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달리기에 익숙해지면,
러너스 하이를 경험하게 된다. 사점이라고도 불리는 이 단계는 보통 5km 또는 30분 이상을 달리다 보면 경험하곤 한다.
러너스 하이에 돌입하면 생각이 멈추고 마치 달리고 있는 나와 그것을 관찰하는 내가 분리되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 기분을 한번 느낀 사람은 달리기를 멈출 수 없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계속 달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러너스 하이 경험은 관찰자로서의 나를 깨닫게 해준다. 삶을 행위자가 아닌 관찰자로 바라보게 되면 많은 문제들이 해소된다. 아니 문제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관찰자인데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삶을 우주가 가져다주는 영화처럼 여기면,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일들이 관람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는가.
응무소주 이생기심
마음에 어떤 생각이 일어나거든,
그것에 머무르지 말라.
금강경에서는 위와 같은 구절로 삶에서 고통을 제거할 것을 가르친다.
불교철학에서는 행위는 하되, 결과에는 종속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달리는 나를 잊고 관찰자가 되는 러너스 하이는 가장 쉽게 진리를 체험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힘들거나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마음 속에 '힘들다.', '하기 싫다.'라는 생각이 떠오르면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다. 나아간다 하더라도 억지로 떼는 걸음일 뿐이다.
이때 '힘들어하고 있구나.', '하기 싫은 마음이 생겼구나.'라고 떠올려보자. 삶이라는 영화 속 나라는 배역은 관람객의 생각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 법이다. 생각을 바꿨을 뿐인데, 놀랍게도 행위는 계속된다.
관찰자가 되어 보는 것은 행위의 고귀함을 높여주기도 한다. 내가 하는 행위는 육근(눈, 귀, 코, 혀, 몸, 뜻)을 이롭게 하는 행위에 그치지만, 관찰자로서 나를 관측하는 경우에는 보다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행위를 하게 된다.
공동선을 위한 행위, 자애로운 행위 등 우주의 일부인 나를 통해 우주를 이롭게 하려는 행위를 하게 된다. 부와 명예는 뒤따라오는 것일 뿐이다.
관찰자로서 나와 내가 하는 행위를 관찰하는 것은 불교철학에서는 으뜸으로 치는 수행법이다. 당장 요가를 하거나 묵언수행을 할 필요는 없다. 달리기를 통해 느껴지는 러너스 하이가 관찰자로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