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장은 실망했다", 중대장 실망 회로와 해결 방안 고찰
“중대장은 실망했다.”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다들 알고 계신 스토리일 것입니다. 나는 실망시킨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왜 중대장은 항상 실망했다고 하는 것일까요? 중대장이 실망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실망감을 상쇄시킬 수 있는 것일까요? 중대원들이 중대장이 실망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단언컨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왜 중대장은 항상 실망하는 것일까요? 인간의 기대와 실망,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메커니즘을 유발 하라리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 보겠습니다.
불교의 연기법은 현상계를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인과관계란 원인과 결과가 기어들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인이 되는 첫 번째 기어가 돌아가면, 결과가 되는 두 번째 기어가 맞물려 돌아갑니다. 우리가 현실세계라고 느끼는 이 세상에서 펼쳐지는 모든 일들은 인과관계에 의해 발생됩니다.
우리가 실망하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마음도 역시 인과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실망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어떤 결과를 기대하기 때문에 실망하는 것입니다. 결과를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할 수 없습니다. 결과를 야기시키는 원인의 씨앗을 애초에 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씨앗 없이는 열매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Yuval Noah Harari 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전보다 풍요로워지면, 생활환경이 좋아지면, 먹거리가 많아지면, 삶에 대한 만족도나 행복지수가 높아져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의 행복이란 얼마나 식량이 많은가, 얼마나 큰돈을 소유하고 있는가와 같은 객관적인 지표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기대치에 좌우됩니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그 기대가 충족되면 행복하다 느끼고, 반대로 기대에 못 미치면 불행하다 여깁니다.”
인간은 형편이 좋아지면 함께 기대치도 높아집니다. 갖고 있지 않을 때에는 그것을 갖게 되면 성취감과 행복감이 충만해질 것이라고 여기지만, 실제로 갖게 되면 그 성취감과 행복감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누리고 싶어 합니다. 이를 제 아들에게는 바닷물과 같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10살 된 제 아들은 게임 아이템을 사기 위해 현금 결제를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제가 술에 취해있는 심신 미약 상태일 때를 집중적으로 노리는 편입니다. 아들에게 물질을 통해 얻는 만족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게임 아이템 현금 결제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게임 아이템 현금 결제는 게임을 통해 얻고자 하는 효용을 짧은 시간에 달성함으로써, 게임을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바닷물을 함께 마시는 것으로 귀결되고는 합니다만, 알고 마시는 것과 모르고 마시는 것은 큰 차이가 있죠.
물질을 통해 얻는 만족은 유발 하라리의 이야기처럼 그 끝이 없이 계속 확장됩니다. 그것을 통제하는데 실패하면 결국 물질이 인간을 잡아먹게 되어, 인간성은 사라지고 물질을 추구하는 한낱 동물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를 등에 업은 경제 시스템이 사회구조와 정치질서를 좌지우지하고,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보여주고 있듯이 말입니다.
끊임없이 확장하는 물질세계에서 인간성을 지켜내기 위해 유발 하라리는 수렵 민족을 본받을 것을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첫째, 수렵 민족은 자신의 바람에 부합하게 환경을 바꾸기보다 자신을 환경에 적응시킵니다. 수렵 채집인은 줄곧 자신의 힘으로는 환경을 바꿀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보다 훨씬 유연성과 적응력이 뛰어납니다. 둘째, 수렵 민족은 자기 몸과 감각에 민감합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감각을 갈고닦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인은 가상공간에서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자기 몸과 감각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외부 환경을 바꾸는 것보다 나 자신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라는 자아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며, 스스로 변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결국 외부 환경을 바꾸려고 애쓰게 되고, 이 과정에서 타인들과 수많은 마찰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세상 문제의 근원이죠.
주변인들의 생각, 주변인들의 반응, 주변인들의 모습은 결국은 내가 느끼는 것입니다. 내 바깥에 실제로 존재한다고 여기는 것들은 모두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싯다르타의 연기법은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보고, 내가 듣고, 내가 느끼는 것들은 결과가 아닌 원인입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외부의 원인을 통해 야기된 결과가 아니라 그 자체로 원인입니다.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하라는 아저씨가 느끼는 분노의 원인은 아파트 단지에서 큰 소리로 짖어대는 개가 아니라, 그 이전에 물질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아저씨의 존재가 원인입니다. 듣고 있는 내가 있기 때문에(원인),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결과)입니다.
인간이 실망하는 이유는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결코 충족될 수 없습니다. 기대감이 충족되면 새로운 기대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이죠. 그렇게 물질세계는 멈추지 않고 확장하게 되고, 인간과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는 그 물질세계에 휩쓸려 본질을 망각합니다.
그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아닌 환경을 바꾸려 하고, 그 과정에서 모든 마찰이 발생합니다. 원인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모든 원인은 ‘나’에서 출발합니다.
기대와 실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으로 나아가는 것은 나를 둘러싼 외부 물질세계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이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