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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리스리 Dec 20. 2021

출산예정일에 아파트 동대표 출마를 하다

아가야, 엄마 동대표 출마하라고 늦게 나오는 거니? 

지난번 엘레베이터 사건 이후 '아파트 동대표'에 출마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https://brunch.co.kr/@rookieseul/41


엘레베이터 공사로 인해 만삭 임산부 주민이 겪어야 하는 불편함에 대해 일절 나서지 않는 동대표와 여자의 적은 여자임을 알게해 준 탑층 주민 덕분에 동대표 출마를 실행에 옮겼다. 




동대표를 새로 뽑는다는 아파트 안내 방송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드디어 동대표 새로 뽑네' 정도였다. 


그동안 아파트에 살면서 여러 사건을 통해 아파트 동대표에 대한 불신이 차곡차곡 쌓여갔고, 그때마다 나는 남편에게 "이럴 바에 내가 동대표하고 말지"라고 큰소리쳤었다. 


그런데 출산예정일 당일이 되도록 이슬은 커녕 아기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문득 '그러고보니 동대표 후보 등록이 언제까지였지?'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방송으로는 동대표 후보 등록에 대한 안내를 들었지만 늘상 엘레베이터 안에 붙던 공고문들이 엘레베이터 밖으로 옮겨지자 눈에 안 띈 것은 사실이었다.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동대표 후보 등록에 대한 질문을 하자 마감일이 오늘까지라고 하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후보등록 기간은 단 이틀이었다. 고작 이틀!) 


동대표에 나가라는 계시인가 




나는 엘레베이터 사건이 터지기 전에도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이러저러한 문제제기를 해왔던 터였다. 


한 번은 엘레베이터 붙은 동대표회의 개최 공고문을 보고 회의참관을 신청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관리사무소에 참관 신청을 하자 참관을 못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공고문에는 분명 '회의 시작 시간 전까지 참관 신청'이라고 명시되어 있었지만 관리사무소 직원은 "하루 전날까지 신청하셔야 하는데"라고 말을 바꿨다. 


더 황당한 답변은 뒤에 이어졌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회의를 진행하지 않고 비대면으로 카톡 단톡방에서 회의를 진행한다"는 것. 


'부릉부릉'... 


납득할 수 없는 답변에 시동이 제대로 걸려버렸다. 


나는 내친 김에 온갖 이의를 제기했다. 


- 동대표들은 비대면 회의로 할 거면서 왜 대면 회의로 진행하는 것처럼 공고를 내걸었는가. 무엇보다 참관시청은 당일까지인데 왜 하루 전이라고 말을 바꾸는가.


- 비대면 회의로 진행하면서 대면 회의 때 타 가는 수당을 그대로 받는 것인가? 공고문에 대면 회의라고 명시했으니 그럴 의도가 충분했던 거 아닌가? 


- 코로나로 인해 ZOOM 회의가 일상화된 지가 언제인데 비대면 회의를 카톡 단톡방으로 하는가. 카톡 단톡방에선 몇 명만 대화하고 나머지는 그냥 침묵해도 되는 구조인데. 대기업, 학교 교사 등등으로 일하고 있다는 동대표들이 ZOOM을 사용 못 한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제기를 하면서도 이를 직접 동대표한테 말할 수 없고 관리사무소를 통해 전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좀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촘촘히 감시하지 않으면 굉장히 허술하고 느슨한 게 동대표/주민대표들이란 것을 깨달았다. 




이 외에도 나는 '내가 보기에' 합리적이지 않은 일이 벌어질 때마다 수시로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넣었다. 


이 아파트에 살면서 가장 놀란 점 중의 하나는 경비아저씨들이 모든 집집을 돌아다니며 주민 찬반 투표를 받는 것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는 20년 넘도록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천 세대가 넘는 아파트에서 경비아저씨가 가가호호 방문을 하며 일일이 투표를 받으러 다니다니. 

가히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집에 사람이 없거나 하면 경비아저씨께서는 사인을 받을 때까지 수차례 집을 방문하셨다. 

밤 8시가 지난 시간에 우리집을 비롯하여 이 집 저 집을 방문하시는 경비아저씨를 볼 때마다 나는 민원을 넣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장기수선충당금 인상이라거나 주민 투표를 거쳐야 하는 주요 이슈 등이 줄줄이 발생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경비아저씨는 수시로 사인을 받기 위해 집을 방문하셨다. 


나는 그때마다 관리사무소에 '다른 아파트 단지에선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전자투표를 우리는 왜 도입하지 않느냐고, 동대표들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며 항의했다. 경비아저씨에게 사인받는 일을 시키는 것은 경비의 업무 범위를 넘어서는 '불법' 아니냐는 것이 내 주장이었다. 


동대표가 아닌 주민이 할 수 있는 건 관리사무소를 통한 민원밖에 없었다. 


나의 지속적인 항의 때문인지 원래 계획에 있던 것인지는 몰라도 아파트는 올해 말에서야 전자투표를 시범 도입했다. 




관리사무소를 통한 해결이 어려울 것 같아 보이는 문제에 대해서는 상위기관 또는 언론을 이용했다. 


하루는 아파트 엘레베이터에 '아동 성추행 예방 안내' 공지문이 붙었다. 

아파트 엘레베이터에 붙은 아동 성추행 예방 안내문 


아파트 내에서 아동 간의 성추행이 발생했음에도 피해자 아이를 잘 달래주라는 내용의 작금의 '성인지 감수성'에 맞지 않는 내용이었다. 


촉법소년이 일으킨 성추행 사건인데 해당 사건에 대한 조치나 대안(CCTV 설치 강화라든가)을 제시하는 내용이 아니라 피해아동을 잘 위로해주라는 글이라니. 


나는 해당 게시물을 보자마자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지만 관리사무소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반응을 보였다. 나같은 민원을 넣은 사람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바로 관리사무소 본사 업체에 항의 전화를 걸었다. 동시에 지역신문에 해당 내용을 제보했다.

지역 뉴스를 잘 다뤄주는 기자의 이메일을 찾아내 일면식도 없는 그 분이 기사화를 조금이나마 쉽게 하실 수 있도록 게시물 사진까지 같이 보냈다. (기자를 그만두고 나서 지인 기자 및 전혀 모르는 기자에게도 제보하는 일만 늘었다) 


해당 내용은 바로 기사화가 되어 보도됐다. 

http://www.ifm.kr/news/296054?print=1


제보로 기사화된 내용 


본사에서 연락을 받아서인지 관리사무소는 공고문을 건 당일에 해당 게시물을 철거했다. 


그런데 내가 화가 난 대상은 관리사무소가 아닌 동대표들이었다. 


나같은 일개 주민도 '이런 게시물이 정상이라고 보는 건가?'하며 발끈하는데 여러 명의 동대표들 중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파트 엘레베이터 공사 사건이 동대표 출마의 촉진제가 되었다. 


때마침 아기가 출산예정일에 아무런 출산 조짐도 보여주지 않아 동대표 후보등록까지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 스스로도 참 웃긴다. 

출산예정일에 동대표 후보 등록하러 가는 만삭의 임산부라니. 


참 힘들게 산다. 나 자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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