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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Apr 02. 2021

#아이유 연대기 7: 아쉽지 않아, 그리울 뿐

라일락의 기억, 새로운 꿈


굳이 아이유라서가 아니다. 셀러브리티는 어디 사람이 아닌가.


오히려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일상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며 얻게 되는 스트레스나 압박으로 인한 공황장애가 일상인 그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젊었던, 환희 빛났던, 찬란하게 반짝였던 시절을 앨범에 가득 채운 뒤 다음 장을 넘길 때 마주하게 되는 막연한 아쉬움은 보통 사람들의 수백 배는 되지 않을까.


20대의 끝자락



20대의 아이유는 많이 얻었고, 많이 잃었지만 결과적으로 더 많이 누리고, 배우고, 또, 더 많이 얻는 중이다. 사회라는 시스템과 연예계라는 굴레에서 성장하는 법을 배웠고, 크고 작은 사랑의 에피소드와 이벤트로 관계의 쓴맛과 단맛을 보았다. 아마 그때 깨달았을 테다. 때론 쓴맛도 단 척 웃으며 꿀꺽 삼켜야 하고, 또 때론 달아도 아닌 척 쿨하게 여기저기에 양보해야 함을 말이다.


삶은 아쉬움과 아까움을 배워나가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어져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우리의 모든 일상은 얻음과 잃음이 발생하는 연속선 상에 놓여있고 이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순간순간으로 채워져있다. 과거를 잠시 돌아보자. 기억에 남는 몇몇 순간을 떠올렸을 때 아마도 몇 가지 떠오르는 감정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은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며 아쉽고, 어떤 일은 지금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아까운 마음에 불쑥 화가 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삶은 ‘아쉬움 또는 아까움’으로 가득 차 있다.


당신의 삶이 아까움보다 아쉬움으로 차 있다면, 다행이다. 지난 추억들은 달콤하거나 유쾌했고 그 시절 함께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만나고 있거나 가끔 사무치게 그리울 정도로 좋은 관계였을 테니. 반대로, 그 시절이 아까움으로 차 있다면, 안타깝다. 그때의 미련은 여전히 당신의 영혼에 생채기를 낼 테고, 그 시절이 떠오를 때마다 짜증이 엄습할지도 모르며, 당시 사람들의 면면을 떠올리면 잊고 있던 분한 감정으로 하루를 망칠 수 도 있으니. 따라서, 아쉬운 과거는 되려 아름답다. 를 떠올때 살짝 생기는 미간의 작은 주름과 함께 그저 몹시 그리워만 하면 되니까.



아이유의 정규 5집 ‘라일락’은 꽃말 그대로 ‘젊은 날의 기억’이다. 조금 더 나아가, ‘Lilac’과 동음이자 합성어인 ‘Lie + 㦡’으로 해석하자면 이런 추측도 가능하다. ‘거짓말 같이 즐거웠던 축제와 거짓말이길 바랄 정도로 아팠던 슬픔으로 버무려진 20대, 청춘의 기억’ 말이다.


라일락, 화려한 마무리



아이유의 지난날, 20대를 총망라하는 이번 앨범은 노래 한곡 한곡이 아이유의 지난 10년을 돌아보게 만든다. 굳이 노랫말을 풀이하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아도 아이유의 짙은 호소력에 얹힌 가사를 음미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래의 열 가지 코드가 떠오른다.


이 모든 코드는 살아가는 동안 비단 아이유만이 겪는 특별한 코드는 아니다. 당신이 10대든 20대든 혹은 훨씬 나이가 많든 상관없이 겪게 된다. 그리고 사는 동안 적어도 한 번 이상 혹은 특정 코드를 여러 번 반복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아이유 덕분에 우리는 삶의 타격으로부터 위로받을 공간이 또 생겼다.


