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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상어 밴드를 붙여야만 안심이 되는 아이

by 데자와

37개월 큰 딸은 밤만 되면 핑크퐁, 아기상어 밴드를 찾는다. 요즘 들어서 부쩍 그런 건 아니고 이렇게 '밴드러버'가 된 지 한 1년은 다 되가는 것 같다.


처음에는 집에 있는 대일밴드를 몸 여기저기에 붙여달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어린이집에서 쓰는 캐릭터 밴드를 붙여달라고 한밤중에 난리를 친 적이 있어서 배우자가 쿠팡에서 핑크퐁 밴드를 대량으로 구매해놨다.


한낮에는 핑크퐁 밴드를 찾지도 않다가 꼭 자려고 누우면 밴드를 찾는다.


어디가 긁혀서 아프다며, 몸 어딘가를 가리키며 여기에다가 핑크퐁 밴드를 꼭 붙여야겠단다.


그런데 막상 밴드를 붙여주려고 보면 아이 몸에 크게 상처 난 곳은 없다.


손가락 옆에 난 끄스러미 위에 밴드를 붙여달라고 할 때도 있고, 묘하게 살짝 벌개진 무릎 위에 밴드를 붙여달라고 할 때도 있다.


어떨 때는 그냥 맨 살 위에다가 핑크퐁 밴드를 붙여달라고 하는데 왜 이렇게 밤마다 밴드를 찾는지 '그동안은' 몰랐다. 어떤 한 육아서를 읽기 전까지는.




제리 울프가 쓴 <엄마가 또 모르는 세 살의 심리 - 18~36개월 우리 아이 속마음 읽기>라는 책을 아이가 33개월쯤 되었을 때 읽었다.


동네 작은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는데, 이 책에는 내가 그간 궁금했던 아이의 '알 수 없는' 행동에 대한 답이 나와 있었다. 가령 왜 아이가 낮잠을 자기 싫어하는지, 왜 집에서 벌거벗은 채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지 등등.


왜 이 책을 진작 안 읽었을까 후회가 될 정도로 해당 연령대의 개월수가 보이는 특징에 대해 정말 상세하게 '아이의 관점'에서 풀어서 써 놓은 책이었다.


이 책에 따르면, 아이가 부모에게 밴드를 붙여달라고 하는 건 '밴드가 아이에게 마법과 같은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밴드를 붙여놓으면 내가 어디를 다쳤는지 금방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때때로 엄마는 내가 분명히 다쳤는데도 밴드나 반창고는 붙일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밴드는 저한테 일종의 마법과 같은 물건이거든요. 밴드는 뭐든 낫게 해줘요. 엄마가 반창고나 밴드를 붙여주면 이상하게도 아픈 게 덜해지면서 금세 괜찮아진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아이의 그간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들이 다소 이해가 되었다. 왜 아이가 밤마다 그렇게 반창고를 찾아댔는지, 왜 반창고를 붙이고 나서야만 잠에 편안히 들 수 있었는지를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아이가 핑크퐁 반창고를 상처나지도 않은 몸 이곳 저곳에 붙이며 낭비할 때면 아이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게 된다.


"안 아픈데 반창고 좀 그만붙이면 안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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