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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Aug 10. 2021

#아이유 연대기 9: 여름이 흘러 가을이 스치면

조용히 이 노래들을 귓속에 흘려주기를



그토록 뜨겁게 대지를 달구며 우리를 괴롭혔던 올해의 여름도 어느덧 기울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조금은 가라앉은 기온과 해 질 녘 공원의 서늘한 바람이, 그토록 얄밉던 한낮의 태양을 아주 조금은 아쉽게 만드는 계절의 변화 한가운데 있다 보면 마치, 계곡 속 온몸을 감싸고 도는 강물의 강한 흐름을 느끼듯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질감을 체감하게된다.


어린 시절에는 몰랐다. 탐구생활로 시작하는 여름 방학이면 가족들과 강이나 바다로 놀러 가 도심에선 보기 힘든 석양과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위 하늘을 뚫을 듯 솟은 뭉게구름에 설레는 가슴을 키웠고, 크리스마스와 함께 시작되는 기나긴 겨울방학엔 시리도록 추운 바깥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다 지쳐 돌아온 집 안의 따스한 온기와 침대 위 이불 안의 아늑함에 평안한 기쁨을 배웠다.


어느덧 많은 시간이 흘러 방학이 어땠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시간대에 접어들게 되면, 과거엔 보이지 않던 각 계절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고 계절의 변화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아쉬움을 깨닫게 된다. 단지 물리적으로 나이를 먹어서 아쉬운 게 아니다. 이런 찬란한 계절의 아름다움을 왜 진작 깨닫지 못했는가에 대한 애석함,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세상이라는 삶의 유한함에서 기인하는 안타까움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리고 이런 갑작스러운 기온의 서늘함이 서글프게 반가운 이런 밤엔 또 생각나는 그녀의 노래가 있다.


 시절 그렇게도 ‘푸르던


일에 치여, 취업에 막혀, 관계에 얽혀 시끄러운 일상을 지내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루지 못한 첫 고백의 순간이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순진한 사랑을 주고받던 첫사랑과의 풋풋한 시절이기도 하며, 또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계산 없이 티 없이 맑은 감정을 나누던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기도 하다.


그 시절 풋사랑은 오히려 이루어지지 않아 더 저릿 기억으로 남아 이 밤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 어질어질하게 어질러 놓는다.


다시는 볼 수 도 없거니와 다시 본다고 해도 그때와 같지 않을 테니, 차라리, 그저 새하얗게 포장된 가슴속 아득한 추억으로 매년 이맘때 곱씹어보는 버들가지처럼 그저 갑작스 떠오른 순간 반갑게 흔들려주기를.


그날 알았지 이럴 줄
이렇게 될 줄
두고두고 생각날 거란 걸

나의 여름 가장 푸르던 그 밤
그 밤
그날 알았지 이럴 줄

아이유 '푸르던' [CHAT-SHIRE]

http://kko.to/3YkWEJYfo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꿈의 ‘이름에게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아마 대부분은 이루지 못한 허황된, 유치하기 짝이 없는, 하지만 여전히 가슴 한쪽을 설레게 하는 그런 꿈 말이다. 이는, 어른이 되면, 돈을 많이 벌면, 아니, 적어도 첫 월급을 타면 꼭 해보고 싶었던, 사고 싶었던, 사주고 싶었던 작은 꿈일 수도 있고, 젊음의 시간을 바쳐, 누가 시키지도, 보지도 않지만, 이를 이루기 위해 흘린 무수한 땀방울과 목구멍 뒤로 집어삼킨 조용한 울음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꿈은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을 수도, 제 아무리 많은 돈을 가져다줘도 더 이상은 이룰 수 없는, 유통기한이 훨씬 지나버린 낡은 기억 속의 빛바랜 한 조각일 수도 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내가 그 기억에 집착하는 이유는, 여전히 이런 밤이 되면 문득 찾아오는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 너무 아련해서도, 너무 간절해서도 아니다. 그저 그 안쓰러운 눈빛을 애써 외면하면서도 언젠가는 이룰 그 꿈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기 위함이다.


오래 기다릴게 반드시 너를 찾을게
보이지 않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

수없이 잃었던 춥고 모진 날 사이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을 알아

멈추지 않을게 몇 번이라도 외칠게
믿을 수 없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아이유 '이름에게' [Palette]

http://kko.to/Blv63JD40


결국 받아들여야 하는  안의 ‘아이와 나의 바다


그토록 치열했던 삶의 몇 계단을 거친 후 내가 얻은 건, 겨우 월급에 만족하고, 배달음식에 행복하며, 남과 비교해 조금 나은 삶이라고 자부하는 착각의 파편들 뿐일까. 이런 생각에 빠져있다 보면 어느새, 가진 것조차 불만족스러워지고, 동시에 세상의 모든 잣대가 불편해지며, 결국 과거의 자신과 논쟁에 빠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당신의 설렘은 물거품과 같고, 당신의 기대감은 흩어지는 구름에 불과하며, 당신의 욕망은 그릇된 착각일 뿐이다. 이는 꿈에서 깨라는 것이 아닌 잘못된 꿈을 꾸는 것에 대한 일갈일 뿐. 당신의 갈증을 과거 속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이라는 핑계로 현실의 자원과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기를.


그 ‘아이’는 이제, 그저 당신의 삶 속에서 꿀 수 있는 꿈을 재편성하고, 만족의 작은 단계 무시하지 않으며, 삶에 지는 날을 패배로 보지 말 길, 헤맴은 휴식이니 단단 마음을 갖길, 그렇게 수정된 당신의 바다는 결코 초라하지 않다는 걸 깨닫길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내 안의 바다가 태어난 곳으로
휩쓸려 길을 잃어도 자유로와
더 이상 날 가두는
어둠에 눈 감지 않아
두 번 다시 날 모른 척하지 않아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은
삶에게 지는 날들도 있겠지
또다시 헤매일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


아이유 '아이와 나의 바다' [LILAC]

http://kko.to/p7-BOJY4T


이렇게 또 한여름 밤이 흘러간다.


우리 모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곡차곡 쌓여가는 인류의 기억이다. 이 기억은 광활한 우주의 쓸모없는 먼지에 불과할 수도, 가장 중요한 생명의 기록일 수도 있다. 따라서, 복잡한 일상 속 당신의 쉼은, 당신의 여유는, 당신의 이해는 오로지 당신 자신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아주 중요하기도 또는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 있기에, 혹시 서글픈 듯 반가운 마음이 일어나는 바람이 부는 계절의 문턱에서 주저하고 있다면 이런 마음을 달래주는  노래들과 함께 우주 속 가장 중요한 당신의 일상을 머릿속에 담아보는 건 어떨까.




[이미지 출처]

https://www.vlive.tv/video/158556

https://blog.naver.com/smotherguy/220508113292

https://blog.naver.com/wo114gns/220988246356

https://blog.naver.com/lovnhateme/222302522656


[음악 출처]

멜론: https://m2.melon.com/search/mcom_index.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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