사랑

Flu

공개적으로 밝혀진 두 번의 짧고 긴 열애설과 열애를 통한 아픈 사랑의 기억. 서툴지만 성숙하려 노력했던 지난 추억에 대한 깜찍한 회고는 이제는 오히려 반가울 정도다. 보통의 소녀였다면 이 같은 사랑의 열병을 네댓 번은 더 앓고 지났을 나이지만, 유명인이 되고 나니 사생활이 사생활이 아닌지라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은 사람이 생에 맞이할 수 있는 가장 폭풍 같은 감정이다. 사랑의 감정 덕분에 ‘자신보다 더 중요한 사람’에 대한 감정을 처음으로 인식하고 ‘너’를 위해 ‘나’를 포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도 하게 된다. 사랑은 유치하지만 진지하고, 지겹도록 재미있고, 피폐해질 정도로 짜릿하다.


‘내 마음은 쿡 찌르르 아픈데 입가엔 제멋대로 미묘한 웃음이 흘러’


공허

빈 컵

가득 찼던 그때와 달리 비워진 컵에는 마실 것이 없다. 컵 안의 물은 내가 마실 수도, 타인이 마실 수 도 있고 혹은 누군가 실수로 쏟아버릴 수 도 있다. 그 대상은 사랑하던 이 일수도 있고, 함께 일하는 사람일 수도 있으며, 지나치게 열성적인 사생팬일 수도 있다.


빈 컵은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기능적인 기대감 외에는 달리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컵은 물이든, 우유든, 커피든 혹은 술이든 무언가 마실 것이 있을 때 가장 큰 쓸모와 의미를 가진다. 빈 컵에는 이유가 있다. 누군가 이미 다 마셔버렸거나, 아예 따르지 않았다는 명확한 이유 말이다. 그녀의 마음이 빈 컵이라면 당연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20대에 가득 채운 사랑과 인기는 물론이고 소중한 이들과 나눴던 사랑과 우정 그리고 좋았던, 슬펐던, 힘들었던 기억까지 모두 소화하고 다시 채울 마음의 준비 같은 이유 말이다.


‘이런 가볍기도 하지 겨우 이게 다였나 봐’


상실

봄 안녕 봄

연인이든, 친한 사람과의 작별이든, 지난 시절과의 안녕이든 떠나보내는 일은 언제나 가슴 아프다. 하지만 다시는 못 볼 것을 앎에도 언젠 우연히 마주쳐 반가이 인사할 수 있는 기억이라면 그저 슬픈 아픔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20대에 동병상련하며 우정을 쌓았던 소중한 인연을 벌써 이나 떠나보냈다. 소중했던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종류의 상실은 ‘아냐, 어쩌면 지금쯤 다른 곳에서 무언가를 하느라 내 연락이 닿지 않은 것뿐이야. 아마 오늘 밤쯤에는 내 메시지를 읽고 시원한 음료라도 한 잔 하자며 연락이 올지도 몰라.’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한 사람의 맨 정신을 모조리 흔들어 놓는다.


이로 인해 얻는 게 있다면, 소중한 사람들이 더 소중해진다는 것, 더 부지런히 살아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런 아픔을 주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 그리고 한층 더 성숙해진 사람이 되어 대중의 가슴에 더 깊은 공감과 울림을 주는 것.


‘모르지 않을게 내가 먼저 그대 알아볼게 이렇게 안녕’


위로

Celebrity

마이너 한 감성, 삐딱한 걸음걸이, 독특한 취향. 세상으로부터 구별되고 싶은, 그래서 구박받고 나 혼자인 것 같은 외톨이 감성.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다. 그런 다양한 유일함들이 무채색 세상에 기여하는 다양성의 힘 그리고 그런 다양한 유일함이 가져다주는 수 만 가지 빛깔의 삶의 기쁨을 말이다.


그런데 그녀도 알지 않았을까? 세상의 모든 마이너들을 위해 쓴 아이유의 가사가 사실은 자신을 향하고 있었고, 세상의 모든 마이너들로부터 위로받고 있었다고. (#아이유 연대기 6: 되려 위로받고 있었어)


‘잊지 마 넌 흐린 어둠 사이 왼손으로 그린 별 하나 보이니 그 유일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야 You are my celebrity’



아픔

돌림노래

인기의 3할은 아픔이라고 했던가. 맹목적인 사랑, 물불 가리지 않는 질릴듯한 집착은 끊이지 않는다. 떼어낸다고 떼어낼 수 도 없다. 그래서 돌림노래. 자신은 싫다고 소리치고 밀어내도 기어코 다가와 나의 좋은 날을 망칠걸 알기에. 잊을만하면 나타나 그녀를 괴롭히는 녀석들의 돌림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저항할 그녀의 돌림노래. 그런데 또 달리 생각해보면 아주 싫지는 않은 돌림 노래.


