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 지르며 돌아가는 전자렌지를 보며

by 시안

물부엌에 내어놓고

12년째 쓰고 있는 전자렌지는

이젠 늙어 명이 다해가나 보다.


전자렌지를 잠깐 돌릴라치면

작동버튼을 누르자마자

끼웨애애애에에애애액

온 힘을 다해 비명을 지르며 운다.


그 소리는 높은 도 음에 맞을법하고

귀청이 나갈 듯 날카로운 데다

회전판이 돌 때 쇳소리까지 더해진다.


쉭쉭 끼에애웨애애에에애액

쉭쉭 깨애에애에에애액

이렇게 말이다.


전자렌지가 쉭쉭 끼에에에에에엑 할 때

전자렌지 비명의 음정은 이렇다.

쉭쉭(낮은 도, 낮은 도)

끼에웨에에에엑( 높은 도오오오오)

쉭쉭(낮은 도, 낮은 도)

끼웨에에에엑( 높은 도오오오오)


물부엌 전자렌지가 이렇게 비명을 지를 땐

전자렌지 밑 전기방석을 떠나지 않는 릴리조차

그 소리가 감당이 안되는지

물부엌 밖 마당으로 피신을 한다.


전자렌지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최선을 다해 맡은 바 임무를 다한다.

남편은 전자렌지 상태를 며칠간 지켜보다가

저녁 먹는 자리에서 가족들에게 읊었다.


우리 집에는

세상 차암 힘들게 사는 존재가 있다.


2위는 아빠.

1위는 물. 부. 엌 전. 자. 렌. 지!



훠미!

우리는 아빠가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나. 방심하다

허를 찌른 한마디에

농담이 아니라 눈물 빠지게 웃었다.


아니.

2위 아빠는 그렇다 치고.

엉뚱하게 물부엌 전자렌지가 뭐냐고.


세상살이 고달픈 존재들에 대한

남편의 고찰은 그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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