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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리스리 Sep 11. 2024

꿈과 환상의 나라 공공기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공공기관에 가면 직장상사한테 혼나도 웃음이 나온대요




공공기관 이직을 알아보고 있던 때, 직장 동료가 했던 말이다. 정확히 직장 동료는 아니고 우리 회사 대학생 인턴이었던 친구가 했던 말이지만. 


저 말의 뜻은 사기업에 있다가 공공기관에 가면 업무나 그런 것들이 느슨해서 직장상사한테 혼이 나도 행복해서 웃음이 나온다는 뜻이었다. 


당시 나는 이름을 대면 알만한 대기업 산하의 공익재단에 다니고 있었다. 스타트업 지원에 앞장서기에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유명 대기업 재단, 그리고 그 재단에서 유일하게 홍보를 담당하고 있었다. 


직속 상사가 재벌 3세이고 여기서 참고 버텨서 일한다면 왠지 모르게 미래까지 보장받을 같아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홍보'로 뽑혔으나 '홍보'일보다는 다른 것들을 더 많이 해야하는 업무가 나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재단 창립기념 행사를 기획부터 운영, 포럼 개최까지 총괄해야 한다거나(이 재단은 외부 위탁사 없이 직원들이 행사 기획부터 운영까지 모두 가내수공업으로 해야 한다) 관련 부서와 담당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타트업 지원센터 개관 VIP행사를 주관하는 등 이게 과연 '홍보' 업무인가 싶은 것들이 PM 역할로 많이 할당되었다. 


홍보 관련 일을 열심히 해도 그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공공기관으로의 이직을 생각하게 만든 이유였다. 


언론사에 돈 주는 일 없이 무료로 기획기사를 대문짝하게 피칭해 와도, 위에서 시키는 일을 단시간에 모두 척척 해 내도(갑자기 재단 건물이 건축잡지에 게재되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바로 그 다음달 잡지에 게재되고 만들고, 사흘 만에 모 팀장 이름으로 몇 천자 되는 기고문을 대필히라고 해서 원고 마감을 한다거나) 


내가 나를 잘 PR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고과는 좋지 않았다. 


직속 상사인 재벌 3세는 나에게 안 좋은 고과를 주면서 "매니저님, 저번에 오타도 많으시고.."라며 외부 문서도 아닌 내부에서 주고 받는 문서에서 발견된 오타를 지적했다. 



이렇게 성과도 인정 못 받으면서 시키는 일을 다 하다가는 번아웃이 올 것 같아 정말 매일같이 취업사이트를 찾아봤다. 처음에는 공공기관이 아닌 사기업을 찾아봤지만, 사기업에서 내 경력은 그닥 매력적이지 않은 것 같았다. 사기업 홍보팀에서는 취재경력이 굵은 현직 기자를 데려오면 되는데, 굳이 나같은 재단 출신 PR을 뽑을 이유가 없었다. (내가 이 재단에 뽑혔을 때 '현직 기자'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발견한 공공기관 경력직 구인! 홍보직을 딱 1명 뽑는 자리인데다가 근무지는 지방이었지만 내게는 정말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길 탈출할 수만 있다면야, 지방이든 어디든 크게 상관 없어  


그렇게 나는 서류통과를 하고, 공공기관 지방 본사로 NCS를 치러 다녀오고 1차 면접과 최종면접까지 치른 후 경력직 홍보직군에 뽑힌 '최종 1인'이 되었다. 





덧붙임 :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지. 이게 잘못된 꿈과 환상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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