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아봤는데 3+3 제도라는 게 있대. 이거 쓰면 세 달치 월급을 육아휴직 쓰면서 받는 건데 올해 안 쓰면 너무 아까울 것 같지 않아?”
마음속 생각으로만 품어왔지만 차마 남편에게 얘기꺼내지 못했던 3+3 제도를 남편이 먼저 제안하다니 이게 왠일인가 싶었다.
“3+3 쓰게 되면 육아휴직 먼저 쓴 자기도 육아휴직급여 더 받을 수 있고, 나도 200만원씩 받는다니까 이건 반드시 쓰는 게 맞는 거 같아”
그렇게 남편은 고민 끝에 본인의 올해 회사 고과를 포기하고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남편의 회사는 휴직을 쓰기 최소 1달 전에 휴직 사실을 알리도록 되어 있었다. 남편은 아직 올해 고과를 받기 전이었기 때문에 아기의 돌 이전에 3+3 육아휴직을 개시하기 위해선 연말에 좋은 고과를 받을 걸 포기하고 휴직 사실을 알려야 했다.
“괜찮아, 나에겐 다시 없을 시간이잖아.”
고과를 포기하고 3개월의 자유를(?) 얻은 남편의 표정은 홀가분해보였다.
남편이 3+3 제도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도 회사의 다른 직원이 3+3 제도를 주저없이 쓰는 걸 보고나서였다고 했다.
그렇게 회사에서 벗어나 잠시 숨 돌릴 틈을 찾던 남편의 바램과 육아휴직급여를 조금이라도 더 받고자 하는 계산이 만들어낸 3개월은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어줬다.
바로 ‘발리에서 한달살기’였다.
주위 사람들에게 남편이 3개월 휴직을 하게 되었음을 알리자 바로 여기저기에서 여러 제안이 왔다.
“해외에서 한달살기 어때? 지금 아니면 다시 없을 기회일 걸”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보낸 지인은 나에게 해외 한달살기 바람을 불어넣었다.
몽골여행으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나와 남편은 둘 다 여행을 좋아한다. 그러나 코로나가 딱 터지는 시점에 결혼을 하는 바람에 해외 신혼여행은커녕 결혼 직후부터 여태까지 같이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3개월의 육아휴직 기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추운 12월부터 2월까지. ‘아기와 제주도 한달살기’가 유행이라지만 춥디 추운 겨울을 제주도에서 더 춥게 보내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육아휴직 3개월 중 1개월을 따뜻한 나라에서 보내기 위한 사전조사가 시작되었다. 물가가 싼 동남아 국가들 중 한달살기로 많이 언급되는 베트남, 태국 치앙마이 등이 후보에 올랐다. 그런데 베트남은 남편이 회사 출장지로 자주 가는 국가여서 굳이 해외 한달살기로 다시 가고 싶지 않아했고 태국 치앙마이는 겨울에 대기가 매우 안 좋다는 얘기가 있어 아기에게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여보 발리가는 거 어때?” “발리?”
발리. 남편과 내가 결혼을 앞두고 여행을 갔던 그 곳. 여행 중 크게 싸우는 바람에 각자 비행기를 타고 남남이 될 뻔했다가 극적으로 화해한 그 곳. 관광보다는 싸운 기억이 더 강하게 남아있는 발리는 남편과 나에게 생채기처럼 남아있었기에 언젠가 한번쯤 다시 가보고 싶은 지역이었다.
가족이 되기 전 한 남자와 여자로서 갔던 발리를 이제는 아기와 함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간다면 예전 발리 여행에서의 아쉬움도 덮고 새로운 추억을 쌓기에 좋은 명분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3+3 육아휴직 제도는 우리를 발리로 이끌었다. 둘만 다니던 여행은 짐만 싸면 끝이었지만 아기와 함께 가는 여행은 짐싸기부터 숙소 정하기, 여행일정까지 모든 것을 아기 중심으로 해야했다.
여행 준비를 위해 ‘아기와 해외 한달살기’에 대한 인터넷 검색을 수없이 했다. 아기와 단기간으로 며칠 해외에 다녀오는 인터넷글은 많아도 돌 아기와 한 달을 해외에서 보낸 글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몇몇 블로거들의 후기를 바탕으로 ‘돌아기도 해외에서 한 달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우리 가족은 2023년 1월 발리로 떠났다.
발리 한달살기는 발리 중심부인 ‘덴파사르 시티’에서 시작해 해변가 동네인 ‘사누르’, 숲이 우거진 ‘우붓’ 등 발리의 여러 아름다운 지역을 옮겨다니며 보냈다.
발리의 겨울은 우기철이어서 비도 자주 오고, 비온 후의 날씨는 찌는 듯 더웠지만 우리 가족은 유모차를 끌며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한국의 겨울이었으면 꼼짝없이 ‘집콕’했을 아이가 뜨거운 햇볕 아래서 자유롭게 걸어다니는 게 좋았다. 발리에 오기 전까지 한국에서는 끽해야 집 아니면 동네 공동육아터가 전부였는데 발리에 온 이후로 골목길이나 해변가를 신나게 걷는 아기를 보면서 육아휴직 쓰고 발리에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발리에 있으면서 아이의 ‘인사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원래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아이였지만 발리에서 지내면서 아기는 새로운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는지 보는 사람마다 인사를 했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음식점에서 마주친 모든 사람들에게 아이는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쬐끄만 아기가 길을 지나는 어른들마다 인사를 하자 다른 여행객들도 반갑게 인사를 해줬다.
자연 속에서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아이는 푸릇푸릇한 정원이 있는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주인집 개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파란 하늘과 바닷가를 배경으로 삼아 모래장난을 실컷 했다.
발리에서의 한 달이 꼭 낭만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좋은 가운데 힘든 점도 많았다.
발리에서 한 달을 보냈다고 하면 다들 “너무 좋았겠다” “부럽다”라고 말하지만 아기와 함께하는 발리 한달살기는 양육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아기를 먹이고 재우고, 놀리는 일상이 대한민국에서 발리로 장소만 바뀌었을 뿐 한국에서와 다를 바 없이 우리 부부의 우선순위는 아이였다. 한국에서와 다를 바 없이 발리에서도 아이의 ‘밥’과 ‘잠’이 우리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기에 숙소를 구할 때도 주방이 있는 곳인지, 아기 침대가 따로 준비되어 있는지 여부를 살폈다.
다른 여행객들이 발리 곳곳을 누비며 발리 스윙이니 일출이니 여러 당일치기 여행들을 섭렵하는 것에 비해 우리 가족의 여행은 단촐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숙소에서 아이 밥을 먹이고 잠시 산책을 나갔다가 점심을 먹고, 또 다시 오후 외출을 나갔다가 숙소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는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리에서의 한 달은 엄마, 아빠가 함께 아이와 24시간을 보낸다는 점에서 행복했다. 가족 셋이 다같이 눈을 뜨고 밥을 차려먹고 시간을 같이 보냈다가 다시 잠드는 일상. 내가 언제 다시 아이와 남편과 이렇게 24시간을 항상 붙어서 지낼 수 있을까. 3+3 육아휴직이 만들어준 발리에서의 30일은 우리가족이 두고두고 꺼내서 살펴볼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