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가 천직인가봐
회사일보다 육아가 더 좋아져버린 직장인
공무원 및 공공기관 조직에서 육아휴직을 못 쓰면 '바보'라는 자조적인 이야기가 있다.
미혼이던 시절 '인사발령' 게시글이 올라올 때마다 육아 휴직자들이 부러웠다.
미혼 입장에서 육아휴직이란 같은 회사를 다니면서도 오로지 기혼만 쓸 수 있고, 기혼 중에서도 아이를 보유한 자들만 쓸 수 있는 '선택받은 복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남녀 가리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이 '육아휴직'은 미혼 직장인들의 입장에선 대한민국이 아무리 저출산이라고 해도 '반드시 결혼을 해서 애를 낳고야 말겠다'라는 의지를 불태우게 해주는 대상이다.
그리고 '운 좋게도' 내게 그 기회가 왔다.
아이를 낳은지 5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미혼 때 흔히 듣던 "애 키우는 게 너무 힘들어서 회사 가는 게 낫다라는 생각으로 복직하는 거래"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아니 이렇게 좋은 걸 대체 왜?!
내 경우로만 한정해서 말하자면, 일단 육아에는 스트레스가 없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이걸 '스트레스'라고 불러야 하나 싶을 정도이다.
회사에서는 사업 하나를 하는 데도 온갖 사람의 의중을 살펴야 하고 결재를 받아야 하지만 육아에는 그런 과정이 필요가 없다. 오롯이 내가 결정하고 선택하며 내가 실행하고 있는 방식에 대해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연말에 고과를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평가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육아는 만족감 100%의 행위이다.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지금까지 평가받지 않았던 시절이 얼마나 될까. 학생 때는 성적으로 평가받고, 취업 때는 면접관에게 평가 당하고, 취업하고 나서는 회사 내 평판에 신경써야 하는 고단했던 지난 날이 '육아'에서만큼은 발생하지 않는다.
양가 부모님들이 어쩌다 건네시는 "OO이(아기이름)한테 괜찮나?"라는 말씀은 조부모님으로서 해주시는 애정가득한 관심이고, 가끔 유모차를 끌고 나갔을 때 초면의 어르신(혹은 아주머니)들이 건네는 조언은 '이건 다 우리애가 초특급 귀여워서 그런 거다'라는 부모로서의 최면 때문에 크게 신경쓰이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나의 '최애'인 사랑스러운 아기의 얼굴을 하루종일 보면서 아기를 위한 맞춤형 서비스(식사 제공하기, 트림시켜 주기, 손톱 깎아주기, 칭얼거림 받아주기, 산책 나가기, 놀아주기, 재워주기 등)만 제공하면 되니 육아야말로 인생 최대의 덕질이고 나는 그 덕질을 하고 있는 '성덕'이다.
물론 이런 나의 육아만족감을 만드는 데 기여한 1등공신은 당연하게도 내 아기이다.
아이를 둔 지인들에게 "육아휴직 중인데 너무 게으르게 사는 거 같아"라고 말하면 하나같이 "OO(아기이름)이가 순하구나"라고 말한다.
순한 자녀를 둔 덕분에 인생 최대의 게으름을 부리며 '오늘은 OO이 데리고 어디를 놀러가지'라고 고민한다.
아직 뒤집기를 시작 안 해서, 이유식을 시작 안 해서, 걷지 않았기 때문에 등등의 이유로 육아의 '매운 맛'을 보지 않은 자의 철없는 발언이라 할 지라도
회사일보다는, 역시, 육아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