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누이고 말리는 곳
‘CAFE LITTLE FOREST’, ‘고양이 조심’
유리로 된 창문과 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는 조금 무거운 유리문을 밀고 처음 보는 공간에 발을 들였다. 원래 새로운 공간에, 그것도 혼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그날은 그냥 어서 들어가 앉고 싶었다. 낯설고 말고를 가릴 것 없이 그냥 좀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다들 유난히 우울한 날이 있지 않나. 마음에 회색 구름이 잔뜩 몰려와서는 곧 비를, 엄청난 양의 비를 내릴 것이라고 예고하는 날. 나는 유난히 이런 날이 자주 있는 사람이다. 아침에는 맑았다가 오후에는 흐려지고, 다음날 새벽에는 홍수에 잠겨버리기 일쑤다. 그날도 이 성격이 한몫해 축축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채였다. 마음을 꺼내서 말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다녔다. 집에 가만히 있다가는 어쩌지도 못하고 잠기겠다 싶어 가방을 챙겨 나왔다.
여름날 오후의 햇살은 생각대로 뜨거웠다. 정처 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물기가 다 날아갈 것처럼. 그런데 마음이 마르기는커녕 이마와 목, 등허리까지 축축해질 뿐이었다. 나는 일단 다리라도 쉬자는 마음에 근방에 좀 쉴만한 카페가 있을까 찾아봤다. 그러자 손 안 똑똑한 지도는 바로 앞,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작은 카페가 있다는 걸 알려줬다. 좁다란 골목을 조금 들어가니 유리문으로 된 작은 카페 하나가 나왔다. 평범한 갈색 벽돌 건물에 간판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 신경 안 쓰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하고 이 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데도 있었구나.” 알고 보니 ‘리틀 포레스트’는 2016년도부터 이 동네에 자리를 잡은 듯했다. 집과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사람이 적은 동네 골목에 이런 카페가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카페는 이름만큼 정말 작은데 그만큼 잘 채워진 느낌이었다. 따뜻한 조명과 강렬한 햇빛을 옅게 만들어 주는 흰 커튼, 많은 사람 대신에 제 자리를 조금씩 차지하고 있는 식물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음악이 공간을 채웠다. 조그마한 공간을 채우기에는 아주 적절한 것들이다. 거기에 고양이 두 마리까지.
카페가 점점 마음에 들어갈 무렵 사장님이 커피를 갖다 주셨다. 나는 고소한 커피를 마시며 창가에 마음을 널어 말리기로 했다. 이렇게 적당한 공간이라면 분명 내 마음도 적당히 따끈하게 마를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확신은 적중했고 이후로 나는 이곳을 단골로 삼아 자주 드나든다.
“Forest. For rest.” 카페에 들어가기 전에 속으로 항상 작게 읊게 된다. 이건 대학 때 과제에 써먹었던 문구이기도 하다. 일종의 말장난을 이용한 것인데, ‘Forest’(숲)를 ‘For’(~ 위하여)와 ‘rest’(쉬다)로 나눠 ‘숲’, ‘휴식을 위한’이라는 두 의미를 떠올릴 수 있게 했다. 당시에도 내가 원하던 분위기와 딱 들어맞아서 좋아하던 표현이었는데 이 작은 카페와 참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항상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 했다. 잠을 자고 밥을 먹는 내 집에서도 ‘내 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없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집에 살고 있고 내내 할머니와 함께 방을 썼다. 온전한 내 방은 아니니 나는 항상 그 방을 ‘할머니 방’하고 불렀다. 하지만 나는 앞서 말했듯 우울함에 자주 덮쳐지는 사람이고 이런 내게는 혼자의 방이 필요했다. 내가 우울함과 함께 오는 여러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가족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궁여지책으로 나는 모두가 잠든 새벽에 혼자 깨어 식탁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나마 혼자일 수 있는 시간, 공간이었다. 부모님이나 할머니는 늦은 밤부터 동트는 새벽까지 깨어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일찍 자라며 잔소리했지만 나는 오롯이 나만의 것인 새벽의 주방을 버릴 수 없었다. 그 새벽의 주방에서 나는 지금까지 혼자만의 공간을 꿈꾼다.
볕이 좀 적게 들어도 따뜻한 공간, 사람으로 채우기보다는 더 푸릇한 아이들로 채워진 공간, 고양이 한 두 마리가 낮잠을 자기에 적당한 공간, 쾅쾅 울리지 않는 잔잔한 소리가 여유 있게 차오르는 공간, 그리고 그 속에 가만히 누워 공간을 채우는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나.
당장 집은 이런 곳이 아니니 밖으로라도 찾으러 나가는 것이다. 집에 오기 전 쉬려고 발길을 한 번 돌리거나 집에서 쉬러 밖으로 나간다. 몸은 누울 수 없지만, 마음이라도 잠시 누이고 오면 습한 것들은 날아가고 그 마음에 적당함과 따뜻함이 조금 붙어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습해서 곰팡이가 필 것 같던 마음이 좀 나아짐을 느낀다.
마음이 나와 닮은 사람이 있다면 혹은 가까운 곳에 마음을 누일 곳이 없다면, 조금 걸어 나가서라도 마음을 누이고 말릴 공간을 찾길. 그곳에서라도 쉼표를 꾹 찍고 다시 돌아오길. 그러면 우리는 조금 더 우울을 버텨낼 힘이 생길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