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각자의 '꼴보기 싫은 놈'을 강제소환하며.
말들도 베프가 있고 상극이 있다.
마장 하루 일과 중
우리말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초원으로 나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풀 먹기 시간이었다.
그때는 항상 베프 친구 말 두 마리가 같이 놀도록
초원에 풀어줬다.
내 말들의 베프 리스트는 이렇다.
대단이 와 엠원.
(서열 1위와 그의 진정한 꼬봉이자 입안의 혀.)
미르와 까미.
(과거 일진과 일진옆에서 가오 잡고 껌 좀 씹던 그녀)
쿤타와 혜성이.
(철없는 초딩 같은 순딩이와 한숨쉬며 걔를 돌보는 누나)
이 조합들이 팀을 이뤄 초원에 나가면
그 모습은 흔히 액자에서 볼수있는 그림 그 자체다.
초원위에서 평화롭게 풀 뜯는 말 두마리.
제일 좋아하는 베프랑
초원에서 콧구녕으로 킁킁 신선한 바람냄새 맡으며
연하고 부드러운 저 많은 풀들을
배 터지도록 먹는 시간.
근심걱정없는 세상 행복한 시간.
친구야. 이 풀 좀 먹어보렴.
어찌나 연한지 입안에서 즙이 빵빵 터지는구나.
내 근처에서 풀 뜯어라.
들개가 돌아다니드라.
친구야. 내 옆으로 와.
거기는 돌밭이라 풀이 별로 없어.
저기로 가면 좋은 풀이 있던데
우리 같이 갈래? 좋아.
와 같은 대화를 나눌것이다.
내가 그들의 대화를 들은건 아니나
그들이 초원에 나가 풀을 뜯을 때
벌어지지 않는 그들사이의 거리가,
울음소리 한번 들리지 않는 평화로움이,
두마리가 어깨를 나란히하고서 슬렁 슬렁 걸어가
연한 풀 많은 큰 나무 밑에 같이 있는 모습이,
아. 지금 쟤네는 이런 대화를 하겠구나
상상하는 거다.
그니까 말하자면, 근거있는 상상인거지.
만약에 내가 말 두마리가 상극인걸 깜빡잊고서
별 생각없이 그 두마리를 초원에 풀어준다면
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그 다음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 말들의 상극 리스트는 이렇다.
대단이와 미르.
(현재 일진과 과거 일진.
서열싸움 죽도록 한판 함.)
까미와 혜성이.
(껌 씹고 침 좀 뱉던 일진녀와
세상 극! 도도하고 까칠한 그녀)
엠원과 쿤타.
(강약약강 중딩 형아와
누가 줘패는대로 맞고 다니는 순딩이)
내가 저 상극 조합중 미르.라고 상상해보자.
(미르는 대단이에게 서열 1위 싸움에서 지고는
대단이 그림자만봐도 이를가는중이다.)
초원에 풀어줘서 기분 좋게 나왔는데
엄마가 내 베프가 아니라
나랑 상극인 저 놈 대단이를 데리고 온다.
엄마.
아니. 걜 왜 끌고와?
엄마가 끌고오는 말이 자기 상극인
그 놈인걸 확실히 확인한 순간.
앞니로 끊어 어금니로 갈아 씹고 있던 풀을
침뱉듯이 한 번 퉤! 뱉고는
아아나. 돌겠네애.
아. 하필이믄 저 시끼야. 할게 분명하다.
쟤가 꼴뵈기 실은데는
처음엔 백만가지 이유가 있다가
나중엔 이유도 없어진다.
그냥 내가 사는 지구에서 쟤가 숨만 쉬고 있어도
아. 저 꼴뵈기 싫은 놈.소리가 절로 나오는거다.
사람도 그러지 않던가.
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개에게도 꼴보기 싫은 옆집 개가 있고
고양이에게도 꼴보기 싫은
저 빌어먹을 고양이가 있는거다.
