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사랑했다고? 얼마나? 어떻게?

미련과 데이트 폭력 사이

by Rooney Kim


오래전에 사귀었던 연인이 누군가와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는 소식을 여기저기를 통해 처음으로 듣게 되면, 더 이상 직접 만날 일도 없는 그들이지만 뭔가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런 날엔, 이미 헤어진 지도 오래라 소위 말하는 소극적인 배신감이나, 세상은 다 잘 사는데 나만 왜 이래와 같은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책하기도 한다. 아마도 그 시절, 영원을 다짐했던 철없는 치기가 떠올라 입가엔 오그라든 웃음이 번졌지만, 가슴속엔 함께 보냈던 미화된 과거의 시간에 사로잡혀 혼자만 정체된 듯한 괴로움에 무언가 울컥하는 감정이 들어서 였을까.


런 감정은 보통 연인들이 헤어질 때 혹은 헤어진 후에 적어도 조금 더 사랑했다고 믿는 한쪽이 가지는 아주 보편적인 감정의 응어리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 동안 그런 격렬하고 폭발적인 사랑이라는 감정의 풍랑에 좌초되어 보기도 하고, 해저 수 만리 아래로 가라앉아 침잠된 일상에 사로잡혀 번민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헤어진 지 십 수년이 흘렀어도 '진심으로 진정한 사랑'이었다며 술 한잔씩 걸칠 때마다 곱씹는 사람도 많지 않은가.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연인 관계는 마치 50:50의 사랑의 비율로 조화롭게 이어질 것 같지만, 거의 모든 연인관계는 처음부터 불평등했고, 그 불평등한 비율은 매번 주객이 전도되어 소위, 밀당으로 오고 간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 그 비율이 일정해지며 안정적인 페이스로 접어들기도 하지만 또 언제 어떻게 어떤 감정으로 관계의 안정을 깨트릴지 모르는 게 '사랑하는 사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착각은 '내가 널 사랑하잖아'와 '사랑이니까 받아줘야 하는 거 아냐'라는 순진무구한 떼쓰기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아니, 모든 생명체는 이기적이다. 이는 미래 세대의 번식을 위해 가장 중요한 현세대의 생존과 결부되어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DNA에 아로새겨진 본능이기에 이를 욕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다. 타인을 위한 이타적인 행동 역시, 그 감정의 바닥을 들여다보면 '그를 돕지 않으면 내가 괴로운 감정'이 있지 않나. 그렇다면 사랑은 오죽할까?


내가 널 사랑하는 건 '당신'이 원치 않을 때부터 시작됐다.


이미 처음부터 상대방의 감정은 크게 고려하지 않고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직 '사랑'이라는 단어와 그것이 가지는 힘에만 집착한 채, '왜 이런 자신을 탓하고, 자신의 그런 마음을 왜 몰라주는지'에 대해 억울해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만 착각에서 벗어나시길. 애초에 그 감정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고 그걸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본인의 만족을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서로 사랑한다는 감정'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양자 간의 '이기적인 마음'이 마침내 서로에게 닿아 합의를 보고 평화협정을 맺은 것이다. 비록, 그 협정이 공평하지는 않겠지만.


따라서, '날 사랑하기는 했니?’와 '난 아직도 널 사랑해'와 같은 말은 지극히 본인 위주의, 이기적인 감정에서 기인한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이다. 이미 차갑게 식은 상대방에게 이를 강요하거나, 인정해달라고 조를 순 없다.


'데이트 폭력'과 '이별 살인' 같은 사건들이 점점 더 큰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가는 요즘이다. 헤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관계의 끝이 아니라, 열렬히 사랑하는 마음, 너무도 행복했던 시간들 그리고 앞으로도 앞의 두 가지가 지속될 수 있다는 미래의 희망을 마치 칼로 무를 자르듯 끊어내는 끔찍한 의식과 같다.


안다.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큰 배신감에 내가 알던 세상이 그 세상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축제는 끝났고, 마감 시간은 이미 지났다. 둘 중 갑자기 한 명이 사라져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 '사랑의 축제'다. 이제 받아들여야 한다. 술이 들어간다면 술을 마시고, 일을 못하겠다면 휴가를 써서 어디론가 떠나고, 혼자 견디기 힘들다면 친구라도 만나야 한다. 축제가 끝났는데 폐장 시간을 늘려달라고 조를 수 없다. 축제를 함께 즐기던 상대방은 이미 축제를 떠난지 오래다.


'죽을 것 같은 고통과 미칠듯한 그리움'은 보통 2주 내로 사그라든다. 그렇게 없으면 죽을 것 같던 사랑도, 어느 순간, 사진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순간이 온다.


사랑했던 기억과 그리운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큰 폭풍 후에 잠잠해진 파도처럼, 그저 그 시간을 일렁이는 감정의 파도 아래, 좋았던 추억으로 기억해도 좋을 시간이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혼자 온갖 추억에 휘감겨 고통을 헤매는 건 아무래도 좋다. 그 모든 시간들이 감정 성장의 자양분이 되어 앞으로 더 나아질 자신의 영혼을 생각하면 괜찮은 홀로서기다. 이미 끝난 사람에게 밤늦게 연락하고, 불러내고, 붙들진 말기 바란다. 뉴스의 사회면에 나오고 싶지 않다면 그저 소소한 이불 킥 에피소드 정도에서 끝내야 한다.


그렇게 몇 번의 격한 감정의 격랑을 거치고 나면 그 슬픈 감정마저도 홀로 고고히 즐기는 득도의 순간도 올 것이다. 그럴 때일수록 온전히 본인 안으로 침잠하길 바란다.


사랑의 축제는 함께였지만, 이별의 소나기는 혼자 맞는 법


비가 그칠 때쯤엔 이를 같이 말려줄 가족과 친구들이 보일 거다. 참, 혹시 또 모르지 않나. 젖은 머리와 옷을 말리는 동안 이를 도와줄 또 다른 이가 등장할지도.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co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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