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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Oct 22. 2024

이게 마랴. 아.쫌 갑옷 같어!

풋감에 천 주무르던 손. 뻣뻣한 갈색 개량 한복.

친한 동네 언니가

자기 남편 생일 선물로

감염색 옷을 한벌 지어 선물한 적이 있다.

그 형부 생일은 겨울이었는데

언니는 봄부터 남편 생일 선물 준비를 했다.


풋감이 열리는 여름 즈음에

우리 집 마당 감나무 감을 따가

좋은 천을 사다가 염색을 했다.

감염색은 풋감을 짓이긴 후에

옷감을 여러 번 잘 주물러 햇볕에 말리고

마른 천을 다시 물에 헹궈 널기를 반복해야 한다.


물에 헹구고 다시 땡볕에 말리는 걸 반복하다 보면 처음엔 인디핑크색처럼 연한 색이 진해져

연브라운색이 되고 더 진해지면 초콜릿색이 되었다가 나중엔 아주 짙은 갈색이 되는 거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얇고 부드러웠던 천이 점점 뻣뻣해지는데

그 변화정도는 본인의 취향에 따라 조절하면 된다.


아주 짙은 갈색을 낸 걸 보니

언니는 상당히 공을 들이고 여러 번 반복하여 염색을 한 모양이었다.

염색천이 다 준비가 되니 얼추 가을이 되었다.


언니는 형부의 옷을

개량 한복식으로 한벌을 지을 계획이었는데

겨울 옷이다 보니

염색해 둔 천에 솜을 넣고 누벼서

누빔 개량 한복을 만들 거라고 말했다.


드디어

겨울이 되었고

형부의 생일날이 되었다.


언니는 일 년 동안 형부 몰래 완성한

옷을 꺼내 형부 앞에 짠! 하고 내밀었다.

그 형부는 너무나 감동해서 행복한 표정으로

신나게 옷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갈색 누빔 개량 한복으로 갈아입고

우리 앞에 딱 섰다.

아내가 천을 염색해 손수 만든 옷을 입고서.


형부는 뭔가 어색한지 오른쪽 왼쪽 몸을 돌려

옷을 내려다보면서 큼 큼. 소리를 내며

두 손바닥으로 가슴, 배, 다리 옷자락을

쓱 쓱 쓸어내렸다.


... 좋네!

좋아.

아주 따따아앗 하네.


옷을 만드는데 들어간 언니의 정성과 시간에 비해

형부의 반응은 짧고 어딘가 맹숭맹숭했다.

형부는 마누라가 정성껏 지어준 옷이니

그런 마누라 앞에서 마누라 일 년 공로를 치하하며

아주 더 열성어린 리엑션을 선보여야 했으나

..좋네. 좋아. 했다.


일 년 옷 만들기 완결판처럼

선물한 옷을 입은 형부를

만족스럽게 쳐다보던 언니가

흐뭇하게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갔을 때,

형부는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어기적 어기적 걸어 나에게 다가오더니

귀에 대고 아주 조용히 속삭였다.


있잖아.

이게 마랴.

다아 좋은데 쫌 갑옷 같어!

아. 총알도 못 뚫겠어!


컥.

흐흠. 

갑.. 갑옷이라고요?

하기야,

나도 이제야 하는 말이긴 하지만

말이야 바른말이지

형부 옷이 그래 보이긴 했다.


이제 막 지은 옷이니

천은 길들여지지 않아서

녹슨 철판처럼 딱딱하고 판판했고

뻣뻣한 윗도리 두 어깨는 하늘로 붕 뜨고

팔은 옆구리에 붙이질 못하고

어정어정 15도 각도로 벌어져 있었다.


그나마 윗도리는 괜찮아 보였는데

천을 누벼  만든 바지는 그 모습이 더해서

어찌나 뻣뻣하고 벙벙한지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가는

또깍. 하고 딱 부러질 모양새였다.


이건 뭐.

누가 봐도 갑옷이었다.

모양새도 갑옷이요.

색깔도 갑옷이었다.


언니가 정성을 다하느라

여러 번 담글 질 하여 염색한 덕에

천은 점점 더 뻣뻣해지고

남편이 추울까 봐 솜을 넣어 누빔질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진정한 갑옷이 돼 분 것이다.


영화 속 장군들이 한겨울 전투를 치를 때

입고 나오던,

진갈색 천에 두툼한 누빔으로

바둑판 모양처럼 야무지게 박아놓은

딱 그 모양새였다.

다만 바둑판 박음질 선위에 쇠 징이 없다뿐!


언니는 전쟁터에 나갈 없는 남편을 위해

총알도 못 뚫을 갑옷을

일 년 동안 만든 거다.

그래도 대단하지 않은가.

남편 생일 선물로 일 년을 준비한 정성이.


비록 그 옷이 갑옷 같긴 했으나

마누라가 정성껏 지어준 옷이니

형부는 그런 마누라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갑옷을 부지런히 입고 다녔다.


분명하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동네방네 갑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여서

마누라를 기쁘게 해야 한다는

의무와 사명감을 가지고 있던 게 분명했다.

형부는 사방팔방으로 갑옷을 입고 다니며

속으로 혼자 울었을지도 모른다.


형부는 친한 친구들 가족 모임에도

갈색 갑옷을 입고 나왔고

장을 보러 나갈 때도

갈색 누비 갑옷을 입고 나갔다.


사람들이 형부가 입은 갑옷의 스토리를 듣고서

언니를 칭찬함과 동시에

너나 할 것 없이 옷이 멋지다. 칭송하면

형부는 씩 웃었다.

그들 어느 누구도

그 옷이 갑옷 같다는 얘긴 하지 않았다.

때론 하얀 거짓말이 사람을 살리는 법.


매년 마당  감나무에 감이 열리면

나는 우리 집 감나무 풋감을 따다가 짓이겨

천을 주물럭거리던 언니와

그렇게 만들어진 아주 어색한 갑옷을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부지런히 입고 다니던

착한 형부 모습이 떠오른다.


그 언니와 형부 안 본 지가 오래됐다.

여전히 꽁냥꽁냥 잘 살고 있으리라.

형부는 그 갑옷을 여즉 잘 입으실 거고.

 십 년 지나도 변함없을

그 갑옷의 견고함을

내 익히 잘 알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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