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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리스리 Sep 06. 2021

정리정돈을 못하는 예비엄마에게 아기용품이란

24주~26주 무료나눔, 물려받은 아기용품 정리하기

카톡 프로필을 배가 불룩 나온 사진으로 바꿨다.


그래서일까. 주변에서 "예정일 언제야?"라는 질문이 많아졌다.


아기 용품을 보내주겠다는 주변의 연락도 덩달아 왔다.


남은 모유저장팩이랑 수유패드를 택배로 보내주겠다는 친구의 카톡에 "보내줘"라고 칼답하고, 아기 용품을 챙겨주겠다는 친척에게는 "네 물론이죠! 언제 가지러 갈까요?"라며 아기용품을 싹쓸이 해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나는 이미 몇 개월전부터 동네에서 아기용품을 알뜰살뜰히 챙겨왔다.


내가 사는 동네는 아기용품과 관련된 무료 나눔이 많아서 관련 게시글이 당근마켓이나 인터넷 카페에 보일 때마다 틈틈이 "저요!"라며 손을 들었다.


그렇게 배냇저고리, 욕조, 회음부방석, 수유쿠션, 역류방지쿠션 등등을 받아서 집안 곳곳에 차곡차곡 챙겨왔던 나. (나는 <개미와 베짱이>의 개미인가...)


당시 지인은 그런 나를 보고 "언니, 미리 받을 필요 없어요. 나중에 필요한 것만 챙기시면 돼요"라고 미리 경고를 했지만, 나는 '나한테 아직 아기용품 준다는 사람 없었는데 나중에 왕창 다 사야하면 어떡해'라며 지레 겁을 먹고 동네 주민들이 무료로 나눠주는 것들을 알뜰살뜰히 쟁여놓았다.




친구와 친척이 준 아기용품이 집에 도착하던 날, 나는 산더미같은 아기용품에 둘러쌓였다.


아기를 위해 신혼 때부터 비워놓은 작은 방. 아기침대와 각종 물품들이 들어차 있다.


아기를 위해 신혼 때부터 비워놓은 작은 방에 아기침대와 각종 물품들을 넣어놓고 몇 날 며칠을 그냥 그대로 방치했다.


나는 수십 년을 '정리정돈'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는데 지인들이 보내준 아기물품을 '잘'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비닐로 꽁꽁싸인 아기용품들을 풀어놓지도 않은 채 버티기를 며칠째, "이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정리에 나섰다.


여기서 배가 더 부르면 나중에는 정말 정리하고 싶어도 못 할 거야




주말 아침부터 시작된 정리정돈은 내 예상과 달리 녹록치 않았다.


일단 아기옷이 너무, 너무! 많았다.


나는 아기옷이 배냇저고리, 우주복 정도만 있는 줄 알았는데 친구와 친척이 보내준 옷 꾸러미를 열어보니 그 외의 옷들도 한가득이었다.


아기 팔이 막힌 옷, 찍찍이가 붙어있는 옷, 바지가 분리된 옷 등등 육아책에서 활자로 읽은 것보다 더 많은 옷들이 쏟아져나왔다.  

인터넷에서 아기옷 종류를 검색하다 지쳐 친구에게 혼돈의 SOS 카톡을 보냈다


스와들미? 스와들업은 또 뭐지??
75 사이즈는 언제 입히는 거고 80 사이즈로는 언제 넘어가는 거지?


아기옷은 배냇저고리와 우주복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종류별 아기옷은 신세계였다. 거기에 손싸개, 발싸개, 양말, 머리띠 등등이 더해지니 수납장을 당장 사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결국 옷정리를 하면서 주변의 조언을 구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같이 나에게 필요한 답변이었다.


Q. 아기 모자는 왜 이렇게 많은가?


Q. 5단 서랍장 있어야겠지? 지금 사는 게 낫겠지?

5단서랍장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필요하다고 했다


정리를 못하면 결국 물려받은 예쁜 옷도 다 못 입히고 지나간다


Q. 아기가 이 많은 옷 진짜 다 입는 거야?


Q. 75 사이즈는 100일 전에 입히고 80 사이즈는 100일 후에 입히는 건가요?


Q. 기타 (겉싸개)

친구야.. 나 겉싸개가 무려 4장이야...




아기방을 깔끔하게 정리하겠다는 나의 주말 목표는 결국 이뤄지지 못한 채 끝났고, 5단 서랍장을 얼른 사서 아기옷부터 분류하는 게 시급해졌다.


무엇보다 동네에서 미리 받아놓은 역류방지쿠션, 수유쿠션, 겉싸개 등은 지인들이 보내준 아기용품과 '중복'되어 이제 내가 무료나눔을 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이래서 미리 받지 말라는 거였구나)


정리정돈을 잘 못하는 예비엄마에게 아기용품을 잘, 예쁘게, 효율적으로 정리하기란 학교공부보다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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