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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Sep 26. 2024

제가 삽질을 쫌 합니다.

말똥 치우지 않는 자, 말 타지도 마라!

승마를 전공하는 학부이다보니

대부분 학교 생활은

중산간에 있는 학부 전용 대규모 실습마장에서 이뤄졌다.

아침 8시50분부터 오후 5시 반까지 말이다.

죽으나 사나 그 시간엔

중산간 실습마장에 갇혀 있어야 했다.

비선택적인 인간들과 강제적으로 하루죙일 모다 묶여서 말이다.


중산간에 요새마냥 자리잡은 실습 마장은

전국 최고 시설이었다.

30*80미터 가량의 멋드러진 실내 마장이 있었고

좋은 모래가 두툼하게 깔린 야외 마장들이 여러개 위치해 있었다.


하루 일과를 들여다 보면

학생들이 말을 타는 교육 시간보다

말들이 쉬는 마방을 청소하는(말똥치우는) 시간이 더 많았다.


복도 양 옆 11자마방이 조로록 들어앉은

마사는 전체 두 동이었고

하나의 마사동은 총 20개의 마방이 있었다.


전체 마방은 총 40개여서 말들이 쉬는 마방을 관리하는(말똥 치우는) 일은

매일 아침과 오후, 학생들 노동의 몫이었다.

이외에도 야외에도 말들이 쉬고 있는 크고 작은 울타리들이 있기에

그곳 말똥 치우는 것도 학생들 몫이었다.


실습 마장에 와있는 학생수는

그날 학년 별 수업 시간표에 따라 달랐다.

학생수가 많은 날은 일의 몫도 1/n이니 좀 수월했고

학생수가 적은 날은

혼자 마방 10개 넘게 치운 날도 많았다.

나이 많은 만학도라고 열외는 없었다.


전공 실습 수업때 말을 타기 위해서는

누구나! 무조건!  마방 청소는 필수였다.

마방 청소를 안한(말똥 치우지 않은) 인간은

대 말을 탈수가 없었다.

말똥 치우지 않는 자, 말 타지도 마라. 였다.

말똥 앞에서는 일말의 자비라곤 없었다.


 빨강색 바탕검은 서예체 글씨로

아주 강력히 휘갈겨  있는

말똥치우기 ㅇㅇ일 전투!

북한 노동 선전문구와 비슷한,

실습 마장 말똥 철학.


-말똥 치우지 않는 자, 말 타지도 마라!-


학교 실습 마장 벽면에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있지 않았다 뿐이지,

뉴앙스는 북한 거리 벽면에 대따 크게 써있는

노동 선전문구와 다를바 없었다.


말똥 치우지 않는 자, 말 타지도 마라! 는

이 곳의 철학이자 사상이자

무슨일이 벌어져도 철저하게 지켜내

엄격한 룰이었다.


난 분명 승마를 전공하러 왔는데 입학한지 딱 한달이 지나자 말똥 치우는 전문가.

삽질의 귀재가 되어있었다.

살다 살다 그 많은 말똥은 언제 치워 봤을것이며

그 숱한 삽질은 또 언제 해봤겠는가.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고

가끔 우연치 않게 외부 환경때문에

본의 아니게 본인의 숨겨진 재능을 찾아낸다.

삽질이 그와 같았다.

나이가 20대건 40대건 50대건

이 학교 실습 마장에서는

모두가 한결같이 말똥 치우는 선수가 되어있었다.


다만 나이는 못 속여서

이것이 평생 처음 해보는 육체 노동이고

생전 그렇게 쓴적 없던 근육이라 놀랐던지

병을 달고 살았다.


삽질할 때 사용하는 나이 오십줄 어깨 근육과 손목 인대는 맨날 맨날 문제였다.

항상 삐그덕거리니 한의원을 필수로 다녔고,

몸이 아플때마다 이를 갈면서도

기어이 말똥을 치우고 말을 탔다.


규칙은 규칙이고, 수업은 들어야 하고

학교는 다녀야 하니까 말이다.

나는 생계형 만학도기 때문에.




한의원 침과 뜸, 물리 치료는 필수였

정형외과 신경주사는 분기별 이벤트였다.

