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억만장자의 죽음 6화

왜 그 이름이 거기서 나와?!

by Rooney Kim


“네? 어.. 어 어디요?”


멀리서 이들을 지켜보던 정민은 셋이 동시에 자신을 쳐다보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문 뒤로 돌아가서 숨었어. 물론, 정환이의 눈에는 정민이 보일 리 없었지.

“지금 형이, 우리 형이 여기에 있다구요?”

“그래. 그런데 넌 못 봐. 내 눈엔 보이는데, 너네 형도 죽은 지 얼마 안돼서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어색할 거야. 지금 문 뒤로 숨었다야. 하핳”

그러자 정환이는 자리를 박차고 레스토랑 입구로 달려갔어. 워낙 빨리 달려가서 카운터의 직원들이 어리둥절해하며 쳐다볼 정도였지. 하지만 문 뒤에는 역시나 아무도 없었어. 정환이의 눈에 정민이가 보일 리가 없었지.


‘정환아, 나 보여? 보이냐?’


정민이는 정환이가 자신이 있는 곳까지 오자 깜짝 놀랐지만 혹시나 정환이가 자기를 볼 수 있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정환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어. 하지만 정환이는 자신이 있는 곳은커녕 창문 너머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지.

“자자, 정환 군, 지금 니 눈에는 안 보여. 가서 일단 밥이나 다시 먹자.”

혹시라도 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가졌던 정환이는 조금 실망을 했지만 현실적으로 이미 죽은 형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기에 다시 정신을 차렸지.

“그럼 형이 왜 다시 날 찾아오는 거죠? 전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요?”

“그건 나도 형한테 물어봐야겠고, 일단은 오늘 저녁에 집에 가면..”

“집에 가면요..? 뭐 거울이나 촛불 그런 거 준비할까요? 쌀알이나 그런..”

“아니, 야야~ 중간에 말 좀 끊지 마~, 나 감 떨어진다. 암튼 12시 전에 자러 가. 알겠지? 푹~ 자야 해. 일찍 자야 피부에도 좋아.”

그렇다 둘과 이야기를 나누다 집에 돌아온 정환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서 도통 나오지 않았어. 오직 12시 전에 잠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얼른 방의 불을 끄고 잠에 들 준비만 하고 있었지. 그런데 어디 자야 한다고 마음먹는다고 바로 잠이 오는 게 아니잖아. 그렇게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의식의 흐름이 흐르고 흘러 가족들과의 기억에 까지 닿게 되었어. 어린 시절에 형과 보냈던 즐거운 기억들, 온 가족이 함께 떠났던 여름 여행, 가을의 단풍을 보며 즐거워하는 가족 뒤에서 휴대폰이나 하며 딴짓을 하던 자신의 못난 모습, 또, 초등학생 시절 그나마 형과 친하게 지낼 때 겨울에 눈만 오면 나가서 눈싸움하던 기억 등등 온갖 생각이 다 나기 시작한 거야.

‘그러고 보니 형은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데 나랑 잘 놀아줬구나. 그리고 우리 가족들은 전부 나에게 너무 잘해줬었네.. 몇 년째 가족들과 얘기도 잘 안 하는 동안에도 형과 누나, 엄마랑 아빠는 많은 노력을 해왔던 거야. 물론, 두 분은 이혼하시긴 했지만..’

12시가 되기 전에 잠들지 못할까 봐 초조하던 정환이는 갑자기 부모님과 누나가 생각났어. 걱정이 되기 시작한 거지.

‘그래.. 형도 형이지만, 일단 산 사람들은 살아야 하잖아. 내가 그동안 가족들에게 너무 무심했던 걸까. 맞아. 무심했지. 잠깐 나가볼까..’

정환이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살짝 문을 열어봤어. 이혼 후에 일 년에 몇번 볼까 말까했던 아빠는 몰라보게 수척해져 있었어. 오늘은 집에 가려는 걸 누나가 하루 더 붙잡아서 오늘까지만 거실에서 주무시고 간다고 했지. 엄마는 소파에 앉아있다가 물을 마시러 가는 뒷모습을 봤는데 온몸의 기운이 빠진 엄마의 뒷모습은 애잔해 보일 정도였지.. 정환이는 마음이 심란해졌어. 자신이 형을 보고 싶은 것보다 부모님도 슬픔이 더 클 것이라는 생각과 몇 년째 따뜻한 말 한마디는커녕 얼굴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아들인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돌아보기 시작한 거야. 그런 생각들 때문에 정환이는 도통 더 잠에 못 들고 있었어. 그렇게 자정이 지나버렸지.


