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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물질의 방 Oct 01. 2022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할 사업의 본질

동그라미 위를 걷는 아이처럼

부자가 되고 싶은가? 근로소득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 부자가 되려면 사업소득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사업이 어디 쉬운가...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내가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될 사업의 본질을 알려주겠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넘어서 있는 진짜 비밀 하나를 알려주겠다. 그 답은 동그라미에 있다.     


싯다르타의 탄생 설화에서 길을 가던 점쟁이가 어린 싯다르타를 보고는 이 아이는 속세에 남아 있으면 수많은 수레를 이끌고 세상을 다스릴 전륜성왕이 되거나, 속세를 떠나 수행자의 길로 들어선다면 부처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결국 싯다르타는 수행자의 길을 택했고, 전륜성왕이 아닌 법의 바퀴, 법륜을 굴리는 부처가 되었다. 불교의 상징인 법륜은 수레바퀴와 같이 생겼다. 수레바퀴는 동그란 모양으로 그 시작과 끝이 없다.


싯다르타의 '공 公'사상이 의미하고 있는 바가 동그란 모양의 원만한 '원'이다. 우리나라에서 창시된 원불교에서는 부처의 심상이라 하며, ‘원’을 법당에 모셔놓고 종교행사를 한다.      


원 또는 동그라미는 꼭짓점이 없는 도형이고, 양쪽 끝부분이 이어져 있다. 동그란 형태는 부드러운 곡선을 표현한다. 이와 다르게 세모나 네모는 꼭짓점이 존재하고, 수 개의 직선이 연결되어 만들어져 있다.

     

삼각형은 3개의 직선의 집합이고, 사각형은 4개의 직선의 집합이다. 동그라미는 n개의 직선 또는 n개의 곡선의 집합이라고 표현할 수 없다. 동그라미는 전체가 하나로 표현된다.      


운동장 위에 큰 동그라미를 그리고, 어느 한 지점에서 출발해 시계 방향으로 걷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나는 가고 있는 것인가? 오고 있는 것인가? 나는 가고 있는 동시에 오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동시에 죽어가는 것이다. 마치 동그라미 위를 걷는 아이처럼.     

 

컴퓨터의 연산 방식은 디지털 방식이다. ‘0’ 또는 ‘1’로 모든 정보를 처리한다는 것이다. ‘0’은 없는 것을 의미하고, ‘1’은 있는 것을 의미한다. 있다/없다, 크다/작다, 좋다/나쁘다, 기쁘다/슬프다 등 인간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도 디지털 방식으로 처리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1’은 선호하고, ‘0’은 비 선호하는 편견과 관념에 빠진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도, 가난을 싫어하는 것도, 애인과 헤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모두 이 관념으로부터 야기된다.


우리는 타인에게 ‘있는 것(1)’을 자랑하지, ‘없는 것(0)’을 자랑하지는 않는다. 자랑하는 하는 이도, 자랑을 듣는 이도 사고 과정 깊숙이 고정관념이 박혀 있다.   

  

인류의 역사, 과학, 기술 모두 ‘1’을 향해 달려간다. 마치 영원히 사는 사람들처럼 영원을 추구하면서 말이다.


그 과정에서 다방면의 비즈니스가 출현하는데 인간의 선호/비선호 관념을 이용한다. 보다 좋은 것, 많은 것, 높은 것, 빠른 것을 판매하고, 중독되게 만들어 관념을 더 확고하게 만든다.    


당신이 사업가라면, 반드시 인간의 이 편향된 관념을 인식하고 사업화해야 한다. 인간은 없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있는 것만 생각한다. 결국 당신이 타인에게 뭔가를 팔기 위해서는 있는 것처럼 보이면 된다. 없을 것이라는 의심보다,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보다 크다.      


이것을 이용하면 된다. 작은 것도 크게 보이게 하고, 하찮은 것도 거창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 사업의 본질이다. 그렇게만 하면 인간의 ‘1’에 대한 편향으로 자연스럽게 사업은 커질 것이다. 사기 아니냐고? 사업과 사기, 그 본질은 같다. 


성철스님도 떠나면서 평생을 거짓말만 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아무리 좋은 말도 뭔가 있다고 하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본질은 거짓말일 뿐이다.


여기까지가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지속될 사업의 본질이고, 이제는 이 너머에 있는 진리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선호/비선호와 같은 이진법 방식의 사고체계로는 진리에 이르기 어렵다. 동그라미 위를 걷는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가면서 동시에 오는 것이고, 갖고 있지만 동시에 잃어 가고 있는 것이고, 좋은 것이지만 동시에 나쁜 것이라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것이 싯다르타가 금강경에서 제자 수보리에게 반복해 이르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행위’이다. 또한 ‘공’ 사상의 실천이기도 하다. ‘공’ 사상을 현대어로 풀어 보면, 있다고 할 것이 없다고 표현할 수 있다. 우리가 있다고 느끼는 것의 실체는 사실 없다는 것이다.    

 

난해한 표현이지만, 동그라미 위를 걷는 아이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조금 이해가 된다. 우리가 하는 행위는 동그라미 위를 걷는 것과 같이 가면서 동시에 오고 있는 행위일 뿐이다. 그 결과는 좋고 나쁨이 없다.    

 

또한 동그라미는 삼각형, 사각형과 달리 직선의 집합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도형을 의미하고, 이것은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것, 나와 남을 분별하고, 적대시하는 행위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물질세계라는 늪 속에 빠져 허우적댄다. 늪 속에 갇히지 않는 방법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은 진실 그대로를 보여준다.


밤과 낮, 생과 사, 불과 물 등으로 영원한 것은 있을 수 없고, 있는 것은 반드시 없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연은 그대로 최고의 스승이다. 공자의 이상향이었던 말 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런 스승 말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우리가 현실이라 느끼는 세상이 결국은 [0, 1]로 이루어진 가상 세계라는 주제를 다룬다.


성경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선호/비선호가 생기게 되며 인간 세상의 모든 문제가 발생했다고 가르친다. 불교의 ‘공’ 사상과 꼭짓점과 직선이 없는 원만한 동그라미는 자연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진리를 담고 있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사업의 본질을 깊게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그 너머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고, 이것이 내 영혼을 충만하게 만들어줄 진정한 의미의 사업을 가능케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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