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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n번째 직장

회사 다니면서 10년째 자소서를 쓰는 이유

by 데자와

10년째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습니다.

2011년 첫 직장생활 이후 쉼 없이 자기소개서를 써 왔으니, 자칭 '10년차 취준생'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네요.


지금까지 쓴 자기소개서를 세 보진 않았지만

1년에 최소 10개씩은 써 왔으니 (물론 훨씬 많은 해도 있었지만) 적어도 100개는 될 듯 싶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이유는 불안해서입니다.

내 현재가 불안하고 내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 같지 않고 지금보다 더 나은 곳이 있는 것 같아서 어딘가에 있을 유토피아를 늘 꿈꾸며 자기소개서를 씁니다.


자기소개서를 써서 좋은 점은 불안을 지우고 없애는 효과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속한 직장에서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느낄수록 자기소개서에서만큼은 더 당당하게 내 과업을 자랑합니다.


이 회사에서는 비록 A+을 받지 못했지만 앞으로 입사할 미래의 회사에는 '저 나름 A+ 인재에요'라고 소개하는 것. 자기소개서를 쓰며 얻는 나름의 희열이자 자기치유이기도 합니다.


자기소개서를 밥 먹듯이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경력 기술서도 규칙적으로 업데이트하게 됩니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업무가 별볼일 없어 보여도(실제로도 별 볼일 없을 지라도) 자기소개서에 쓰다보면 그럴듯한 프로젝트로 변신하죠.


반면, 쓰는 횟수에 비해 얻게 되는 면접 기회는 비례하지 않습니다. 헤드헌터가 연락을 주면 다행이고, 연락이 오더라도 '서류 전형에서 탈락하셨습니다'라고 문자를 받게 되는 때가 많습니다.


홈페이지를 통한 직접 지원을 한 경우는 입사 페이지 로그인이나 개인 이메일만 확인하면 되니 오히려 확인하는 데 있어 마음이 더 가볍습니다.


경력직으로 지원하다 보니 1년에 많아야 세 네 번 면접을 보고, 최종면접까지 가는 기회는 연간 최대 2번인 것 같습니다. 평균적으로 상반기 한 번, 하반기 한 번 이런 식으로요.


에너지 낭비 같고 쓸데없는 감정 소모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면접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증명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계속 자기소개서를 씁니다.

정규직이지만 불안하고, 정체되어 있는 느낌을 벗어나고 싶거든요.


유명한 사람이 여러 회사를 거쳐간 것은 "와 저 사람 능력 좋다"로 평가되고

일반인이 여러 회사를 거쳐간 것은 "회사를 여러 번 옮기셨네요"로 여전히 취급받는 현실이지만

회사생활 10년차에도 자기소개서 쓰는 것을 놓지 못하겠습니다.


이 매거진은 밥 먹듯이 툭하면 자기소개서를 쓰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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