풀을 뜯어 먹다보면
한자리에서만 먹는게 아니라
앞다리 두개와 뒷다리 두개가 인도하는 대로
주둥이는 땅에 붙이고
잔디깍이 기계가 우왱 휩쓸고 지나가듯이
잔디깍이처럼 풀만 쳐다보며 돌아다닌다.
돌아다닌다.
돌아다니다가.
저 꼴보기 싫은 놈이 자기도 모르게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와 나와 거리가 좁혀지거나
나도 모르게 저 꼴보기 싫은 놈 근처로 내가 다가가는 순간.
그렇지않아도 아까부터
저 꼴보기 싫은 놈이 신경쓰이던 바,
풀 뜯으면서 살짝 곁눈질을 했는데
내 시야 반경에 똭! 들어와있는 저 놈.
으득 으드득 질겅 질겅
으득 으득 으드득 질겅 질겅.하며 풀뜯다가
오른쪽 305도 방향으로 눈깔을 돌렸을 때
(말 두 눈깔은 앞 정면과 뒤쪽 15도를 제외하곤
330도 방향은 다 보인다.)
보인다. 대문짝만한 궁뎅이 두쪽이!
전투적으로 풀 뜯던 입을 멈춘다.
저 놈 궁뎅이가.. 나를 보고 있단 말이지...
놈의 궁뎅이가 나를 향하고 있다는걸 느낀 순간.
태어날때부터 하나님이 말에게 가르쳐준대로
말은 즉각 생각한다.
뭐야!
저 놈 궁뎅이가 지금 날 보고 있쒀?
어.그래.
오늘 우리 둘중 하나 주님 만나러 가보자!
하며 급발진을 한다.
저 꼴보기 싫은 놈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그냥 이쪽 풀을 뜯다가
저 쪽 풀을 뜯으러 방향전환차
궁뎅이를 돌린것 뿐인데.
그래서 상극인것이다.
난 그냥 숨을 쉬어야 사니까
숨을 쉬었을 뿐인데
숨쉬면서 돌아다닌다고 쌈이된다.
저 풀을 먹기 위하야 내 궁뎅이를 돌렸을 뿐인데
니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냐. 하며
쌈이 나는거다.
원래 상극끼리는
내 언젠가 기필고 저 놈에게 혼구녕을 내주리라
작정하며 머리속으로는
수백만가지 경우의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미르도 그렇다.
상상속에서 저 빌어먹을 놈을
이렇게 뚜둘겨 팼다가
저렇게 매쳤다가
뒤집어 물구나무를 세워 고문을 했다가
별별 상상을 다하며
디데이 쌈날을 대비한다.
시뮬레이션 돌렸던 수천만가지 경우의 수중에
바로 오늘!
저 놈이 궁뎅이 돌려 뒷발 후려차기를
먼저 꺼내들었네!라고 판단한것이다.
그 다음은 어찌되는 것이냐.
저 놈이 내 존재를 발견하기전에
아주 조용하게 천천히
저 놈 오른쪽으로 신중하게 움직인다.
숨도 참는다.
네 발 달린 말이라 쉽진 않겠지만 할수만 있다면
네 발굽을 세워 까치발로 다가가야 한다.
사삭거리며 움직이는 소리라도 난다치면
저 놈은 태어날때부터 하나님한테서 배운대로
뒤에 누가 있던지 없던지
일단 뒷다리 관절을 펴고 쭉 한방 날릴터이니.
방심했다간 주님앞으로 가는 건
저 놈이 아니라 내가 될수도 있다.
저 놈 몸통이 시야에 들어왔다.
풀을 뜯던 앞니는
물어뜯던 상대를 바꿔
저 꼴보기 싫은 놈의 옆구리를
크게 한 입 문다.
(말도 비명을 지를땐 히잉.만 하지 않는다.
끼액.꿰웨앸.끄으으앸.지른다.)
그 다음은 초원의 무협 활극이 펼쳐진다.
서로의 저 망할 놈의 자식을 향해,
앞다리 두개를 들고 일어서서 두 주먹을 휘두르기.
도망가는척 달려가다가 뒷발 이단 날라차기.
오른쪽 뒷발의 접힌 무릎 관절을 최대한 쫙 펴서
저 상극 몸통에 뒷발 내지르기.
