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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리스리 Apr 15. 2023

3월 어린이집, 어린이집 적응기간에는 학부모도 힘들다.

15개월이 된 딸을 3월부터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은 열흘간 부모와 함께 적응기간을 가졌다. 


첫 이틀간은 한 시간 정도 놀이만 하다가 집에 오고, 그 다음부터는 점심을 먹고 하원하는 등 차츰 시간을 늘려가는 방식이었다. 


조리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처럼 부모가 열흘간 같이 생활하다 오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았다. 다들 첫날부터 아이를 등원시키고 바로 빠빠이했다는 걸 보면. 

(특히 가정 어린이집은 공간이 좁아서 모든 아이의 부모가 함께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열흘 동안 같은 반 아이들의 부모들과 함께 한 공간에 있는 건 참으로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는 상황이었다. 


일반 키즈카페나 공동육아방에서는 엄마들끼리 서로 알은 체를 할 필요가 없지만 여기서는 '같은 반 아이'라는 것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신경 쓰는 느낌이었다. 


어린이집에서는 초반 며칠간은 아이의 이름이 크게 적힌 스티커를 나눠주었다. 이 스티커를 몸 앞이나 등에 붙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학부모들도 다른 아동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자유놀이를 하는 동안 딸 고리는 다른 아이들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다른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뺏으려 하기도 하고 주변 친구들이 하는 행동에 하나하나 반응하는 듯 보였다. 


어린이집에는 똑같은 장난감이 여러 개 비치되어 있지만 딸 고리는 항상 친구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에만 유독 탐을 냈다. 친구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뺏으려 하면 같은 반 다른 학부모님들은 "OO이가 이거 갖고 놀고 싶은가 보다. 우리 OO이한테 양보할까?"라고 하거나 "어머 OO이도 왔네, 우리 같이 놀까?"하며 유연하게 대응해주셨다. 


그러나 이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자 나는 이 상황이 매우 스트레스였다. 딸은 대체 왜 똑같은 장난감을 손에 쥐어줘도 자꾸 친구의 것만 탐을 내는 것인가. 같은 반 친구가 자신의 손에 쥐고 있던 장난감을 딸에게 건네주고 내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 아이에게 다른 똑같은 장난감을 건네면, 딸 고리는 친구에게서 취득한 장난감은 다시 던져버리고 친구의 것을 뺏으려했다. 이런 행동이 적응기간 동안 매일 반복되다보니 같은 반 아이들의 장난감을 한 번씩은 다 건드린 아이가 되었고, '이러다 우리 딸 같은 반 엄마들 사이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마저 생겼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딸 고리는 낯가림이 전혀 없는 아이다. 9개월즈음부터 문화센터며 공동육아방을 데리고 다녔는데 그때부터 나는 내 딸에게서 '낯가림'과 관련된 행동을 본 적이 없다. 다른 학부모에게 다가가 알은 체를 하거나 공동육아방에 손자와 함께 온 할머니의 품에 안기는 등 엄마는 뒷전인 상황을 자주 겪었다. 


그러다보니 어린이집 적응기간에도 다른 보호자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태도가 나타났다. 엄마 손을 잡아끌고 놀자고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아동의 할머니 손을 잡아끌면서 자신과 놀아달라고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할머니는 우리 딸과 놀아주시고 나는 그 손자와 대신 놀아주는 상황이 연출됐다. 


다른 학부모들을 크게 신경 안 써도 되는 공동육아방에서는 90분 이용시간이 금세 지나갔는데 어린이집 자유놀이시간에는 자꾸만 시계를 쳐다보게 됐다. 


'아니 이렇게 힘든데 시간이 겨우 10분밖에 안 지났다고?!'


 




놀이시간은 놀이시간대로 힘들고 아침간식을 먹는 시간과 점심시간 또한 곤욕스러웠다. 


집에서는 아이 식탁이 있어서 돌아다니지 않고 먹는 게 가능했는데 어린이집은 한 식탁에 3~4명의 아동이 식판을 놓고 먹는 방식이었다. 자신을 구속하는 아기식탁의자가 없으니 딸은 식사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나 선생님이 떠먹여주는 숟가락을 곧이곧대로 받아먹거나 아니면 스스로 숟가락질을 해가며 밥을 먹었다. 그러나 딸 고리는 떠주는 밥을 받아먹지도 않으면서 손으로 음식을 헤집고 다른 아이의 반찬에 손을 대려 했다. (아아, 제발 그만하라고) 


게다가 주변엔 온통 처음 보는 장난감 천지이지 않은가. 다른 아이들은 얌전히 앉아서 밥을 먹는데 딸 혼자 돌아다니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물론 딸이 반에서 가장 어리고 다른 아이들이 딸보다 개월 수가 훨씬 앞서있긴 하지만 밥을 안 먹고 돌아다니는 상황이 벌어지니 나는 자유놀이 시간에 이어 또다시 곤란한 학부모가 되었다. 



"대체 왜 우리딸만 이러는 거야" 


어린이집 적응기간 사흘 정도를 보내고 나서 나는 남편에게 하소연을 했다. 


"친구 장난감은 자꾸 뺏으려 들지, 밥은 안 먹고 돌아다니지. 진짜 자기가 와서 직접 눈으로 한 번 봐야 한다니까. 힘들어 죽겠어"


남편은 "어쩌겠어, 우리 딸인데"라며 위로를 건넸지만 전혀 힘이 되지 않았다. 


다른 학부모들과 하루 3~4시간을 며칠씩 같이 있어야 하는 불편한 상황. 그 와중에 미소를 잃지 않고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예의주시하는 데서 오는 피로감. 아이가 불편한 상황을 연출했을 때 겸연쩍은 표정으로 양해를 구하는 데서 비롯되는 정신노동. 


아이의 어린이집 적응을 천천히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처음에는 어린이집 적응기간이 길어서 좋다고 생각했지만 엄마인 나에게는 전혀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어린이집 적응기간에 힘든 것은 딸인가 나인가. 



어린이집 와서 혼자 즐거우면 다냐고요. 따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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