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절제와 해소의 중간쯤에서 삶을 논하다
앙드레 지드 형님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by Rooney Kim Aug 30. 2020
동양의 유교, 도교 그리고 서양의 스토아학파부터 프로테스탄트까지 ‘금욕’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금욕은 왜 필요한 걸까요? 높은 지능을 제외하면 하나의 ‘동물’에 불과한 우리는 왜 이토록 수련하고 단련하는 ‘절제된 삶’에 집착하게 된 걸까요?
여러분의 삶은 어떠세요? 어느 정도 배워 고등교육 이상의 수준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다 이해하실 겁니다. 게다가 동북아 특유의 유교사상이 지배적인 문화로 자리 잡은 우리나라에서는 ‘절제의 미덕’이 도덕, 양심과 결부하여 우리의 삶 속에 강력하게 각인되어 있지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다 보면 그게 항상 문제가 됩니다.
가스로 가득 찬 용기가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폭발하듯이 어느 정도의 해소 없이 절제만 한다면 그 끝은 항상 예상치 못한 결과와 함께 마무리되죠. 그래서 오늘은 ‘절제와 해소’에 대한 전문가 형님을 모셨습니다. 세계적인 걸작, ‘좁은 문’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대문호, 앙드레 지드 형님이십니다.
안녕하세요? 앙드레입니다.
‘무엇을 하면 안 된다.’, ‘그것은 금지되었다.’, ‘그건 참아야 한다.’ 등등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사회도 수많은 규율과 법칙 그리고 도덕적 기준과 법적 기준이 있을 겁니다. 물론, 도덕적 기준은 항상 법적인 기준보다 테두리가 넓은 대신 ‘처벌’이라는 규정과는 관계가 없어,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서는 아주 다른 혹은 모호한 입장 차이를 보일 것입니다.
무제한의 자유가 정답일까
신교도이자 법대 교수였던 아버지, 가톨릭교도였던 어머니 하에 자란 저는 매우 엄격한 종교적 계율을 따라 자랐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종교적인 절제의 울타리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죠. 하지만, 나이를 조금 더 먹고 시작한 아프리카 여행은 제게 종교 윤리로부터의 석방, 규율에 묶여있던 육체의 복권 그리고 끝없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젊음의 해방을 안겨주었답니다. 그래서 그때부턴 거의 모든 것을 마음껏 누리고 누비며 다녔었죠.
이런 저의 경험과 깨달음은 제 소설들에 그대로 반영되어 다양한 스타일의 글을 쏟아내게 되었죠. 그런데 그렇게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은 삶을 살아보니 ‘무제한의 자유와 육체적인 환락’은 결국 자아의 상실로 이어지고 이는 삶의 파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다시 종교적 율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죠. 웃기죠? 자유를 갈망해 자유를 줬더니, 오히려 파국을 맛보고 다시 규율을 찾게 된 거죠.
‘좁은 문’은 이런 제 심경 변화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외사촌 누나를 사랑하는 소년과, 역시 그를 사랑하지만 종교적인 율법 때문에 그를 멀리하는 여인의 플라토닉 한 사랑을 다룬 일종의 로맨스 성장소설이었죠. 결국, 서로 사랑함을 눈치채면서도 사랑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죽음 이후에나 '서로가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절제’가 강조된 소설이지만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여기서 교훈을 얻습니다.
적당한 자유, 적당한 제한
‘해소가 마련되지 않은 절제는 죽음을 의미한다’
즉, 도망갈 길을 터주지 않고 쫓기는 쥐가 급기야 고양이를 물듯이, 적절한 해소를 통한 억압, 절제의 해방이 없는 ‘절대적 절제’는 사람의 숨통을 쥐고 옭아매는 올가미 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비슷한 예로 휴식시간과 체육시간이 없는 학창 시절은 반항과 우울증으로 가득할 것이고, 뒷담화가 없는 직장 생활은 이직의 간격을 더 짧게 만들 뿐이죠.
성서의 내용 중, 루카서는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라고 했지만, 무작정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고 좁은 문에게 들어가길 원치는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욕정을 해소하기 위해 무분별한 관계에 집착하는 것은 ‘방종’에 불과합니다. 이는, 홀로이든, 연인이든, 가정 있든 없든 관계없이 시대가 요구하는 도덕적인 범위 내에서 ‘은밀하게’ 해소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이러한 은밀한 해소마저 허락지 않는다면 이는 ‘극단적 절제’이며 지금 우리의 삶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즉, 적당한 절제와 해소는 타인의 삶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 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어디까지 절제되어있고, 얼마만큼 해소하고 있나요?
당신의 절제가 당신의 일상을 숨 막히게 한다면 이는 건강한 절제가 아니고,
당신의 해소가 한 명의 가슴이라도 아프게 한다면 이는 올바른 해소가 아닙니다.
그러니 적당히 절제하고 확실하게 해소하는 자신 만의 방법을 꼭 찾아서 더 건강하고, 더 즐거운 현대인의 삶을 누리다 가시길 바랍니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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