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어. 철민이 아저씨의 꿈이 맞다면 아버지는 사기를 당한 게 분명했지. 그것도 친한 친구 중 한 분에게서 말이야.
하지만 아직 그 사람의 얼굴은 보지 못했고 따라서 섣불리 판단하긴 일렀지.
‘그래서 아빠가 그렇게나 순순히 엄마 말대로 하신 거야..? 빈털터리로 집을 나 간신 거냐고.. 엄마도 진심은 아니었을 텐데. 참.’
정민이 아저씨가 몽둥이로 내려치는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둘의 모습이 서서히 희미해지더니 물결처럼 일렁이기 시작했어. 철민이 아저씨 꿈에 변화가 생기는 중이었지. 어쩌면 꿈에서 깨는 중이었는지도 몰라.
‘안돼. 얼굴을 한 번이라도 봐야..’
‘팟-‘
둘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정민은 철민이 아저씨의 꿈과 연결이 끊어지며 희미한 안갯속에 다시 홀로 남았어. 정민은 자신이 일주일 전에 죽어 이승을 떠도는 혼령이 되었다는 걸 시시각각 체감하는 중이었지. 그때였어. 짙은 안갯속 멀리 뭉게뭉게 피어나는 안개 사이로 아버지의 모습으로 보이는 실루엣이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게 보였던 거야. 깜짝 놀란 정민은 빛의 속도로 달려갔지.
‘아빠잖아.. 이건 아빠 꿈 속인가? 싱크를 하지도 않았..’
정민의 아빠는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며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어. 멀리서 본모습이었지만 한눈에 그래 보였지.
‘아직도 뭐가 괴로우신가.. 이제 됐어. 정작 죽은 나도 괜찮다고. 이젠 나 없이 다들 잘 살 생각만.. 응??’
아버지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정민은 아버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어. 입에서 나오는 소리인지 아버지의 생각이 울림처럼 퍼져 나와 느껴지는 건지, 죽음 이후에 영혼이 소리를 듣는 구조는 아직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분명히 똑똑히 들었어.
‘나 때문이야.. 내가 괜히 3억을 빌려줘서.. 미쳤지 내가.. 아니야, 그 자식.. 잡히기만 하면.. 끄.. 끄윽.. 괜히 나 때문에 애들이 일찍부터 돈 번다고 고생하고.. 끅.. 끄윽..’
꿈속의 아버지는 슬픔과 분노에 싸여있었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자책하며 괴로워하고 있었어. 그리고 정민은 전혀 몰랐던 사실에 적잖이 충격은 받은 듯했지.
‘아빠가 날렸다는 돈이.. 정말 친구 분에게 사기를 당한 거였어...........? 그렇다면 철민이 아저씨 꿈에서 본게..’
큰돈을 잃었다는 얘기만 들었지 구체적으로 얼마를 어떻게 날려버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더 컸던 것 같아.
‘아까 철민이 아저씨가 그랬던 게 다 이유가 있는 거였어? 어쩌면 이 모든 게 다 연결된 사건이 아닐까..?’
‘팟-‘
정민이 그런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아버지도 잠에서 깼어. 그리고 정민은 거실 소파에서 두 눈에 눈물자국이 마른 채로 누워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지. 정민은 순간, 어린 시절 이후 아버지의 얼굴을 정면에서 그렇게 제대로, 오래도록 쳐다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깊이 파인 이마와 눈가의 주름, 햇볕에 그을린 듯 전체적으로 붉은빛을 띠는 얼굴은 어린 시절 정민이 보았던 아빠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 낯선 느낌이 들 정도였지.
‘아빠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 게 도대체 얼마만이야.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가족이라는데, 다들, 돈 버느라, 먹고 사느라 오히려 남들보다 더 얼굴도 못 보고 살았네. 인생은.. 모순으로 가득해.’
이윽고, 아버지는 소파에서 일어났어. 시간은 이제 막 오전 7시를 지나고 있었지. 아버지는 가족들이 깨기 전에 이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았어.
‘아빠를 따라가 볼까. 아냐 아냐, 지금 정환이한테 코인 비번이랑 시드를 알려줘야 하는데. 그 무당 친구는 뭔가 빨리 도와줄 것 같더니. 뭘 하고 있는 거야.’