삽질의 늪은 도망나올수 없었다.

그 생활이 매일 이어지니 증상이 좀 좋아지면  아프고 좀 좋아지면 또 아팠다.

어깨전문 정형외과를 몇 달 연속으로 찾아 갔더니 젊은 의사가 급기야 나더러 물었다.


-저어.선생님.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길래 어깨랑 손목이 늘 이 지경이에요?-하길래

1도 거짓됨 없이 답했다.

의사가 묻잖은가.

어쩌다가 내 어깨가 늘 이지경이냐고.


-아. 네에. 제가 삽질을  합니다.-

-눼애? 삽질이요오?!-

음. 그래.

놀랄만 하다.

이해한다.


의사는 나를 치료하며 잠시 혼자 생각에 잠겼을 것이다.

멀쩡하게 생긴 나이 오십 다 된 여자가

몇 주에 한번, 한 달에 한번 계속 온다.

약 주고 주사 주고

물리 치료해줘도

증상이 좋아질만 하면 오고 좋아질만 하면 또 온다.

어깨와 손목이 아프다고 계속 찾아온다.

삽질 때문이란다. 삽질...사ㅂ.....


어떨땐 이 여자는 친구들이랑도 같이 온다.

친구들 나이 대도 비슷하고

허우대 멀쩡하게 생긴 여자들이다.

근데 참 희한하다.

친구라며 같이 온 여자들도

증상과 아픈 부위가 이 여자랑 똑같다.

친구라는 그 여자들도 어깨 근육과 인대가 문제고 손목이 문제다.


같이 온 친구라는 여자에게도 똑같이 물어봤다.

-저어. 선생님.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길래 어깨가 이 지경이에요?-

-아.네. 제가 삽질을 쫌 해요-

대답도 똑같이 한다.


진짜 궁금하다.

망설이다가 물었다.

-저어..혹시. 건설 현장에서 삽질을 하시나요?-

-건설 현장은 아니지만 삽질은 합니다.

전 말타는 사람입니다.-

-눼에에애? 말.이요오?-

궁금한걸 풀자고 질문했는데 더 궁금하다.

아니 말타는 사람들이라는데 삽질은 왜 하는걸까.

무슨 삽질을 얼마나 해대길래

이 사람들은 내 단골 환자가 되었나.


내가 의사라 해도 그 병원 간호사라 해도 궁금했을 것이다.

침 잘놓는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아 시내를 돌아다닐때마다 그 한의원 원장님들도 똑같은 질문을 했고 나는 똑같은 대답을했다.

한의원 원장님들은 항상 똑같은 타이밍에 똑같이 놀랬다.

마지막으로 정점을 찍듯이,

저는 말타는 사람입니다. 하면

늘 마지막은 그랬다.

-눼에에애?? 말.이요오??-




말 타는 전공이다보니 낙마는 일상이었다.

말에 밟히고, 말에 차이고, 말에 물리고,

말에 밀려 넘어져서 늘 누군가는 어디가 다쳤고 부러졌고 아프고 그랬다.

팔이든 다리든 어디든간에 기브스를 한 놈도 꼭 한명쯤은 있었다.

일년 내내 거의 언제나 말이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마방을 치우는 삽질을 하다가

만학도 어깨와 손목이 아작 났다는것은

별일도 아닌 일이어서

어깨랑 손목이 아작이 나도

학교 노동 루틴에서 예외가 될수는 없었다.


진심으로 여긴 북한인가 싶었다.


말똥 치우는 삽질 하다가

누구 하나 죽어 나가도 눈하나 꿈쩍하지 않을

중산간 독립적인 공간이었다.


남편 덕분에 (우쒸!)

등 떠밀려서 강제로 다니게 된 학교생활치곤,

유배 생활 같은 학부 생활은

정말 나같은 중년 만학도 학생이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일정이었고 시스템이었다.

-남펴어어언!!!!-


촤! 근데.

오기하면 나다.


칼 휘두를 날을 기다리며

드그륵 드그륵 조용히 고수가 칼을 갈듯이

난 조용히 이를 갈았다.


뭐야 이거.

죽기 아니믄 까무러치기야?


좋아.

받고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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