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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직원의 숙명, 이산가족

내가 어쩌자고 지방이전한 공공기관에 지원했을까

by 데자와

내가 공공기관 경력직으로 입사한 나이는 서른 한 살이었다.


당시 나는 싱글이었고, 미래를 약속한 사람도 없었으므로 지방이전한 공공기관에 입사지원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당시 다니고 있던 직장을 탈출하는 것이 최우선이었고, 공공기관 합격 이후에는 '지방 가서 한 3~4년 다니다가 다시 서울로 이직하면 되지'란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만이었다.





홍보 경력직으로 입사한지 1년여 만에 사업부서로 방출되고 나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02화 공공기관에 '홍보' 경력직으로 입사했습니다만?)


내가 원한 것은 '홍보'일로 밥벌이를 해먹고 사는 것이었지, '공공기관 직원'을 목표로 이 회사에 입사한 것이 아니었기에 본격적으로 이직 서류를 넣었다. 서울에 있는 사기업은 물론 서울 및 서울과 근접한 지역에 있는 타 공공기관 경력직에 입사원서를 냈다.


하지만 결과는 매번 '탈락'.


사기업에서는 1차 면접 이후로 나를 더 이상 부르지 않았고, 공공기관 경력직은 매번 최종 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같은 공공기관 분야로의 이직이 더 수월할 줄 알았는데 최종면접에서 면접관들은 항상 "OO씨가 다니는 회사도 굉장히 좋은 회사인데 왜 이직하려고 해요?"라며 퇴짜를 놓았다. ('니가 이 회사 다녀봐라, 좋은가')


그렇게 최종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지는 사이 시간은 흘렀고, '이제 혁신도시에서 평생 일만 하다 독거노인으로 죽겠구나'라고 하던 찰나에 지금의 배우자를 만났다.


결혼을 약속하고 이직에 성공하지 못한 회사에 내가 내민 카드는 '서울 분원 근무 신청'이었다.


전국 사업소를 두고 순환근무를 하는 타 공공기관과 달리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서울 곳곳에 '분원'을 두고, 지방 '본사'에서 몇 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 중 희망자에 한해 '잠시' 서울 근무의 기회를 주었다.


이 '잠시'라는 건 최대 3년. "네가 지방에서 3년 이상 근무했으니 서울로 한 3년 정도는 다시 보내주마. 3년 후에는 얄짤없이 다시 혁신도시 근무다"라는 뜻이었다.


이말인즉슨 결혼, 출산, 개인사정 등을 이유로 서울행 티켓을 얻었다고 한들, 3년 후에는 여지없이 본사로 끌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3년 정도 본사에서 근무했다가 잠시 서울로 보내주고, 그리고 다시 본사에서 3년 정도 일을 시키다가 또 한 번 서울을 보내주는 그런 구조였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 싶을 때 서울로 한 번 보내서 숨통 트여주는 느낌이랄까.


기혼자인 내가 맞닥뜨린 지방근무는 싱글 때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2014년부터 시작된 공공기관, 공기업 지방이전은 그 해에 94개의 공공기관을 이전시킨 것을 시작으로 매년 차근차근 진행되어왔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지방이전을 하지 않고 서울에 남아있는 공공기관들은 정말 한 줌이자 '유니콘'으로 분류될 정도다. 이 외에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지난 10년 사이 서울 부지를 팔고 전국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한전이 노른자 강남땅을 팔고 떠날 때 화제가 되었던 것만큼은 아닐지라도 한전 외에 수많은 공공기관들이 자신들의 서울 건물을 처분하고 지방의 혁신도시로 이전했다.


싱글일 때에는 '까짓것 지방에 사는 거 어떠냐'하는 마음이었지만, 배우자를 만나 애까지 생기니 '지방이전한 공공기관'으로 입사한 과거의 내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집을 살 때 '탈 서울'하면 다시는 서울에 입성 못한다는 부동산 명언처럼, 이미 서울 밖으로 나간 지방 공공기관 재직자를 거둬주는 새 회사는 없었다.


서울행 티켓을 얻어 3년 동안 서울에서 근무하며 결혼, 출산, 휴직 코스를 밟는 동안 지방에서 나와 같이 일했던 직원들은 하나 둘, 빠르게 퇴사했다. 이전 근무 경력을 하나도 인정받지 못하면서까지 서울에 있는 공공기관에 '중고신입'으로 입사하는 직원들부터 해외로, 또는 사업을 하겠다며 나가는 직원까지 다양했다.


연차가 낮은 직원들은 '이 회사 경력 그냥 버리련다. 중고신입으로 여기보다 연봉 더 받고 새롭게 시작!'이라고 말하듯 우수수 나갔고, 연차가 높은 직원들은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걸 입증하듯 사기업 혹은 다른 어딘가로 떠났다.






그럼 남은 직원들은?


서울에 근무할 수 있는 3년의 유예기간은 결혼과 출산 등으로 야금야금 사라져버렸고,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 신청을 하는 순간 본사 발령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다.


이미 나의 전철을 밟은 직원들은(특히 여자의 경우) 조부모에게 영유아를 맡기고 지방 본사로 내려왔다. 싱글일 때에는 그들의 입장이 상상이 안 되었는데 내가 이제 애 딸린 기혼자가 되어보고 나니 이건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었다.


말 그대로 멀쩡한 가족을 '이산가족', '주말부부'로 만들어버리는 생이별 그 자체였다.






'이산가족'이 되지 않는 방법은 가족의 전원이주 밖에 없는데 이 또한 배우자가 전업주부일 때나 가능한 말이지, 양쪽이 모두 생업이 있다면 '이산가족' 말고는 답이 없다.


남자직원들이야 "애는 엄마가 잘 키워주겠지"라며 본사로 돌아오는 눈치지만, 여자직원 입장에선 챙길 게 많은 자녀를 집에 두고 나홀로 지방에서 근무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직원 모두가 이에 대해 "어쩔 수 없잖아" "시간이 약이야" "다 지나간다~힘내라"라며 눙쳐 말한다. 왜냐하면 지방이전이 실행된 순간 모두가 그렇게 했으니까, 나도 겪었고 너도 겪었고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이라는 말처럼 이 회사의 월급을 받는 동안은 다들 어쩌지 못하고 있는 거니까.



집을 구매할 때 한 번 '탈서울'을 하면 다시는 서울로 입성하지 못한다는 부동산 명언처럼, 지방이전한 공공기관에서 다시 서울로 이직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그나마 근무기간이 짧은 저연차 직원들은 "이 회사 경력 그냥 버리련다. 다른 회사 '중고신입으로 가자!"라며 서울에 아직 버티고 있는 공공기관들의 문을 두드려 이직을 실현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5년 이상의 경력으로 어디 타 공공기관에 신입으로 들어가기 애매한 직원들은 바늘구멍같은 공공기관 경력직을 찾아봐야 하는데 이마저도 채용이 거의 없다시피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래서 공공기관에서 이산가족 걱정 없고 이직 걱정 안 해도 되는 직원들은 이미 아이들을 다 왠만큼 키워서 장성한 자녀를 둔 차, 부장급 혹은 지방 이전한 후에 사내커플로 결혼해서 혁신도시 내에 집을 사고, 육아휴직도 번갈아가며 3년씩 하면서 직주근접으로 아이를 키우는 공공기관 커플들 뿐이다.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하는 순간 지방 본사로 끌려갈 것은 자명한 일.


5세, 1세 아이를 놔두고 갈 수가 없어 나는 오늘도 바늘구멍같은 이직 자리를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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