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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룸펜 Oct 18. 2022

결혼정보회사 가입하는 마음

노총각 혼활 일기

퀘스트 시작

2019년


  미혼남녀가 결혼정보회사(이하 결정사)를 이용하게 된다는 것. 이것은 인생의 큰 숙제를 제때 풀지 못 한 대가다. 혹은 어떤 종류의 재난이 닥쳤기에, 불운이 뺑소니를 치고 갔기에, 그래서 발생한 사랑의 피난민이 우리 아닌가? 실패한 미혼남녀의 종착역 <결정사>에 도착하기까지 노총각은 다음과 같은 심리 변화의 단계를 거쳤다.


  우선 부정의 단계. ‘에이 설마, 내가 결정사까지 이용하게 되는 인생이겠어?’ 이렇게 자신을 믿으며 살지 않았는가? 나도 결혼 적령기에 사귀던 연인과의 관계가 박살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혼기라는 게 뭐길래, 기차도 아닌 걸 놓친다는 건지 코웃음 치지 않았는가? 로맨스 코미디의 어리숙한 주인공 모습에 깔깔 웃으며 감상하지 않았는가? 짝을 맺어주는 방송프로를 보며 이런 곳까지 나오는 출연자들을 이해할 수 없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제 내 차례였다.


  관객으로서 즐기던 시간은 어느새 종료되었음을 인지하는 순간, 부정의 단계는 끝나고 분노가 터져 나온다. 아 젠장! 선택지가 이것밖에 남지 않았다는 운명론에 대한 한탄. ‘어쩌다 이런 신세까지 전락하고 말았을까?’ 혹은 ‘나는 왜 이런 외모로 살고 있을까?’라는 존재론적 질문까지! 자신을 종합적으로 진단하는 계기가 된다.


  분노의 단계가 끝나갈 무렵, ‘결혼하지 않으면 어때서?’라고 핑계를 떠올려보지만, 이러다 언젠가 부모님까지 돌아가신다면 나는 천애고아 신세로 전락하는 것 아닌가? 외로움이라는 인간 근원의 공포가 노총각의 나약해진 마음을 덮쳐온다. 그래서 결정사 홈페이지에 접속했지만 선뜻 상담 전화를 걸 수 없었다. 선남선녀의 표준 모델들이 세상 행복한 모습으로 대문짝만하게 인사해주는 모습에 오히려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야 너도 할 수 있어’라며 암시를 걸어오지만 내가 저 수준이면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다시 짧은 부정-분노-공포를 거치고 비로소 협상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나처럼 생긴 사람들로 해두면 장사가 안 되겠지……)


  흥정의 단계. 나란 미혼남의 값어치가 얼마인가? 가입 비용은? 얼마나 좋은 여자들을 만나게 해줄 건지? 이런 수준 파악 덜된 자존심이 가입을 지연시킨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일종의 사회적인 허락을 요구하며 버티는 만행까지 저지른다. ‘자만추’는 이제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실리적으로 접근하자는 합리화, 소개팅으로 결혼했다는 이들이 실제는 결정사였다는 주변의 공익제보, 가입에는 자격이 요구되는 거니 오히려 부끄러울 게 아니라는 격려까지! 나는 이런 것들을 만족할 만큼 수집하고서야 비로소 가입 문의와 상담 예약을 하게 되었다.


  그럼 이제 체념과 수용의 단계. 결정사 매니저와의 통화, 그녀는 가입의 당위성을 정말 훌륭하게 역설했다. 시대적 흐름이자, 미래를 위한 올바른 투자이며, 현명한 선택이라는 말. 그녀는 결혼에 목마른 미혼남녀를 다루는데 도가 튼 사람이었다. 앞서 다른 업체의 상담사와 몇 번의 통화가 있었기에 확연히 비교되었다. ‘드디어 만난 건가…… 나를 구원으로 이끌어줄 사람을?’ 이쯤이면 운명을 수용하고 이곳에 가입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한 건 직접 뵙고 말씀 나누고 싶은데 어떠세요?”

