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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리스리 Oct 10. 2023

신혼 때부터 산 동네, 3년 넘었는데도 참 정 안드네

남편과 결혼을 한 이래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정착한 지 어언 3년이 자났다.


그런데 3년이 지나도록 정이 안 가는 이 기분은 뭘까.


여행을 하고 돌아올 때나, 시가나 본가를 방문하고 집으로 올 때 "우리 동네에 왔구나"하는 안도감이 전혀 들지 않는다. (골목길 문화가 전혀 없이 아파트 대단지로만 구성된 동네 조망도 한몫한다)


"우리집에 드디어 왔네"와 같은 동네 초입에 들어설 때부터의 안정감, 내가 살고 있는 환경에 도달했을 때의 익숙함, 친근감이 아직 이 동네 3년차인 내게는 없다.


왜 이렇게 이 동네에 정이 안 가는 걸까? 동네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이 없어서? 부모님이 안 계셔서? 아니면 출가 전에 부모님과 함께 한 동네에서 30년 이상 산 세월을 이길 짬밥이 안 되어서?


부모님과 함께 30년 이상 산 동네와 이제 막 3년을 산 동네를 비교하는 건 시간적으로 무리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정이 안 갈 수가 있단 말인가. 대학시절 1년 고작 머물렀던 미국 LA는 1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미치도록 그리워하는데?!


나는 가족들도 '너는 집보다 밖에 나가서 보낸 시간이 더 많지 않냐'고 할만큼 대학 입학 이후 부모님 곁에서 산 적이 별로 없다.


대학시절은 지방에 있는 대학에서 4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했고, 대학을 휴학한 1년 동안은 미국 LA에서 살았으며 졸업한 이후로는 경기도의 한 중소기업에 취업해서 사택 생활을 하고,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 덕택에(?) 타지 생활을 쭉 해왔었다.


20대를 기점으로 부모님집에 붙어서 생활한 시간보다 밖에 떠돌면서 보낸 시간이 훨씬 많아 어떻게 보면 처음으로 정착 아닌 정착을 한 셈인데 이렇게 정이 안 가다니!


애를 낳고 기르면 이 동네에 정이 좀 더 생길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 애를 1년 남짓밖에 안 키워서일까. 여전히 정이 가지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다른 곳에 비해 3040 젊은 사람이 많은 곳이긴 하다. 그래서 맨 처음 이 집에 이사했을 때 엘레베이터에서 서로 인사하지 않는(심지어 인사해도 받아주지 않는) 이웃들을 보고 남편과 나는 매우 경악했었다.


동네 맘카페에서는 "우리 OO만큼 살기 좋은 곳이 없다" "우리 OO처럼 사람들이 좋은 동네가 없다"며 항상 이 동네가 민심이 좋고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한 글이 올라오지만 글쎄요, 제 생각엔 딱히...


제가 살고 있는 동네는요.  


- 여름철에 아이들이 아파트 분수대 주변에서 노는 소리가 시끄럽다(물값 아깝다고)고 '주말에 1시간만 이용제한'을 내세우는 동대표 어르신이 있는 곳입니다.

- 아파트 단지간을 연결하는 필수 계단을 아파트 1층에 사는 개인이 '사람들이 밤에 다니는 게 시끄럽다'는 이유로 계단문을 쇠고리로 묶어버리고 애들한테 소리지르는 어르신이 사는 곳입니다.

- 아파트 앞에 위치한 시에서 운영하는 공원의 바닥분수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한 어르신이 민원을 어마무시할 정도로 넣어 8년 가까이 공원 바닥분수 운영이 중지되어온 그런 동네입니다.


그렇다고 애를 낳고 동네 엄마들과 교류하며 유대감이 깊어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 아파트 엘레베이터에서 어떤 아이가 래쉬가드를 차려입고 엄마와 타길래 일부러 "아파트 분수대에 물놀이 하러 가는 구나? 예쁘게 입었네?"라고 말을 붙였지만 뚱한 표정으로 아무 반응도 하지 않던 보호자. (이후로 이 부모를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쳐도 절대로 인사하지 않는다)


- 동네 놀이터 정자에서 딸에게 과자를 주고 있었는데 바로 옆에 있던 아이가 간식을 가지고 나온 것 같지 않길래(옆에서 계속 엄마한테 간식달라고 보채고 있던 상황) "이 과자 줘도 될까요?"라고(그냥 줬다간 큰일 날 것 같은, 눈치 보이는 이 동네 분위기 때문에) 해당 보호자에게 웃으며 말을 건넸지만 돌아오는 건 "아, 저희 아이 초코과자 안 먹어서요"라는 단답형 답변. (보통은 "아, 저희 아기 저 과자는 안 먹어서요. 신경써줘서 고맙습니다"라고 하지 않나??)


3년 동안 이 동네에 살았지만 이웃에 대한 정이 쌓이지도, 그렇다고 동네 자체가 엄청나게 매력적인 것도 아닌지라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정 안가는 동네'로 분류했다. 더 험악한 동네를 겪어보지 않아서 할 수 있는 불평인 걸까?


결론은 지금 당장 떠나도 그리울 것 같은 동네는 아니라는 말이다. 신도시(과거에 선정된 신도시지만) 생활이 이런 거라면 참, 나는 어딜가도 정 붙이기는 힘들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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