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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물질의 방 Feb 21. 2022

'0'은 정수이다.

'0'은 정수이다. 십진법은 0~9까지의 숫자를 사용한다.

당연한 지식이었는데, '초보자를 위한 파이썬 실습 예제'를 풀다가 새삼스레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동양에서는 9를 완전한 숫자로 인식한다. 십진법의 용법에 따라 0에서 9까지의 숫자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세돌도 9단이었고, 태권도도 9단까지 있다.

코딩을 할 때에도 문자열을 컴퓨터에게 인식시킬 때 첫 번째 자리는 0의 자리라고 명령해야 알아먹는다. 1의 자리라도 명령하면 두 번째 자리를 인식해서 코딩이 꼬인다.

서두에 꺼낸 정의와 같이 '0'도 정수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도 그 자체로 인식해야 한다. 0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으며, 더불어 모든 것의 출발이다. 컵에 물을 따르기 위해서는 컵에 물을 버려야만 가능하듯이 말이다.



물질문명은 0을 인정하지 않는다. 1에서부터 시작하여 끝없이 늘어만 간다. 컵과 물의 비유에서 명확히 보여주고 있는 간단한 진리조차 물질문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물질문명의 이런 편향과 그에 적응된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흔한 실수 중 하나가 주식시장에서 보인다.

주식의 대가들이 하락의 징조가 보일 때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현금 비중 늘리고, 관망하세요." 시장의 방향이 불확실하니 현금을 갖고 기다리라는 의미이다. 뭐 언제는 시장이 확실할 때가 있는가라고 이야기하면 할 말은 없지만, 대다수의 시장 참여자들은 주식투자자로서 당연히 투자할 원금만큼 주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식을 갖고 있지 않는 것, '0'도 정수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시장의 욕심이 터지는 순간이 오면 자신의 원금만큼을 모두 주식으로 갖고 있던 대다수의 시장 참여자들은 그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반면 '0'도 정수라는 사실과 무 포지션도 하나의 종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노련한 이들은 이때 매수를 시작한다.



법정스님의 저서 '무소유'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무소유는 공동소유의 또 다른 이름이다.'


돌아가는 시곗바늘은 12에서 출발하여 다시 12로 온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나는 것이다. 시간은 한 시간 지났지만, 바늘은 다시 그 위치에 와 있다. 무소유가 공동 소유의 또 다른 이름인 것처럼, '0'은 출발점이자, 도착점이다. 은하계가 빅뱅으로 생겨났듯이, 모든 생명이 태어나고 죽는 것과 같이 말이다.

모든 인간은 '0'으로부터 태어나 '0'으로 돌아가는 삶을 산다. 내가 보낸 하루도 아침에 일어나며 '0'에서 시작되어, 잘 때가 되면 '0'으로 돌아간다. 들숨과 날숨도 '0'과 '1'로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여러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윤회도 직관적으로는 타당하게 여겨진다.

물질문명의 덫에 빠지지 않은 상태로, 정신을 온전하게 보전하고, 또한 시장에서 시장 참여자로서 내 자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0'도 정수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니, '0'은 다른 9개의 숫자들보다 보다 중요한 숫자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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