  갑작스레 포획망을 던지는 것에 놀라서 머뭇거렸으나, 그녀의 목소리는 포기를 몰랐다. 현재 프로모션 특가 이벤트를 진행 중이니 가능하면 이번 주말까지 찾아오라는 치열한 권유가 이어졌다. 이상형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의논해보자는 설득까지! 쭈뼛대며 눈치 보는 노총각을 흡사 강제 연행해가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나의 심리적 장벽은 허물어졌고, 손에 손잡고 결혼정보의 세상으로 뛰어넘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방문을 확정한 뒤로는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없어졌다(극존칭의 안내 문자 메시지도 역할을 했을 거다). 나에게 있어서 이제부터의 상담이나 가입 안내 따위는 단순히 요식행위에 불과하게 느껴졌다. 다만 기분 좋은 넛지가 최종적으로 필요했던 거다. 그렇게 찾아온 결정사 사무실, 그녀는 인상 깊은 사람이었다. 잘 꾸민 외모와 특유의 화법, 그리고 여기까지 왔으면 더는 망설이지 말라는 분위기까지. 이어지는 능숙한 관찰과 실용적인 질의응답(직업, 재산, 학력 등)으로 인간 값어치의 산정이 빠르게 이뤄졌다.


  그런데 나는, 절박한 것과는 반대로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실상은 가입할 마음이 99%인 아사 직전의 결못남이었는데, 아마도 이런 뉘앙스 또한 이곳의 평가에 반영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을 거다. 절박할수록 가입비라도 올라갈 것으로 착각했던 거다. 혹은 매물 차트에 이렇게 써둘지도 모르는 일이지: ‘결혼 못 해서 안달 난 호구 노총각임, 적당히 아무나 매칭해주면 될 것 같음.’ 


  이런 태도 때문에 그녀는 나를 아직 확보하지 못 했다 판단했고, 계속하여 결혼 시장의 현황과 당신네 시스템의 우수성에 대하여 강조했다. 답답했다. 어째서 몰라주는 걸까? 가입 선고를 멋지게 내려주면 되는 건데…… 나 미혼남은 당신들의 까다로운 심사조건을 통과하여 가입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며, 능력 있고 여유 되면 꼭 하라는 의미의 선언. 이것을 당신 업계의 세련된 멘트로 포장해서 기분 좋게 들려주세요. 네?


  “이런 말까지 하기는 뭐하지만, 제 사위 삼고 싶은 분이네요! 호호호.”

  아앗, 이런…… 그녀는 이런 무리수까지 두고 말았다. 지금까지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오던 그녀였다. 이 부분에서는 자신도 과했다 싶었는지, 미소와 시선 처리에서 어색한 티가 났다. 이 정도까지의 립 서비스는 필요 없는데, 매끄럽게 못 할 거면 하지 마시지…… 억지로 띄워주면 나도 부끄럽잖아요!


  “오늘 가입하고 갈게요. 결제해주세요.

  그녀는 나의 결정을 칭찬하는 미사어구로 화답했고, 이어서 결제 방법을 물었다.


  “일시불이죠.”

  결정사까지 굴러들어온 처지에 구질구질하게(최후의 자존심) 할부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한꺼번에   돈도 아니고지금껏 데이팅앱에서  금액 이상을 가뿐히 썼으니까. 게다가 여자는 가입비가 더 많이 드는 것으로 들었는데, 아하! 그렇게 따지면 데이팅앱에서 그간 남자로서 일방적으로 소비한 돈을, 결정사에서는 반대로 돌려받는 느낌이 되는 걸까? 연애결혼시장 남녀 소비의 밸런스를 결정사가 가입비 차별을 통해 맞춰주는 것인가? 아아, 인과율의 저울이여! 혼활시장의 공정한 집행관이여! 이래저래 가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처음보는 명칭의 계약서를 작성했고 결제는 신속하게 이뤄졌다(내 카드를 들고 뛰었다……). 그녀의 깍듯한 배웅을 받고, 상담 부스마다 가득한 미혼남녀들을 뒤로한 채 건물을 나섰다. ‘살면서 이 분을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 젊음의 에너지가 가득한 길거리에서 주변을 살피며 설렘을 느꼈다. 이곳에 올 때의 부끄러움 따위는 이제 남아 있지 않았다. 무언가의 통과의례를 치러 낸 기분이었다. 결혼에 조금은 가까워졌다는, 드디어 한 발 내디뎠다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았다.






♥ 렛 츠 × 혼 활 ♥

- 업체나 서비스의 종류마다, 혹은 가입자의 나이에 따라 가격의 범위는 천차만별이다.

- 아무래도 자신이 언젠가는 이것을 가입하게 될 운명의 사람 같으면(엄마가 이제 제발 결정사 좀 가라고 했다든지), 역시 지금 당장! 자신의 가치는 높고, 가입비는 저렴할 때 하루빨리 시작하는 게 좋을 것이다.

- 본격적으로 혼활을 시작할 예정이라면 별도의 휴대폰 번호부터 만드는 것을 추천한다. 결혼까지 이어지지 않은 수많은 이성의 연락처와 카카오톡 프로필이 쌓이는 스트레스를 미연에 방지하고 싶다면! (이건 진짜 후회막심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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