이런 정민이 보일 리 없는 아빠는 소리 없이 집 밖으로 나갔고, 정민은 무얼 먼저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고 말았어. 그리고 뭔가 결심을 했는지 곧바로 정환이의 방으로 들어갔지. 그런데 정환이의 방에 들어간 정민은 깜짝 놀라고 말았어. 두 눈이 새빨갛게 충혈된 정환이가 잠에 들지도 깨지도 않은 상태에서 비몽사몽 하며 침대에 기대앉아 졸고 있었거든. 정민이는 자리에 앉아 이번에는 정환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어. 아직 앳된 모습이 남아있는 정환이의 얼굴을 보니 정환이가 어린 시절 같이 뛰어놀던 때가 생각났어.
‘그때 내 나이가 딱 지금 정환이 정도일 때였는데. 그땐 나도 어른이 다 된 줄 알았는데, 그냥 애였어. 정환이도 아직 애잖아. 내 도움이 많이 필요할 텐데. 아, 그러니까 어서 잠에 좀 들어라 좀! 내 코인 다 줄게, 응?’
하지만 정민은 몰랐었어. 비몽사몽 하며 잠에 들듯 말 듯 졸고 있는 정환이 앞에 앉아 정환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정민의 모습을, 바로 정민이 뒤에서 꿈속의 정환이가 서서 보고 있었던 거야.
‘형.. 형이 또 찾아왔잖아..’
‘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순간 정환이의 알람이 방 안의 신비한 정적을 깼고 정환이는 잠에서 깨고 말았어. 정환이는 얼른 교복으로 갈아입고 가방을 들고는 집으로 나가 학교로 달려갔지.
‘아~이 자식, 이제 잠에 좀 드나 했더니.. 끝까지 말 안 듣네.’
정환이는 꿈이든, 강령술이든 뭐든 해서라도 형이랑 얘기하고 싶었어. 교실 문을 박차고 들어간 정환이는 곧장 다빈이에게 달려갔어.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책을 읽고 있던 다빈이는 그런 정환이의 행동 때문에 깜짝 놀라고 말았지. 평소에 조용하고 소심한 모습만 봐왔기에 적극적이고 활기찬 정환이의 모습은 마치 딴사람 같았던 거야.
“다빈아, 저기..”
“너 오늘 왠지 너 아닌 것 같다. 왜 이리 급해?”
“너네 사촌 오빠 있잖아, 오늘 또 만날 수 있을까?”
다급한 정환이의 목소리를 듣자 다빈이는 자세를 고쳐 앉고는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듣기 시작했어.
“왜 그래, 왜 그래? 너네 형 또 꿈에 나왔어? 뭔데, 뭔데?”
“어.. 내가 밤에 통 잠을 못 자다가 새벽에 선잠에 들어 꿈을 꿨는데..”
“어, 근데??”
“형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어.. 난 형 뒤에 서 있어서 형 얼굴 표정은 못 봤는데.. 뭔가 내게 할 말이 있어 보였어. 옛날, 나 어릴 때, 같이 막 놀러 다닐 때 가끔 형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었거든. 든든한데 뭔가 짠하고 뭐 그런 이상한 감정인데.. 그런 게 느껴졌어. 그래서 말인데..”
“응, 말해. 오빠한테 다시 물어봐줄까? 언제 보냐고?”
“응.. 혹시 오늘은 안될까? 뭐,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굿이 아니더라도 강령술도 있고 아니면 무당들은 평소에 신? 여하튼 그런 분들을 자주 만난다며, 그래서 혹시 우리 형이 지금 구천을 떠도는 건 아닌지, 저승에는 무사히 잘 갔는지 그런 것 좀 물어봐줄래? 그리고.. 나도 형이랑 얘기하고 싶거든. 유튜브 보니까 막 빙의해서 대화도 하고 그러던데..”
“야, 당근이지. 내가 바로 오빠한테 카톡 할게. 그런데 어제 보니까 오빠가 며칠은 좀 두고 보려고 하는 것 같던데.”
“맞아.. 그런데 이틀 연속으로 형이 꿈에서 보이는 것도 뭔가 이상하고, 혹시, 형이 나한테 할 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서.”
정환이는 다빈이의 눈치를 살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어. 만약, 영혼이 있다면 그래서 형의 영혼이 아직 저승으로 떠난 게 아니라면 그냥 마지막 인사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야.
‘까톡’
“왔다. 어.. 정환아.. 혹시..”
“어, 왜 그래? 오빠가.. 안 된데..?”
“아니.. 그게 아니라..”
다빈이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한 채 정환이를 쳐다보고 있었어. 그런데 그 모습이 마치 오싹한 공포에 질린 표정과도 비슷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