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업보다 일이 적은 것도 거짓이었고(사기업에서 맨날 정시퇴근하다가 공공기관 와서 야근을 했습니다), 연봉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턱없이 적었으며(여러분 알리오 연봉 믿지 마십쇼), 무엇보다 '홍보' 경력직으로 와서 홍보일을 못 한다는 게 나의 좌절감을 더 키웠다.
그래서 홍보팀에서 방출된 직후, 정확히 입사한지 1년 여 지난 시점부터 나는 다시 열심히 이직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타 공공기관 홍보직군도 알아보고 일반 사기업 면접도 봤다.
하지만 번번이 탈락.
공공기관 경력직은 어렵게 최종면접까지 갔더니 "OOO(내가 다니는 공공기관) 거기 좋은 데 아니에요? 왜 좋은 데서 오려고 해요?"라는 질문을 매번 받았으며, 사기업 면접을 보면 1차 실무진 면접에서 탈락했다.
서울, 대전, 세종 등에 위치한 총 3곳의 공공기관 최종면접에서 미끄러졌고, 사기업은 백화점, IT 대기업, 스타트업 관련 재단 등의 실무진 면접에서 떨어졌다.
이게 말로만 듣던 '공공기관=물 경력'이었다.
내가 사기업 출신에서 공공기관으로 이직할 때는 사기업 시절 쌓았던 경험과 경력들이 공공기관 입장에서 매력적인 것이었지만, 현재 공공기관 재직자로서의 내 공공기관 근무경력은 그들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공공기관에서 타 공공기관으로 이직할 때는 '거, 뭐 어차피 똑같은 공공기관 물 먹은 사람인데 굳이...'가 작용하고, 공공기관에서 사기업으로 넘어갈 때는 '공공기관은 일 하는 게 좀 나이브하지 않나?'하는 편견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왜냐면 내가 사기업에 있을 때 공공기관에서 미팅하자고 요청이 오면, 정말로 담당자들은 "아, 공공기관은 귀찮게 맨날 만나쟤. 어차피 우리 아이디어 빼갈 거면서"라고 말했다)
그렇게 여러 차례 번번이 최종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는 걸 보고나서야 나는 이제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공공기관 물 경력'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물론 나 말고도 당시 회사에는 이직에 성공한 자들이 있었다. 이직한 그들을 보면서 공공기관이 완전히 물 경력은 아니고 본인이 얼마나 포장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알았지만, 당시 내가 속한 부서나 업무 경력은 타 직종으로 건너뛰기에는 애매한 것이었다.
공공기관에 있으면서 이직에 성공한 사람들은 기가 막히게 현재 본인이 속한 부서명을 잘 이용했으며(예를 들어 부서명이 '가치투자팀'(가명)이면 스타트업 투자 팀으로 점프한다던지), 지방이전한 공공기관의 특성을 살려 아예 그 지방의 공공기관으로 이직을 했다.
심지어 일부 직원은 5년 이상 일한 경력을 때려치우고 타 공공기관의 중고신입으로 이직하기도 했으며, 회사에 오랜 시간 몸 담아온 부장급은 물론 박사급 직원들도 줄줄이 퇴사했다.
지금도 내가 다니는 회사는 내가 이직을 시도하던 몇 년 전보다 오히려 더 '이직열풍'이 불어서 신입직원인 주임급부터 회사에서 중간 허리라인이라 할 수 있는 과장급까지 아주 골고루의원면직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모두가 탈출을 시도하고 실제로 탈출에 성공하고 있는 요즘 '공공기관 탈출은 지능순'이란 말은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