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꽃 봉오리 싹과 이슬 젖은 직박구리 머리통.
집 뒤 초원을 향해 나있는 주방 유리창에는
일 년 사이 무성히 자란 복숭아나무가
창 깊숙하게 가지를 뻗었다.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김치찌개를 끓이다가
과일을 깎다가
한 겨울 눈이 쌓일 때부터
저 나뭇가지에 점처럼 매달린
꽃 봉오리 싹을 지켜보는 중이다.
하루 하루
해가 들고 나며
비오고 하늘 걷히는 날이 지나
복숭아꽃 봉오리 싹은
아주 조금씩 조금씩 통통하게 차올랐다.
몇 번의 냉기도는 아침을 더 보내고 나면
그야말로 완연한 봄날에 들어설 것인데
저 꽃 봉오리 싹이 어느 날에
툭 터져 오를라나. 기대하면서
매일 주방너머 나뭇가지를 본다.
집 둘레 라인에는 편백나무가 울타리대신 빽빽하고
편백나무 밑으론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있다.
사실 처음엔
주방창 밖 저 어린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관심도 없었다.
재작년 봄 어느 날
창을 내다보니
저 나무 가지에 진 분홍색 꽃송이 하나가
화사하게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꽃은 독보적으로 크고 예뻤다.
매화꽃 한 송이보다 서너 배 큰 꽃송이.
딱 한송이였다.
나무는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는 사이
처음으로 꽃 한 송이를 피워 올렸다.
나는 그 예쁜 꽃에 홀랑 빠져서
저 꽃이 대체 무슨 꽃인가 궁금하여
검색을 해보니 복숭아꽃이었다.
우리 가족 누군가가 베어 먹고 던진
복숭아 씨앗에서 싹이 나고 자라
저리 큰 나무가 된 것이다.
나무는 어린 나무여서
처음엔 딱 한송이만 피었다가
그다음 해는 12송이 꽃이 피었다.
2년간 꽃만 그리 피다지 곤
아직 열매가 맺히진 않았다.
복숭아나무는 잎사귀 하나 없이
꽃만 가지 위에 덜렁 피었다가
꽃이 질 무렵에야
가지에 새싹들이 돋는다.
꽃이 다 지고 나면 나뭇가지엔 싹들이 자라
연하고 진한 초록 잎이 무성해진다.
마치 꽃이 먼저 피고 싹이 돋는 벚나무처럼.
올해는 가지에 매달린 꽃 봉오리 싹들이 촘촘하다.
저 꽃들이 일제히 피어오르면
주방 유리 창은 얼마나 화사할까.
이러한 기대를 하며
매일 복숭아 나뭇가지를 내다본다.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고
미역국을 끓이다 간을 보며 한 수저 떠서
스읍 맛을 보며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직박구리 한 마리가 복숭아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복숭아꽃 봉오리 싹들 틈새
가느다란 나무 가지에 앉은 직박구리는
이제 막 가지 위에 내려앉은 건지
위아래로 출렁출렁 흔들리며
나를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었다.
직박구리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직박구리 옆통수를 보니
이슬에 젖은 머리털이 삐쭉삐쭉 거리는 것이
막 자고 일어난 아이 부스스한 머리통 같았다.
저 뒤쪽 낮은 동산
그리고 동산과 우리 집 뒤뜰 사이에 자리 잡은
연한 라이그라스가 잔디같은 연초록 초원.
주방 창은 풍경을 담은 액자 같다.
액자 오른쪽 위 귀퉁이에서부터 왼쪽 중앙을 향해
사선으로 불규칙하게 뻗어 내린 가지와
토돌 토돌 한 콩알처럼 달린 꽃 봉오리 싹들.
직박구리는 액자의 중앙 오른편 가지에
나를 대면하고 앉아 부리를 가다듬었다.
직박구리야. 안녕?
눈 내리던 추운 겨울은 어찌 지냈니?
너를 보니
이젠 정말 봄이 오나 보다.
봄소식을 전해줘서 고마워. 하며
마음속으로 인사를 나누자마자
직박구리는 왼편 꾸지뽕나무 쪽으로
후드드득 날아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