‘쟤 오늘은 왜 잠을 안 자냐.. 얼른 자! 니가 잠에 들어야 내가 어떻게든 니 꿈에 들어가서 코인 비번을 알려주고 어, 내가 그 돈을.. 하’

정민은 또 갑자기 답답함과 자신에게 얼마 남지 않은 지구에서의 시간으로 인한 초조함 때문에 짜증이 차오르는 걸 느꼈어. 하긴 수천억 원을 두고 갑자기 죽어버렸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않겠나 싶어. 어느덧 자정이 지났고 가족들은 모두 잠들었는지 정환이 방의 작은 스탠드 불빛만을 제외하곤 모든 불이 꺼졌어. 결국 정환이는 잠에 들지 못한 거야. 집 근처를 서성이던 정민이는 또 아파트 단지 여기저기서 걸어서 또는 날아서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보았어. 이제는 그들이 잠들어 꿈속을 헤매는 사람들의 혼이라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지. 참고로, 모든 사람이 꿈을 꾼다고 저렇게 나오지는 않고, 또, 꿈속을 들어가게되면 현재 사는 곳 외에 아주 다른 공간을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다고 해. 유체이탈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라고 하니 빙의될 일은 적다고 하더라고. 그 순간, 정민은 아버지가 집 밖으로 나오는 걸 봤어. 처음에는 잠에서 깨서 나온 줄 알았지만, 아버지의 몸은 소파에 누워있는 걸로 보아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어딜 저리 급히 가시는 거야.’

정민은 아버지 몰래 아버지 뒤를 쫓아가 보기로 했어. 이혼 후에 어떻게 사시는지는 대충 알았지만 뭔가 숨기시는 게 있지는 않은지 갑자기 궁금했던 거지.

‘제발, 숨겨둔 다른 가족이 있거나, 이상한 여자 만나서 잘못 꼬이시지나 않았으면.. 그나저나 어디까지 가시는 거야.’

정민은 아버지가 공간을 넘어 다른 꿈으로 가기 전에 얼른 아버지 몰래 아버지의 옷자락을 슬며시 잡았어. 어차피 꿈의 공간에서도 사람들은 귀신들을 못 보는 듯해서 들키지 않을 자신감이 넘쳤던 거지. 정민이 아버지의 옷자락을 잡자마자. 갑자기 공간이 바뀌더니 아버지의 꿈 속으로 빨려들어갔어. 곧, 아버지의 친구들이 보였지. 그중 한 명은 아버지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위로했고, 다른 한 명은 그런 둘의 모습을 멀찍이서 쳐다보며 못마땅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어. 눈물을 흘리는 아저씨는 얼굴이 잘 안 보였지만, 멀찍이 있는 아저씨는 딱 봐도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었어. 바로, 정민이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펑펑 울던, 자신과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는 그 사람이었지. 이름은 철민이었어.

‘뭐야, 저분 내 장례식장에서는 펑펑 우시더니, 꿈에서는 다른 아저씨가 울고 저 아저씨는 뭐가 못마땅해서 저런 표정이시지?’

정민이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주변의 환경들이 또 바뀌기 시작했어. 아마도 아버지의 꿈이 또 바뀌는 중이었던 것 같아. 정민은 뭔가 수상함을 느끼고 얼른 멀찍이 서 있는 아저씨에게로 다가가서 그분의 옷자락을 다시 잡았어. 아직도 아버지에게 사기 친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자신의 가족을 풍비박산 나게 만드는데 원인이 된 사람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야. 정민이가 그분의 옷자락을 잡자마자 정민은 그분의 꿈속으로 빨려 들어갔어. 그리고 다시 주변의 모든 것들이 바뀌었지.

‘뭐야 여긴.. 여긴 어디야?’

주변은 칠흑 같은 어둠에 싸인 어느 산골짜기로 변했어. 얼굴에 불만이 가득하던 철민 아저씨가 손에 몽둥이를 들고 고개를 넘어 민가로 들어가고 있었어.

‘이것 봐. 내가 뭔가 수상하다했어. 철민이 아저씨, 내가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야. 어릴 때 나한테 잘해주셔서 내가 좀 따랐는데. 뭔가 있어. 수상해..’

정민은 아저씨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그를 따라갔어. 철민 아저씨는 어두운 골목을 오른쪽 왼쪽으로 돌아들어가며, 마치 잘 아는 곳이라는 듯 거침없이 걸어갔지. 어느새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고 그 앞으로 또 다른 어떤 남자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무릎을 꿇고 싹싹 빌며 앉아있었어. 둘은 무슨 대화를 하는 것 같았는데 잘 들리지 않았어.

“…….. 아니고…. 그러니까….. 이미 그 돈은……. 아악…. 미, 미안해!”

곧 몽둥이를 내리칠 듯이 들어 올린 철민 아저씨는 미안하다며 사정을 하는 아저씨를 냉정하게 내려다보더니 한 마디를 내뱉었어.

“미안? 미안은 나한테 할 소리가 아니지. 당장 돈 다시 찾아서 정진이한테 찾아가 그리고 빌어. 미안하다고 죽을죄를 지었다고!” 그리고 철민 아저씨는 그 아저씨를 몽둥이로 내리치기 시작했지. 그리고 정민은 그 이름을 듣고 깜짝 놀라고 말았어.

“정진..이라면, 아빠 이름이잖아..!”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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