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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물질의 방 Jan 24. 2023

죽음이 주는 선물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 를 읽고 있다.

유대인 학살이 자행되었다고 알려진 아우슈비츠에 수감된 저자의 경험과 깨달음에 대해 적힌 책이다.

수용소에 수감되는 이들은 소지품 모두를 빼앗기고, 내 것이라고는 몸뚱이만 남겨진다고 적혀있다.
저자는 그 상황을 인간으로의 실존으로 표현한다.

최대로 불행한 상황에 처하면 비로소 실존을 마주한다. 진짜의 나를 마주한다.

나를 겹겹이 쌓고 있는 허물들이 벗겨지고 세상에 남겨진 것은 나뿐일 때, 인간은 어떤 의미를 찾아 삶을 지탱해 나갈 것일까.

우리 모두는 결국 죽음의 수용소로 향할 것이다. 거동이 불편하고, 생기는 사라지며, 정신은 아득할 것이다.

의료기술의 발달은 역설적으로 수용소에서의 시간을 늘려줄 것이다.

한 번은 내가 정치범으로 무기수로 감금된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의미로 삶을 지탱할 것인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물질을 누리며 산다는 착각으로 물질에 지배당하며 사는 지금의 삶보다 정신적인 면에서는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다.

월든도 법정스님도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큰 행복을 얻었다 하지 않았나.

감옥에서의 생활과
내게 다가오는 죽음의 수용소를 상상해보며,
헐벗은 몸뚱이 하나만 남겨졌을 때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자문해 본다.

돈으로 음식을 사 먹고, 옷을 사 입고, 따뜻한 집을 살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입구에 선 나치대원과 같은 죽음에 의해 빼앗길 것이 분명한 것들이다.

영혼을 살찌우는 음식, 영혼을 입히는 옷, 영혼을 보호하는 집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이런 것들에 신성함을 부여하며 높은 가치로 판매하려 하는 이들도 자주 보인다.

영혼을 살 찌우는 방법들은 법당에 교회에 성당에 있지 않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지니고 있다. 내면에 가득한 빛을 지니고 있음에도 덕지덕지 묻어 있는 먼지들로 내면의 빛은 찾지 못하고 밖에서 찾아다니는 것이 문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내게 의미 있는 그것. 비상구 표시처럼 그것을 쫓아가다 보면 도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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