‘너도 느끼지 우리 참 일관적으로 별로야  너는 너답게 나는 나답게 얼마든지 나빠도 괜찮아 너의 뒷모습을 더 사랑하니까’


신념

Coin

성공하기 전에도, 성공 후에도 아이유는 아이유다. 그녀의 본질, 타고난 성품과 넓은 시야 그리고 항상 훌륭한 수를 두고야마는 본능적인 영리함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아이유가 어느 한 곳에 꽂혀 미치면 어디까지라도 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이제 대한민국의 모든 팬들이 안다.


성공과 아픔 이후에는 더 갈고닦아져 마치 모든 방패도 뚫고 베어버릴 날카로운 명검처럼 때론, 어떠한 창과 칼도 막아내는 방패처럼 세상의 모든 풍파에도 끄떡하지 않는 철옹성이 된 그녀, 20대 이후 서른의 그녀가 어떨지 벌써 기대된다.


‘Baby 알잖아 내가 한 번 미치면 어디까지 가는지 마지막 게임이니만큼 후회 없는 실수를 저질러’



소회

아이와 나의 바다

돌아보니 그래도 좋았던 아무것도 갖지 않았던 시간들. 성공의 정점에 선 성인 아이유가 어린 시절, 악착같은 삶 속에서도 무한한 가능성을 머금은 어린 아이유를 돌아보며 말을 건넨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정도로 많은 것들을 이뤘지만 오히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던 그때보다 더 가난해진 마음이 비친 거울 속의 낯선 자신을 보며.


이는 마치 꿈꾸는 자와 이룬 자 사이에 상충하는 딜레마다. 그런데 이 갈등은 한 사람 안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주변을 둘러보자. 대부분의 꿈 많던 아이는 어느새 자라 꿈보다는 현실의 요구에 부응한다. 그게 삶의 법칙이고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다. 그래서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어두운 자취방에서도, 햇살 가득 나른한 주말 오후 아파트에서도, 사람들은 문득문득 꿈과 이상의 괴리에 갇혀 무엇이 옮고 그른가에 대한 철학적인 1인 논쟁 속으로 파고든다.


하지만 내가 어떤 결론을 내리든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를 바라보고 해석하며 받아들이는 ‘나 자신’이 변할 뿐. 우리 모두는 우리 안에 ‘아이와 나의 바다’를 품고 있다. 누구의 ‘아이’는 웅크려 앉아 있고, 누구의 ‘나’는 실종되었거나, 누구의 ‘바다’는 메말라 쩍 갈라진 바닥을 드러낼지도 모르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가 돌아와 실종된 나를 찾아내고, 기어이, 웅크린 아이를 일으켜 세운다. 그렇게 다시 설레는 일상이 시작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은 삶에게 지는 날들도 있겠지 또다시 헤메일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


성장

라일락

젊은 날의 좋았던 기억을 완벽하게 정리하는 아이유. 20대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이토록 후련하게 지난날을 정리할 수 있을까. 균형 잡힌 자신감, 후회 없는 결정, 아쉽지만 아깝지 않은 시간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노력을 거친 그녀이기에 가능한 당당한 외침.


그런데 아이유처럼 대성하지 못하면 이런 후련한 마음을 거침없이 내뱉으면 안 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영역에서 자신이 정한 기준에 따라 정신없는 일상을 살아내는 삶의 전사들이다. 입시 지옥에서 살아남고, 수강 신청 러시를 버텨냈고, 바쁜 학교생활을 하는 와중에 알바, 공모전, 인턴, 연수 등 부지런히 스펙도 쌓았고, 취업을 위해 수백 회 이상의 지원과 수 십 번의 면접을 거쳐 어느 회사의 말단으로 들어가 성실히 일하며 등록금도 갚고, 부모님 첫 물도 해드리고, 저축도 하며 삶의 첫 단계를 꾸렸다. 저마다 다른 현실의 계단을 밟겠지만 성실함에는 뿌듯함이 절로 따른다.


