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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Sep 20. 2020

<목욕의 고향>

몸만 씻는게 목욕은 아니에요.

  


 나는 목욕탕 가는 일을 싫어한다. 아니, 싫어하게 됐다. 왜 싫어하게 됐는지를 말하기 이전에 내가 목욕탕을 얼마나 오랫동안 다녔는지부터 말해야겠다. 엄마의 기억으로는 백일 지나고 나서부터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갓난아기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평생이라고 부를 시간만큼 목욕탕에 다닌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그리고 명절 전날, 나는 반드시 목욕탕에 간다.     


 이렇게 목욕을 오래 다녔으니 당연히 원래 목욕탕은 좋아했다. 어렸을 때는 엄마와 둘이서 목욕을 다녔다. ‘푸른탕’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주 작은 동네 목욕탕이었는데 집에서 걸어서 3분 정도 될까 싶은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내 목욕탕 역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자리에 빌라가 들어서 옛날 모습은 아주 찾아볼 수 없다.

 푸른탕이 없어진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아주 큰 충격을 받았다. 물론 당시에 느끼는 충격과 슬픔이 ‘어떤 것이다’ 정의할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고향이 사라졌다는 것과 같지 않을까. 여유로운 일요일 아침 햇볕, 지금보다 주름 없던 엄마의 손을 잡고 내리막과 계단을 내려가던 기억, 세신 침대에 누워 쉴 새 없이 조잘거리던 작은 입을 항상 웃는 낯으로 바라봐 주시던 세신사 아주머니, 엄마가 아무도 없는 냉탕에서 보여준 웃긴 모습의 개구리 수영, 목욕을 막 끝낸 따끈한 몸에서 김을 폴폴 풍기며 작은 목욕탕 냉장고 앞으로 달려가던 내 모습, 나무 평상 위에서 다리를 까딱이며 마시던 차갑고 달콤한 초코우유, 바람이 불 때마다 물기를 머금은 단발머리에서 나던 샴푸 냄새. 이것들이 모두 살아있는 목욕의 고향이 한순간 형체도 없이 무너졌으니 나는 어린 나이에 고향 잃은 슬픔을 겪은 셈이다.     


 요즘은 모두가 힘들어하는 그 전염병으로 가지 못하고 있지만, 지금 다니는 목욕탕도 푸른탕 만큼이나 꽤 오랫동안 다녔다. 하지만 나는 이곳을 두 번째 목욕의 고향으로 명명하지 않을뿐더러 목욕을 하러 가는 것도 꺼린다. 이곳을 다니면서 나는 목욕탕과 점점 멀어졌다.     


 H 목욕탕에 다니며 알게 된 것은 항상 비슷한 시간대에 오는 그룹이 몇 개 있다는 것이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목욕을 같이 와 서로 등을 밀어주고 대화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딱 이 정도라면 말이다. 그런데 이들은 유독 자리 욕심이 강하다. 특히 A그룹은 목욕탕 내에 마을을 하나 만들어 버린다. 여기는 누구 집, 저기는 누구 집 하며 아직 오지도 않은 사람들의 자리를 잡고는 그곳에 다른 사람이 앉을 수 없게 한다. 실제로 ‘여기는 누구 집이네’ 따위의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열 개 가까운 공석에 한 시간이 넘도록 다른 사람을 앉지도 못하게 만드니 이게 폐쇄적인 마을 하나를 만드는 게 아니라면 달리 표현할 수 없다.


 원래는 이들을 피해 앉았다. 자리로 다투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게 감정을 버리기도 싫었다. 하루는 탕에 들어서는데 그 무리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원래 자리가 다 잡혀 있을 시간에 아무도 없으니 오늘은 안 오거나 늦게 오겠거니 하고 나와 할머니, 엄마는 자유롭게 앉았다. 우리 가족이 모여서 몸을 한창 씻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분주히 우리 자리 주변에서 서성이는 게 아니겠나. 알고 보니 A그룹에서 자리 잡는 것을 담당하는 사람이었다. 후에 그 무리 중 실세인 사람이 왜 늦게 와서 자리 잡았냐고 우리를 한 번 보고는 자리 담당자를 나무라는 것을 보고 알았다. 결국, A그룹은 우리 가족을 둘러싼 모양으로 자리 잡고 앉게 되었고 목욕 내내 눈치를 주기는 했지만, 그때까지는 별일 없을 줄 알았다.     


 그들은 마사지하겠다며 커피 찌꺼기 같은 것은 꺼내 서로의 등에 발라줬다. 그런데 아무래도 재료가 상했는지 커피 향이 섞인 괴상한 냄새가 났다. 정말 온 목욕탕에 퍼질 정도로 심한 냄새였다. 할머니가 냄새 때문에 인상을 쓴 모습을 봤는지 A그룹의 실세가 “어머니, 냄새 때문에 힘드신가 보네예.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여기 앉지 마세요.” 하는 것이 아닌가. 얼핏 상냥한 목소리였으나 분명한 칼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목욕이 끝나 할머니와 엄마보다 먼저 나가게 됐다.

 “그 일가족이 우리보다 먼저 와서는 아직도 씻고 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 몸을 한 참 마사지하드라.”

 실세는 목욕을 먼저 끝내고 나와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짜증이 가득 섞인 표정과 목소리로. 그 사람 바로 앞에 내가 있었는데 나를 보지 못한 것인지 자신과 친한 사람들과 우리 가족 이야기를 했다. 나는 속에서 뭔가 끊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어째서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입구에 뻔하게 미리 자리 잡아놓는 것은 금지라고 적힌 문구가 안 보이는 건가?’, ‘저들은 저 자리를 돈 주고 샀을까?’, ‘왜 우리 가족이 욕을 먹어야 하지?’ 퍼뜩 정신을 차리지 않았으면 아마 그들과 대거리를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무표정을 유지하며 속으로는 화를 눌렀고 그대로 앞을 지나갔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내 친구는 나보다 더 불같이 화를 냈다.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어딨냐며, 자신이었으면 따지러 갔을 것이라고. 충분히 공감한다. 그날 내 일기장에는 엉망진창으로 갖은 욕과 소심한 나에 대한 화가 솟구쳤으니. 하지만 지금 보면 대거리하지 않은 것이 나은 선택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막 몸을 깨끗이 씻고 나왔는데 뭣 하러 무례함을 잔뜩 뒤집어쓴 사람과 말하며 다시 더러운 것을 묻히겠는가.     


 이 사건을 겪으며 나는 더 간절하게 두 번째 푸른탕을 그리고 있다. 다정함이 있는 곳. 마음의 때를 벗겨내 깨끗하고 반질반질한 마음을 가지고 싶은 사람들이 오는 곳. 처음 보더라도 따끈한 몸으로 탕에서 나온 아이에게 초코우유 하나 사서 건넬 수 있는 곳. 그곳으로 매일 같이 목욕을 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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