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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May 19. 2021

#아이유 연대기 8: 그대의 위로가 필요한 밤, 편지

위로가 필요 없는 세대는 없기에



아이유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이들은 아이유를 아이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돌이 대중 가요계에서 가지는 영향력과 인기를 생각하면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30~40대는 물론, ‘아이돌 음악=10~20대가 듣는 대중가요’라는 선입견을 가진 기성세대까지 아이유의 노래를 즐겨 듣기 때문일 테다. 어쩌면 그런 이유가 ‘아이유는 아이돌’이라는 한정적인 카테고리보다는 시대의 마음을 위로하는 싱글 가수라는 명칭이 더 어울려서 생겨난 대중의 견해가 아닐까.


50대 이상의 기성세대에게 ‘아이유’라는 이름을 강렬하게 각인시킨 앨범은 단연, 꽃갈피 앨범(1, 2집)이다. 이는 꽃갈피의 수록곡들이 기성세대가 청춘을 보낸 당시의 대중가요가 가진 문학적인 감성은 물론, 그 시절의 고통과 아픔마저도 이제는 시력만큼 뿌옇게 흐려진 기억으로, 한 모금의 미소로 추억할 수 있는, 그들의 가슴에 새록새록 피어나는 젊었던 시절의 혈기를 잠시나마 되돌려준 덕이다.



이제는 ‘아재와 아줌마’ 그리고 ‘할배와 할매’가 된 기성세대, 그들의 과거는 어땠을까.


6.25 전후 세대로 전쟁의 폐허에서 유년을 보냈고, 유신 정권, 군부 독재 그리고 이로 인한 각 지역(전라, 경상)에서 발생한 민주화 항쟁의 시기에 청춘을 바치고 중년이 시작된 이들의 젊음은 포크, 락, 복음성가, 행진곡 등의 형태로 6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명맥을 유지한 민중가요(또는 데모 가요)를 통해 위로받았다.


저 유명한 김민기 작의 ‘아침 이슬(양희은 노래)’로부터 ‘정의가’, ‘임을 위한 행진곡(황석영, 김종률)’까지 수십 년에 걸친 격동의 시대를 보낸 그들의 청춘에는 ‘나’보다는 ‘나라와 주변’을 위한 비장함으로 똘똘 뭉친 희생정신 그리고 이를 기어이 시도하고야 마는 격렬함이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이들 눈에는 ‘우리’가 아닌 ‘나’에게로만 회귀하고 결국, ‘나’에 대한 것으로 수렴하는 이 시대의 청춘을 도통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들은 지금 이 시대의 청춘의 고통을 결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네 젊은 세대가 전쟁의 공포와 민주화 항쟁의 뜨거움을 완벽하게 체감할 수 없듯, 그들은 결국 ’나’에게로 회귀할 수밖에 없는 현대 청춘의 공포를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청춘은 왜 결국 ‘나’에게 수렴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


기성세대의 젊음이 '모두'의 자유와 민주를 향한 전체의 울부짖음이었다면, 현시대의 청춘은, 여전한 부정부패는 차치하더라도, 이미 만들어진 제도권과 체제 안에서 너무나도 높아진 기준들에 맞춘 '나'로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이다. 결국 ‘나’, 즉, 내가 먼저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에 압도되어 주변과 극도로 치열한 경쟁에 경쟁을 거듭하게 된 것이다. 이에, 이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하며 결국, ‘나’ 하나도 겨우 살아남는(혹은 그것조차도 힘든) 현실에 절망하다 보니 이 모든 문제가 끝없이 ‘나’에게 수렴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바쁘고 바쁘기만 해서 인내심과 시간을 두고 하나씩 처리해 나갈 수 있는 숙제라면, 그래 까짓 거 이번 주말은 반납하고 책상에 딱 붙어 처리해볼 만도 할 텐데, 첩첩산중으로 쌓여만가는 작금의 난제들은 현대의 청년들을 일부러 골탕이라도 먹이려고 이렇게 설계를 했나 싶을 정도로 하 수상하다.


좁아진 선택의 폭, 강요된 미래



그러다 보니 청춘의 시절에 선택할 수 있는 단계의 정점인 결혼 앞에, 비혼은 이 시대의 청춘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옵션 중 하나가 되었다. 아, 아니다. 이는 선택이 아닌 강요다.


심화된 경쟁 속에서 학점관리와 스펙 때문에 1~2학기를 더 다녔고, 취업이 안되어 2~3년을 더 준비했고 수년만에 겨우 취업했더니 녹록지 않은 환경으로 인해 두세 번의 이직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30대 중반이 된 청춘들. 이는 남녀와 개인차에 따라 그 중압감에 대해 체감하는 정도는 또 확연히 달라진다.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하며 집이라도 사려고 봤더니 미친 듯이 취업을 준비하고 몇 번의 이직을 거치는 동안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그나마 후미지고 낙후되어 덜 비싼 아파트를 사려고 보니 정부 대출과 신용대출을 다해도 살 수 없는 정도다. 그리고 이제 그 마저도 옥죄고 있지 않나.


