본인의 삶을 아름답게 꾸며가는
성실함
.
어린이 문학에 대한
꾸준하고
애정 어린
열정 같은
것들 말이다
.
나는 친구에게 글을 쓰라고 항상 얘기했고
친구는 나에게
너야말로 글을 써야 돼. 얘기했다
.
우린 서로의 그 말에
아이고.
내가 무슨 글이야.
나는 내공 쌓으려면 아직도 멀었다.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생각했다.
너
는 언젠가는 글을 쓸 인간이야.
엥간히 뜸 들이시고 이제 글 좀 내놔 보시지!
아이들을 키우다가
내
감정이 시험에 들어 상태가
엉망진창
일
때
,
학교 학부모 활동하다가
모임 안에서
내가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을
때
,
내가 그 친구에게 손을 내밀면
친구는
언제든지 한
밤중에도 우리 집으로 달려와
나랑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며
현명한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며
내
감정을 다독여주었다
.
혼자 걷기를 좋아하는 내게
우리
같이 올레길 걸을까?
그녀가 말을 건네었을
때
나는 흔쾌히 그러자 했다
.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나는 그
친구랑 올레 1코스를
걸었
다
.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오름 두
개를 넘고
숲길을 빠져나와
종달리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우리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
올레
1
코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다가
비 맞은 생쥐꼴이 된 서로를 보고 크게 웃었다
.
시간이 몇
년
흐르고
모임 안에서
워낙 다양한 사람들과
활동했던
나는
사람들로 인해
크게
마음의 상처를
얻은
적이 있었다
.
여러
에피소드들과
해명할 필요조차 없는
오해들과
이런저런
크고 작은
이유들
로
나는
10년
넘게
친구랑 함께 해왔던
모든 활동을 중단한 채
자발적인
사회고립자가 되어
시골
집에
딱.
들어앉아서
옴짝달싹 안 했다.
내가 감성적이고 예민한 과라면
그 친구는 냉정하고 호탕한
과였다.
우리는 닮은 듯 하지만
전혀 다른 구석들 또한 많았다
.
책
토론 모임에서
하나의 책을 두고 토론을 해보면
나는
감성
유전인자
가 워낙 촘촘해서
이야기를
감성적으로 해석할 때가 많았고,
친구는 자로 잰 듯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친구라
책에 담긴 이야기
도 그렇게 해석을 했다.
친구는 나에게
넌 너무 감성적으로 세상을 봐. 했고
난 친구에게
넌 너무 얼음처럼
냉정하
게 세상을 봐. 했다.
내가 정서적
데
미지를 크게 입었던
일련의
사건을 만났을
때
,
그때 나는
친구와 내가 다름을
처음으로
인정했
다.
누구나 자기 방식과 가치관대로
생각할 수 있고 행동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내가 그 친구를 좋아했던 것만큼
나는
친구에게
온전히 나를 이해받고 싶어
욕심을 부렸다.
그러나 친구도 나처럼 만만치 않은 자아와
단단한 가
치관을 가진 친구여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
간격은
좀처럼
좁히질 못했다.
여러
이유로
이제
대면
대면하게
되어버린
친구와 나는
차로 몇
분 거리 떨어진 근처에 살면서도
그렇게
서로에게 공간적 거리를 두며
또
몇 년을 보냈다
.
그러나 내
마음 한구석에는
가끔 그 친구가 어찌 지내나 궁금하기도 하고
여전히
종종
열정적인 친구
이야기가 들려올
땐
나 혼자 씩
웃으며
역시.ㅇㅇㅇ
답다. 생각했다.
어느
날.
은행일을
보러
읍내
에 나갔다가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그 친구였다
.
몇
년 만에 만난
친구는
여전히 쾌활했고
여전히 본인의
삶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가득했다
.
다만 변한 게 있다면
이마와 귀 주위에
눈에 띄게
늘어난
희끗거리는 흰머리들과
눈주위에
짙게
내려앉은 기미조각들이었다
.
아마
그
친구보기에 나
역시 그러했으리라
.
우리는
길거리에
서서
지난
몇
년간
의 공백기를
단 십여 분 만에
온갖 수다를 떨면서 메웠다
.
자식들 이야기
남편이야기
어린이 문학 공부
이야기
살아가는 나와 너의
이야기. 등등
너 되게 좋아 보인다.
친구가 말했다
너도 여전하구나.
기집애.
내가 말했다
.
친구는
여전히 어린이 도서연구회
공부를 하고
있었
고
여전히 학교 책 읽어주기 활동을 하고 있었다
.
친구는
활동 년수로만 벌써
20
년이
넘었다.
애기였던
늦둥이 넷째는 벌써
중
학생
이고
큰아이는 벌써
이십 대 후반
이었다
.
우리
첫째
랑 같은
반이었던
장발 소년의 주인공
고ㅇㅇ이! 셋째의
안부를 묻자
아직도
중2병을
완치하지 못하고
가끔
그
병
이 오셨다가 가셨다가 한다고 했다
.
우리는
장발 소년
고ㅇㅇ이
. 얘길 하며
낄낄거렸다
.
내가 평안해 보인다는 친구의 말끝에
내가 말했다
.
너랑 처음 만났을
때가
우리 삼십 대 초반이었지
.
그때 우리
참
대단했어. 그렇지?
너 알다시피 내가 사람들에 치어서
집에 틀어박힐
때가 사십 대
초반,
그렇게 인생에 대한 전반적인 권태기에 접어들더라
아주 아주
지독했던 우울기가 몇
년 가더니
이제는
조금씩
성숙기에 드디어 접어든 것 같다
.
자식들 문제도
내
삶의
복닥거림도
이제는 손에서 놓아야 할 것들이
보이고
요즘은
매사에
움켜쥐는 것보다
자꾸자꾸
내려놓은 걸 습관처럼 배우는 중이야.
자식들 걱정이야
이제
뭐, 지들 인생이고
자식들 인생걱정하느라
내가 지지고 볶고 우울하기엔
내
인생이 너무
불행한 거야.
나는
그렇더라고.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
너는 애가 둘이라 빨리 내려놓는
걸 배웠구나
.
야. 나는 애가 넷이잖아
나는 아직도 지지고 볶는다.
아조
죽겠다.
친구가 죽는소리를 하며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래도 나는 안다
.
그 친구는 매우 좋은 엄마라는 걸.
친구. 잘 지내. 하며
악수를 하고
각자 갈길로 돌아설
때
내 머릿속에는
십 년
넘도록
그 친구와 지내왔던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삭삭삭 지나갔다
.
고맙게도
이제는 우리 둘 모두,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을
아름다운
추억만으로
기억
할수 있게 되어
기뻤다
.
사람들로 인해 각자 다른 상처를
입고서
어둡고
무겁게
우울했던
인생
시기를
보낸
그 친구도 나도
,
이제는
각자
자리에서
평안하게
성숙한 아름다움을 지닌
중년을 보냈으면 한다
.
사랑하는 내
친구의
행복한
중년
삶을 응원한다.
keyword
친구
맨발
Brunch Book
화, 토
연재
연재
그 사람이 남긴 잔상
17
열정이란 말은 개나 줘요.전 절박해요.
18
제발 그러지마. 부탁이야.
19
친구야. 아름다운 중년 삶을 응원해.
20
이게 마랴. 아.쫌 갑옷 같어!
21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 돼지고기 3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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