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에 '홍보' 경력직으로 입사했습니다만?
나는 8년전 공공기관에 '홍보'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그런데 왠걸? 지금은 일반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다. 홍보경력? 입사한 이후부터는 아무도 '경력'으로 안 쳐준다.
내가 '홍보' 경력으로 일했던 건 입사 이후 고작 1년 3개월 정도뿐.
이후 회사는 나를 홍보팀에서 방출하고 일반 사업팀으로 보냈다.
박사직이나 '재무' 관련 경력직으로 뽑힌 사람들은 절대 사업부서로 보내지 않으면서 오로지 '홍보 경력직'인 나만 이전 회사 경력을 싸그리 무시하고 사업팀으로 배치한 것이다.
홍보 경력직을 뽑는다면서 5년 이상의 관련 경력을 요구해서 면접을 볼 때는 언제고, 막상 홍보 경력직을 뽑아서는 1년만 쓰고 버린 것이다.
이유? 인사팀에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았다. 인사팀장을 만나서 면담을 하고, 홍보 경력직으로 뽑힌 내가 왜 고작 1년 일하고 일반 사업부서에서 일해야 하는지 이유를 물었지만 '말해줄 수 없다'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경력직으로 뽑힌지 얼마 되지 않아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그로 인해 원장이 체포, 구속 수감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회사는 1년 가까이 원장 자리가 공석으로 있었는데, 원장의 부재기간이 끝나고 새 원장이 오면서 대대적인 인사 발령이 시행되었다.
이 회사에는 나와 같은 언론사 기자 출신 직원이 딱 한 명 있었는데(A부장이라고 하자) 회사의 원장이 교체되면서 그가 새 원장의 오른팔과 같은 실세로 부상하게 되었다.
A부장은 과거 홍보팀장으로 자기와 같이 일했던 홍보팀 일원들을 '홍보팀 OB'라고 지칭하며 자신들이 홍보팀이었던 때가 에이스였던 것처럼 굴었던 사람이었다. 특히 내가 홍보팀에서 언론홍보 업무를 맡으면서 그의 보도자료를 수정하면 나를 불러다가 '역정을 냈다'. 비문 등을 고쳐서 보도자료 최종본을 보내면 왜 본인의 문장을 수정했냐며 따지는 식이었다. 그러면 당시 나의 홍보팀장은 "그래, 예전 홍보팀장이시잖냐. 그냥 그대로 내보내드려"라며 전관예우를 하라고 했다.
그랬던 그가 새 원장의 실세가 되면서 홍보팀을 모두 갈아엎은 것이다. 팀장부터 과장, 나를 포함해서 홍보팀 직급상 맨 위에서부터 세 명이 모두 다른 팀으로 발령받았다. 오죽하면 나를 면접봤던 홍보팀장이 "너 다른 부서 자원했니?"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순환보직을 전제로 하는 공공기관의 업무 특성상 보통 어떤 부서에 발령을 받으면 업무의 연속성 때문에 최소 2~3년은 일한 후에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는데 나는 일반 신입직원보다도 '짧게' 홍보팀에서 일한 것이다.
무엇보다 재무 경력직 등 다른 경력직의 커리어는 특수하게 바라보고 순환보직도 전혀 안 시키는 데 반해 홍보경력직은 기존직원을 아무나 투입해서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는 '물 경력'으로 보는 것에 화가 났다.
'홍보 경력직'으로 일하고 싶어 공공기관에 지원한 것이지, 일반 행정직으로 일하려고 공공기관에 입사지원서를 낸 것이 아닌데. 나는 그렇게 어디 가서 '홍보 경력직으로 뽑혔어요'라고 말하기도 우스운 꼬라지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이 회사에서 자존감과 자존심이 바닥을 치고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덧붙임 : 지금은 그냥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 하며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