이빨로 덥석 물기.
문 이빨로 저 빌어먹을 놈 피부 조각 뜯어내기.
히이잉.고통에 질질 짜게 만들기.
끼윽.비명지르고 나서 저 놈도 비명 지르게 만들기.
히이이잉! 저리가. 시꺄.소리지르고 도망가기.
이이히힝! 너 오늘 죽은 목숨이다.하며 쫒아가기.
쌈판은 벌어졌다.
쌈판 시작전 한 놈이 다짐했듯이
오늘은 두 놈중 한 놈이
주님 전에 나아갈 때까지
한판 붙어보자.했으므로.
상극인 저 두놈은 오늘 끝 짱을 볼터다.
자.다시 저 놈들을 따라가보자.
상극인 두 놈이 눈에 뵈는게 없이
흥분하여 도망가고 쫒아가다가
초원 경계선을 벗어나고
마장 영역을 벗어나더니만
시멘트 샛길을 달려가
저 2차선 국도를 질주한 다음
급기야 8차선 도로위로 뛰어든다.
말 눈은 휘둥그레지고 이젠 쫒아오는 저 놈보다
저 요상한 차들이 더 무섭다.
급브레이크소리에 말이 놀라 옆차선으로 뛴다.
저 말과 이 말은 초원에서부터 둘이 싸우다가
일이 이지경이 된건 다 까먹고
차들과 경적소리와 사람들 비명소리에 너무 놀라
허연 흰자위를 들어내고서 발발 떠는것이다.
차 한대가 달려오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말을 발견하고는 핸들을 급히 튼다.
말 두마리는 차의 헤드라이트 빛과
차 경적소리에 혼비백산하여 차들 사이로 뛰어다닌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이유로 8차선 도로위에서
난동을 피우는 말두마리를
제이아이삐이이에스 제주 뉴스 속보에서 보는거다.
시청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긴급속봅니다.
제주 서쪽 ㅇㅇ마을 입구 8차선 도로위에서
도로위를 질주하는 말 두마리때문에 도로가 통제됐습니다.
경찰은 흥분하여 날뛰는 두마리 말을
경찰차로 막고 주변 교통을 통제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현장에 나가 계시는 이기자?
지금 상황 어떻습니까?
아.네. 이기잡니다.
지금 뒤로 보이시는 것처럼
말 두마리가 8차선 도로에서 날뛰고 있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끼이이이익!
뽱. 빵 빵
-(현장음.)경적 누르지 마세요. 말 놀래욧!-
말 두마리가 승용차쪽으로 달립니다.
-(현장음.) 아 거기 흰차. 정지.정지! 워워
앗. 말이 벌떡 일어나 두발로 섯습니다.
(현장음)아줌마.핸드폰촬영하지마세요.비켜욧!-
지금 현장은 보시는 바와 같이 아수라장입니다.
지금 막 말 주인이 왔습니다.
말을 겨우 진정시킵니다. 말이 트럭위에 탑니다.
말이 떠나고 현장 상황이 정리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현장에서
제이.아이.삐이이.에에에쑤. 이기자였습니다.
왜 가끔 뉴스에 나오지 않던가.
종종 말 몇마리가 인근 승마장에서 탈출하여
도로를 방황하는.
그게 다 이런 이유로 걔네가 도로로 나온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트럭을 타고 털래 털래 마장으로 돌아온
상극 미르와 대단이는 서로를 째려보면서
트럭에서 내린다음
화나간 엄마가 이느므시끼들.하면서 끌고 가는대로 끌려가 마방에 쳐 박힌다.
그리고 화가난 엄마한테서 듣는 말은 이렇다.
니네 몇일동안 초원엔 절대 못나가.
이느므시끼들아.
그때 마방 바로 옆칸에 있던
상극인 두마리의 각자 베프 말들이
히이이이잉 거리면서 각자 베프 말에게 묻는다.
풀 뜯어먹으러 초원나간거 아니었어?
도대체 쟤하고 어딜 갔다온거야?
트럭까지 타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