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이 가까운 나라의 노총각
젊은 베타메일의 슬픔
1. “하필 지금? 이런 젠장”, 우리 사회에 <설거지론>이 터졌을 때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때는 2021년, 나는 그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망했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나의 결혼 활동이 망했다는 게 아니고(그 당시에 나는 진지하게 교제하던 사람이 있었다), 문제는 내가 쓴 글 때문이었다. 결혼하려 노력하는 노총각의 이야기를 브런치북 제9회 공모전에 출품했었다(지금은 비공개). 그런데 정확히 그 무렵에 남자와 여자들이 갑자기 싸우기 시작했던 거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하려 노력하는 소수자 감성의 내 글이 공모전에 당선되고 책으로 출간될 리는 결코 없었다.
2. 해를 넘겨 2022년, <설거지론>은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반골 기질이 있는 사람인 거다. 나는 이 세계의 남녀들이 싸우든 말든 노총각 이야기를 계속 써보기로 결심했고(어째선지 줄줄 쓸 수 있던 상황이었다, 결혼이란 개념에 몰입했던 시절이라, 1에서 만나던 여성과는 헤어졌다), 아예 다른 내용으로 새로 써서 제10회 공모전에 제출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때마침 <베트남론>이라는 어마어마한 소리가 터져 나왔고 미혼남녀의 갈등은 격화됐다. 하, 나의 결혼만큼이나 풀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공모전 접수 기간에 다음카카오 서버실에 불이 났는데, 내 마음에도 열불이 끓어올랐다. 이번에도 글렀구나.
3. 그리고 2023년, 아무래도 대한민국의 남자와 여자는 서로 싸우고 갈라서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의 남자들은 다 결혼하고 있었다. 다음 달에 마지막 노총각 친구가 결혼하게 되면, 나는 진정으로 이 세계에 홀로 남게 되는 것이다. 유부남들의 사이에 끼어들 수는 없으니 말이다. 혼자 노는 것에는 도가 터가고 있지만, 그래도 같은 처지의 동료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 나는 결정사를 이용하는 사람들끼리의 모임을 결성해 본 적이 있다. 졸업생 미혼남녀 동문끼리의 모임도 두 번이나 만들어 운영해 봤다. 그 과정에서 뭐랄까, 서로에게 좋은 기운과 응원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거다. 이것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는 위로를 같은 처지의 사람끼리, 그래 이것은 코호트 격리나 다름없었다.
4. 현재 나는 개점휴업 상태의 노총각이다. 결정사 매니저의 재가입 권유도 아주 단호하게 칼같이 끊어버렸고, 주변으로부터 제안받는 소개팅도 다 거절하는 나날이다. 훌륭한 조건을 들어도, 또는 아무런 조건을 듣지 않고도, 그냥 거부하는 것이다. 결혼을 포기한 거는 절대 아니다. 아무래도 당분간 쉬고 싶은 것 같다. 무엇을 계속하다가 쉰다고 멈추는 것은 좋지 않다. 재시작하는 것에는 오히려 큰 품이 든다. 예열이 오래 걸린다.
5. 쉬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거다. 지난 인생을 돌이켜보게 되고, 보지 않던 TV프로들도 시청하게 된다. 보아하니 요즘 미디어에서 밀고 있는 것은 “이혼”인 것 같다. “결혼은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육아 대리만족 프로그램도 어느새 사라진 것 같고, 짝을 짓는 프로그램들도 결국은 그 과정에서의 말초적인 쾌락과 재미만을 추구할 뿐이지 출연자들이 실제로 결혼하고 행복하게 사는지 여부에는 크게 관심두지 않는다. 이제는 하다 하다 동거를 권장하는 방송까지 나오고 있다. 이곳 브런치에서도 인기 있는 브런치북들은 전부 “이혼”이 그 주제다. 이런 것이 메인 스트림인데, 이 사회적 방향성을 거스르고 감히 “결혼하려 노력하는 노총각의 이야기”를 2년이나 썼다니, 나는 진짜 분위기를 모르는 놈인 거다. 아아, 비주류 인생.
6. 결혼시장에서 이성을 만나는 행위는 캡슐 뽑기머신을 돌리는 것과 다름없다. 현재의 데이팅앱과 결정사 시스템이 이런 환경을 조성한다. 비교질을 부채질하고, 다음에 등장할지도 모르는 훨씬 나은 조건의 이성을 찾아 무한 반복하게 만든다. 조금 아쉽거나, 조금 안 맞다면 포기가 빠르다. 다음이 있으니까 정착하지 않는다. 기준은 계속 올라가고 시간은 흐르는데 만족은 할 수 없어 멈추지 못 한다. SNS와 데이팅앱 때문에 인류는 비로소 감소하게 되는 것 아닐까. 그래, 우리가 결혼하지 않고, 출산하지 않고, 결혼과 이혼 소재를 미디어와 인터넷에서 지켜보면서 쾌락을 추구하다 소멸하는 것이 차라리 지구에 기여하는 바일지도 모른다.
7. 나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오히려 코로나 시국에 결혼하고 싶었다. 특히 ‘결혼 공장’과도 같은 현재의 결혼식 시스템이 싫어서 진정한 스몰웨딩을 하고 싶었다. 아주 타당한 이유로 사람들을 초대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니, 나에게는 최고의 타이밍이나 다름없었는데, 이제 다음 주면 실내 마스크가 대부분 해제된다. 미혼남녀의 마음속에 ‘결혼할 사람을 찾아야겠어!’라는 경각심의 종을 울리던 고립과 단절의 공포에서 이제 해방되는 거다. 소개팅, 선개팅을 하기 위해 서로 백신 패스를 준비하던 시절이 끝나는 거다. 첫 만남에서 상대방이 마스크를 벗을 때까지 도저히 판단할 수 없던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답답했던 나날과 작별하는 거다. 카페에는 착석할 수 없어서, 테이크 아웃해서 추위에 떨며 한강으로 줄지어 걸어가던 시절이 종료되는 거다. 드디어 종말적 상황이 끝나지만, 앞으로 오히려 혼인율은 계속해서 떨어질 것이다. 지금은 그런 세계니까. 우리는 갈라지고 소멸하는 중이니까.
2023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