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타인에게 기회를

슈바이처 형님의 신념을 엿보았습니다

by Rooney Kim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그 ‘누구’가 내 생애 본 적도 없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죠. 하지만 우리는 종종 뉴스 등을 통해 타인을 위해 목숨을 바쳐 돕는 사람들의 소식을 전해 듣곤 합니다. 과거,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독립 운동가들과 6.25 때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군인들이 그랬고, 현대에 들어서는 지하철 선로에 빠진 일본인을 돕고 대신 죽음을 맞이한 이수현 씨가 대표적인 희생의 사례입니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희생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심심찮게 훈훈한 미담을 듣곤 합니다. 이 모든 게 타인 그리고 인간에 대한 관심과 용기를 필요로 하지요. 오늘 모신 형님은 노벨 평화상의 주인공이십니다. 프랑스 출신, 철학자, 음악가, 신학자 그리고 의사로 유명한 슈바이처 형님이십니다.




안녕하세요? 슈바이처입니다.

어린 시절 몸이 허약했던 저는 다행히 부모님의 정성 어린 보살핌으로 건강을 되찾았었답니다. 건강해진 저는 이 동네 저 동네 여행 다니는 걸 좋아했는데, 어느 날, 한 마을을 돌아다니다 아프리카인들의 조각상을 보았죠. 비록 조각상이었지만 그 슬픈 눈빛을 보아하니 영 마음에 걸리는 게 계속해서 생각나더군요.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그 눈빛을 잊지 못하다가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 서른 살부터 아프리카로 이주한 뒤, 아프리카에 제 생을 바치며 봉사를 시작했지요.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가는 결심’은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결단입니다.
그렇기에 누구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회 속에서 원활하고 발전적인 관계를 생각한다면 최소한 타인을 위하고 배려하는 수준에서의 노력은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이런 노력은 아주 작은 단위의 관계에서부터 시작한답니다. 마치 제가 ‘아프리카인 석상의 눈빛’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말이죠.


타인의 잘못, 기회가 필요할까



제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다툴 때가 있을 겁니다. 보통 사소한 의견 차이로 대립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한쪽의 실수나 부정한 행위로 나무랄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대개 친구 사이에서는 ‘조언’이나 ‘꾸짖음’이라는 게 받아들여지기 어렵고, 이로 인해 큰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지요. 그러다 보니,


친구의 부정한 모습을 보고도 못 본척하거나 무시할 때도 있죠.
그런데 과연 이렇게 덮어두고 지나가는 게
옳은 행동일까요?


그리고 학교나 사회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선생님이 혼내고 바르게 인도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걸 듣는 학생들이 이를 받아들일 리 만무하고 선생님들 역시 선생님의 권위가 과거처럼 높지 않아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선생님 스스로 학생들의 잘못된 행동을 무시하기도 합니다. 직장에서도 비슷하죠. 자칫 잘못하면 꼰대로 불리며 후배들, 부하 직원들에게 은근한 무시를 당할지도 모르기에 함부로 조언을 할 수도 없는 게 요즘 직장생활이라죠. 그런데 이런 '무관심'이 정답일까요?


또 식당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음식을 주문하려고 직원을 불렀는데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들어올 때부터 인사는 커녕 쳐다보지도 않더니, 주문을 하려고 보니 한쪽 구석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어요. 그런데 음식의 상태마저 엉망이라 불만을 얘기했는데도, 종업원은 적당히 변명만 둘러대고는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다시는 그 식당을 가지 않으면 그만이니, 그렇게 무시하고 가버리면 될까요?



위 세 가지 예는 아마도 우리 모두가 최소 한 번 이상은 겪어본 상황일 것입니다. 그리고 저런 상황이 닥쳤을 때 여러분은 아마도 이런 생각이 들었겠지요.


‘괜히 친구의 잘못을 언급해봤자 다툴게 뻔해.’
‘조언한답시고 따로 불러내서 얘기했다간 잔소리하는 꼰대 소리만 듣겠지.’
‘괜히 종업원의 태도나 요리에 대해 사장에게 컴플레인을 했다가 서로 기분만 상하고 저들 입장만 곤란해질 수도 있잖아?’


다투더라도 때로는 용기 있는 지적이 세상을 바꾼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든 이는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인 석상의 슬픈 눈빛에 제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아프리카는 지금보다 더 큰 환난에 있겠죠. 그리고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실체에 대해 더 몰랐었을 수도 있겠지요.


친구와 다툴 각오로 친구의 결점에 대해 지적해주는 건 어쩌면 그 친구의 앞날에 만들어질 수많은 관계에 도움을 줄지도 모릅니다. 꼰대로 낙인찍힐지도 모르는 진심 어린 조언과 충고는 듣는 직원으로 하여금 실력을 기르고 나아가, 미래에 좋은 상사가 될 수 있는 아주 조금의 확률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게다가 한 번가고 안 가면 그만인 식당에서의 피드백 역시, 어쩌면 직원 하나로 가게 문을 닫을지도 모르는 요식업의 운명에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음식 맛, 직원의 서비스 등의 향상으로 이후 그 식당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게 만드는 나비효과가 될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물론, 이는 그 결과가 좋게 나왔을 때의 가정이고 대부분은 ‘나의 조언’을 귓등으로 흘려듣거나 오히려 이에 화를 내거나 기분 나빠하는 경우가 더 많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그렇게 내버려 두는 건 ‘방임'에 해당합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할 선의의 의무라는 관점에서 저는 여러분이 조금 더 용기를 내고 사소한 희생을 치러보기를 희망합니다. 그렇게 해서 안 되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몇 번의 ‘조언'을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고 스킬이 늘게 되어 있죠. 그리고 들을 사람은 듣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여러분 같은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 이후 그 사회는 분명 건강한 사회문화를 가진 공동체가 되어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모두가 노벨 평화상 후보가 되는 셈이죠. 이처럼 타인을 위한 행동, 공동체를 위한 행동은 큰 희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어려움을 감내하는 용기와 조금의 희생이 필요할 뿐이지요.


타인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 이는 당신과 타인의 삶을 위한 새로운 문을 여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가요? 한 번 열어볼 생각이 있으시다면 주저 없이 열어보시길 바랍니다. 아마 처음엔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의 영혼은 회를 거듭해 성장할 테니 결국 당신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그럼 용기 있는 일상이 되시길 바라며.




[이미지 출처]

https://band.us/page/76757456/post/46

https://unsplash.com/s/photos/opportunity

이전 15화#31 절제와 해소의 중간쯤에서 삶을 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