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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Sep 18. 2020

영화 <기생충> 리뷰

솔직한 현실, 슬픈 희망

(2019-06-03에 작성)

… 스포일러 有 …



 지난 5월 27일 우리나라 최초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의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최소 수상인 만큼 많은 화제가 됐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제목을 보고 봉준호 감독이 이번에는 어떤 크리쳐(괴물 또는 생명체)를 만들어 냈을지 궁금해했다. 이미 전작인 ‘괴물’, ‘옥자’ 등에서 독특한 생명체들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영화에는 기생충이 나오지 않습니다”라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렇다면 과연 실제 기생충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 ‘기생충’은 어떤 내용일까?


 #진짜 기생충은 없지만 다른 기생충이 있다.

 가족 전원이 백수인 기택 가족의 장남인 기우는 친구의 소개로 부잣집인 박 사장의 첫째 딸 영어 과외를 하게 된다. 기우는 박 사장 집에 간 첫날 박 사장의 막내아들인 다송의 미술 선생으로 자신의 동생인 기정을 다른 사람으로 속여 추천한다. 이를 시작으로 기우와 기정은 박 사장 집에서 일하는 운전기사와 가정부를 어떤 사고를 겪게 해 내쫓아 버린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부모인 기택과 충숙을 모르는 사람인 양 소개해준다. 이렇게 기택의 가족은 박 사장 집에 들어가 일을 하며 영화의 제목처럼 기생충 같이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실 기택의 가족만을 박 사장 가족에 빌붙어 사는 기생충이라 말할 수 없다.

 영화에서는 기택의 가족, 박 사장 가족, 박 사장 집 가정부인 문광의 가족을 보여준다. 이 세 가족 모두 어딘가에 기생해 살아가고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기택의 가족은 박 사장 집에 기생하고 있다. 그리고 문광 또한 박 사장 집에 기생해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빚쟁이에 쫓긴다는 이유로 박 사장 집 지하벙커에 자신의 남편을 숨겨놓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족이 기생하고 있는 박 사장의 가족은 어디에 기생하고 있을까? 바로 부유함이다. 돈이 주는 부유함에 기생하며 편함 삶에 취해있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준다. 예로, 박 사장의 아내인 연교는 믿을 만한 사람에게 소개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믿음의 벨트’를 운운하며 기우와 기정을 전적으로 믿고 아무런 의심 없이 기택과 충숙을 집으로 들인다. 이렇게 세 가족은 모두 어딘가에 기생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어느 가족 하나 스스로 서 있지 못하는 것이다.


 #기택은 세 번 잠에서 깨어난다.

 영화에서 기택은 세 번 잠에서 깨어난다. 그런데 기택은 깨어날 때마다 각기 다른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첫 번째 깨어남은 영화 초반이었다. 그는 무능력한 가장으로 깨어났다. 예전부터 기택이 놀고먹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여러 일을 했지만 한때 유행했던 ‘대만 카스텔라’ 장사가 망하고 난 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하는 수 없이 집에만 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잠을 자고 부업으로 피자 박스를 접다가 실수해 혼나고 일자리를 구해 면접을 보러 가는 아들을 응원하는 일이 전부다.

 두 번째 깨어남은 박 사장의 집에서였다. 기택은 박 사장의 운전기사로 취업했다. 그리고 박 사장 가족이 놀러 나간 사이 박 사장의 집을 마치 자신의 집으로 여기고 낮잠을 늘어지게 잔다. 앞서 반지하에서 쭈그리고 자던 모습과는 매우 상반되는 모습이다. 그는 이전과 다른 행복한 잠에서 깨어났다.

 마지막 깨어남은 체육관에서였다. 기택은 기우의 부름에 옅은 잠에서 깬다. 이들은 분명 좀 전까지만 해도 박 사장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못 먹던 음식을 먹으며 풍요롭게 지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폭우가 내리며 박 사장 가족이 빨리 돌아오게 됐고 기택의 가족은 박 사장의 집에서 자신들의 집으로 도망치듯 돌아오게 됐다. 돌아온 집은 열려있던 창문으로 빗물이 쉴 새 없이 들어와 이미 물에 잠겨있었다. 그러니까 기택은 집이 없어진 상태로 마지막 잠에서 깨어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음 계획을 묻는 기우의 질문에 “가장 좋은 계획은 무계획이다”라며 삶이 계획된 것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말을 뱉는다. 이렇게 영화의 분위기를 중심인물이 잠에서 깨어날 때를 기점으로 변하는 것이 꽤 흥미로웠다.


#상징적이네요.

“상징적이네요.” 기우가 다송의 그림을 보고 한 대사다. 그런데 이 대사 한 마디로 영화 ‘기생충’을 정의할 수 있다. 즉, 이 영화는 많은 상징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상징은 계단이다. 박 사장의 집은 많은 계단을 올라와야 들어올 수 있다. 반면에 기택의 집은 반지하다. 기택의 가족은 반지하에서 벗어나 계단을 오르며 박 사장 가족의 삶에 들어가 일종의 신분 상승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폭우가 내리던 날 기택, 기우, 기정은 박 사장 집에서부터 집으로 가는 긴 계단을 하염없이 내려간다. 그들이 비를 맞으며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내려가는 모습에서는 비참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상반된 이미지로 빈부격차를 극명하게 비추기도 한다. 기우가 박 사장 집에 면접을 보러 갈 때 기우는 사람 한 명 지나갈만한 좁은 골목을 지나간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 박 사장 집 앞의 넓은 골목을 보여준다. 또, 폭우가 내리던 날 밖에 있는 다송의 인디언 텐트를 보고 박 사장이 물이 샐까 걱정을 하자 연교는 “물 안 새요. 미제 텐트잖아요”라고 한다. 반면에 기택의 집은 이미 물이 목까지 차올라있다. 이렇게 극명하게 보이는 빈부격차를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봉준호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영화에 대해 “현재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대면하기로 했다. 영화의 마지막 감정은 물론 희망을 말하긴 하지만 역시나 슬프다. 우리 모두 바라지만 과연 그것이 이뤄질지는 안타깝게도 당장은 가능성이 희박하니까. 그런 솔직함을 담은 영화”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영화 ‘기생충’은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를 신랄하게 비판하고자 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솔직하게 비추는 슬픈 영화에 가깝다. 슬픈 희망을 보여주는 ‘기생충’은 이름에서 오는 강렬함처럼 긴 여운을 남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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