설사, 무리해서 대출을 끼고 집을 산다고 해도 그걸 평생 갚으며 산다는 게 엄두도 안 날 지경이고 거기에 생활비, 아이를 낳으면 양육비까지, 앞으로 더 나아질 미래에 대한 장밋빛 꿈은 고사하고 매달 개미처럼 일하며 수십 년을 보내야 겨우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는 현실은 분명, 숨 막히는 고통이다.


곪아 터진 청춘의 민낯


타인을 위한 이타심, 나라를 위한 애국심, 인류를 위한 인류애는 내가 건강할 때 발현된다. 여느 시대가 힘들지 않았겠느냐만도 이 시대는 겉으로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족해 보일지 몰라도, 풍족한 만큼 개인이 이뤄야 하는 현대 시민으로서의 기준도 너무나도 높아졌다. 이에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쏟아져 나오는 것들이 모두 개인의 기회와 권리 그리고 미래를 박탈하는 형상이 되었으니, 지금 젊은 세대가 과거의 정보를 통해 기성세대의 아픔을 겨우 이해하듯, 기성세대 역시 현재 청춘의 고통을 제대로 체감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다행히 우리는 노래를 통해 각 세대별로 응어리진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의 기성세대를 똘똘 뭉쳐 그 시절의 고난을 헤쳐 나오게 한 민중가요나 행진곡은 당시의 현장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 들어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거의 모든 시대의 감정이 녹아있다.



이는 음악, 노래가 가진 고유한 힘이다. 음률은 단조와 장조에 따라 흐르며 발생한 진동과 파동으로 인해 누군가의 귀로 흘러들어 가고, 이는 그 사람이 가진 현재의 감정과 과거의 기억들을 자극하여 비로소, 누군가와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아이유가 노래를 통해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두 번의 꽃갈피 앨범을 통해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젊음’을 아이유의 노래를 통해 재회하며 과거를 환기시켰고, 이 시대의 청춘은 아이유가 부른 과거의 노래를 통해 기성세대의 젊음과 당시 그들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체감했다. 아이유가 리메이크한 노래가 민중가요는 아니었지만 시대의 감정을 공유한다는 차원에서는 굉장한 효과를 거두었다.


밤편지, 이 시대 청춘을 위한 위로


그 시절, 민중가요가 ‘우리’로 대변되는 청춘의 고통을 달랬듯, 밤편지는 ‘나’로 대변되는 현시대의 청춘을 위로하는 중이다. 밤편지는 2017년 3월 24일 발매된 이후 거의 단 한 번도 차트를 벗어난 적이 없는 이 시대의 명곡이 되었다. 기존의 아이돌이었으면 팬덤의 작업이라고 비하할 수 도 있겠지만, 어느덧 아이돌의 카테고리를 벗어나 전 연령이 듣는 아이유의 밤편지는 이미 앞으로 수년 넘게 더 차트에 있더라도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현재 진행형의 전설이다.


발매 후,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 만의 청춘의 가슴을 위로하고, 어깨를 토닥였으며, 눈물을 닦아준 밤편지. 밤편지의 가사가 가진 가슴 아픈 사랑에 대한 추억은 이 시대의 청춘이 가진 복잡다단한 형태의 여러 아픔을 치유하는데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는다.


실연의 상처든, 취업의 고통이든, 막막한 미래에 대한 고민이든. 삶이라는 현실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어깨에 올려본 이라면 소박한 기타 선율 위에 실려 무엇이든 다 꿰뚫어봐 줄 것만 같은 아이유의 음색에 기대어 밤편지의 위로를 받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무심한 듯 툭 내뱉는 아이유의 음성은 오히려 너무 극성맞게 위로하거나 나보다 더 화내고 울어버려, 나를 더 침울하게 만들어버리지 않아 좋다. 어쩌면 현실에서는 이토록 담담하게 나를 반기며 맞아주고, 나의 아픔을 공감하고 들어줄 이가 없기에 밤편지의 선율에 더 기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극단의 고통에 잠길 때 그저 가만히 옆에 있어, 더 말 걸지도, 억지 위로를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큰 위안과 위로가 되듯이.


과거 격동의 시절, 청춘은 거친 외부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민중가요, 행진곡으로 하나가 되었고,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오늘날, 청춘은 높아진 벽과 사라진 사다리에 의지할 곳 없어 노래 하나에 위로받으며 자신 안에 켜켜이 쌓인 걱정과 고민에 맞서 투쟁 중이다. 고통의 근원이 외부라는 점을 제외하고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과거에는 다 같이 모여 극복해야 했다면, 지금은 오로지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


그리고 과거와 같은 점이 있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를 대가없이 위로해주는 것은 노래라는 점




[이미지 출처 및 참고 글]

https://ilikecomet.wordpress.com/2011/01/01/민중가요의-역사-70년대-후반의-대중가요와-민중가요/

http://heraldk.com/2016/11/14/1980년대-최루탄에-울던-서울의-그-길-그-선술집/

https://tv.naver.com/v/1543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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