모든 삶은 이토록 숭고하다. 아이유의 라일락은 이토록 숭고한 삶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치열하게 보낸 이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송가(頌歌)이자 다음 레벨의 자신감 넘치는 도전을 드러내는 행진곡이다.


안녕 꽃잎 같은 안녕 하이얀 우리 봄날의 climax 아 얼마나 기쁜 일이야



다짐

어푸

이제 아무리 높은 파도도 그녀를 쉽사리 지치게 하거나 쓰러트릴 수 없다. 아이유 정도의 엄청난 성공을 누리면 보통, 삶은 곧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으로 가득 차게 마련인데 그녀는 단 한 번도 자만심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 이유인즉, 그녀의 자신감은 처음부터 모두 그녀의 천성에 기반하기 때문에.


높은 파도나 깊은 바다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다. 물에 빠지면 헤엄치고, 어차피 사라질 해일 같은 파도에도 겁 없이 몸을 던져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는 아이유빛 자신감. 그녀의 이런 자신감은 데뷔하기 전부터 존재하던 그녀만의 것. 이런 그녀의 자신감에 이 엄청난 인기는 그저 거들뿐.


제일 높은 파도 올라타타 라차차우아 해일과 함께 사라질 타이밍 그건 내가 골라 무슨 소리 겁이 나기는, 재밌지 뭐


인사

에필로그

10대의 아이유를 만나, 20대에 그녀의 채도 짙은 목소리에 빠져 서글픈 시절을 견디고, 우울한 날을 이겨내고, 가슴 시린 때를 묵묵히 버틸 수 있었던 팬들에게 전하는 달콤한 음성편지.


어쩌면 너무 이른 에필로그. 하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대의 커튼콜을 뒤로하고 새로운 시절의 서막을 또 다른 달콤한 꿈이라는 약속과 함께 열어젖힐 준비를 하는 그녀의 담담한 각오를 듣고 있노라면 처연한 비장미와 동시에 미묘한 발랄함마저 느껴진다. 이번 앨범은 이미 세상의 이치 정도는 깨달은 그녀에게 20대 청춘의 대미를 장식하는 막연한 까움이 아닌, ‘아쉽지만 보내줄게, 우리 모두 즐거웠으니 이다음 내 꿈도 잘 들어줘’라며 속삭이고 있다. 그리고 속삭임 웅장하다.


오, 모르겠죠 어찌나 바라던 결말인지요 내 맘에 아무 의문이 없어 난 이 다음으로 가요 툭툭 살다 보면은 또 만나게 될 거예요 어떤 꿈을 꿨는지 들려줄 날 오겠지요 들어줄 거지요?



서른, 조금  성숙한 판타지


그렇게 가시지 않을 불같던 사랑의 감정도 불꽃처럼 사그라들고,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던 얼굴도 희미해지게 마련이다. 삶의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기 위해 어쩌면 본능적으로 탈피해내는 부질없는 한 꺼풀처럼, 그녀도 이제 삶의 허물 하나를 벗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스무 살의, 스물셋의, 스물다섯의, 스물여덟의 그리고 스물아홉의 아이유는 항상 기대 이상이었다. 이 순간에도 과거보다 더 나아질, 성장할 그녀가 서른의 아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너무 걱정하지는 말라고 꼭 전해주고 싶다. 서른의 아이유는 무얼 일부러 더하지 않아도 팬들은 더 얻고 있을 것이고, 시절과 나이를 초월한 그녀의 진심이 담긴 목소리와 깊은 사색이 담긴 가사만으로도 충분한 보답을 받고 있을 테니.


나이 들수록 드러나는 빈자리는 오히려 매력으로 채워진다. 더하기에서 빼기로 넘어가는 시절부터 팬들이 채워줄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더 많아지니 오히려 더 반갑다.


그래서 기다려진다.
서른의 아이유, 이지금의 더 성숙할 지금을



[이미지 출처]

아이유 공식 뮤직 비디오: 라일락, 코인, 셀러브리티 (이담 엔터테인먼트 제공)

https://blog.naver.com/gahee0317/222292000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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