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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물질의 방 Apr 18. 2023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밀을 수확하여, 밀가루를 만들고, 밀가루를 반죽하고, 오븐에 넣고 굽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빵이 열리는 나무가 있다면 번거로운 과정 없이 빵을 먹을 수 있을 텐데, 그런 나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장에 가면 빵이 있고, 돈을 주고 사 먹으면 된다.

이 세상은 초연결을 넘어서 초초연결로 치닫고 있다. 맛있는 빵과 같이 가공된 지식들이 셀 수 없이 널려 있다. 인터넷, 유튜브, SNS 등 적은 비용으로도 언제든지, 얼마든지 접근이 가능하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공된 지식만을 습득하면서, 자연스럽게 편향된 사고를 갖게 된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소비자의 시청 데이터를 분석해서 원하는 영상을 끊임없이 추천해 준다.

단팥빵을 좋아하는 내 코앞에 따뜻한 단팥빵을 계속 가져다주는 격이다. 그렇게 우리는 빵을 쉽게 먹을 수 있게 되고, 거기에 의존하게 된다. 더 이상 밀을 수확해 밀가루를 만들고, 반죽을 거쳐 빵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불필요해진다.


플라톤의 비유한 깊은 동굴 속에서 그림자만 키워가며, '이 빵은 이래서 옳다, 저 빵은 이래서 그르다.'라는 불필요한 논쟁만 한다.

인간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빵이라는 결과가 아닌, 빵을 만드는 과정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눈앞의 빵이 아닌, 빵을 만드는 과정에 더 관심이 있었다.

과정은 철저히 경험의 영역이다. 결과는 살 수 있지만, 과정은 살 수 없다. 과정을 익히기 위해서는 경험하고 배워야 한다.

땅에 씨앗을 심어, 바람, 햇살, 비가 키운 밀을 수확한 후 가루를 내고 반죽해 빵을 만들어 보는 과정을 거친 경험을 가진 이가 미래 사회에서 정보의 바닷속에서 노이즈를 걷어내고, 필요한 지혜를 습득해 두발로 우뚝 서있을 수 있는 인간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려하고 보기 좋게 가공된 콘텐츠보다는 밀가루처럼 푸석하고 거친 콘텐츠에 관심 가져야 한다.

밀가루와 같은 콘텐츠는 영상과 책에 공통적으로 담겨있을 수 있지만, 지식의 밀도는 책이 훨씬 높다. 지식의 밀도라는 것은 오디오북을 들어보면 체감되는데, 한정된 시간 동안 습득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읽는 것과 듣는 것은 큰 차이를 보인다.

이것이 보기 좋은 영상물보다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동양 고전 채근담의 제목은 이런 뜻을 담고 있다. "나무뿌리를 씹어 삼킬 수 있으면, 능히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

빵은 맛있지만, 건강에는 좋지 않다고 전해진다.
입에 달고, 향기롭고, 보기 좋은 것치고 삶에 유익한 것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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