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환이는 쉬는 시간이 되자 다짜고짜 같은 반 친구인 다빈이를 불러냈어. 다빈이는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분위기와 기운을 가지고 있었고 또, 정환이에게 말을 걸어주는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였지.
“응~ 뭔데 뭔데, 얘기 들어주면 나 초코빵 하나 사줘?”
다빈이는 특유의 밝은 에너지와 기운으로 항상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비교적 조용해 존재감이 없던 정환이에게도 다른 친구들과 다를 바 없이 대해줬어.
“그래 사줄게. 있잖아. 그게 뭐냐면..”
정환이로부터 간밤에 있었던 일과 꿈에서 본 것들을 들은 다빈이는 내심 놀라는 눈치였어. 장난으로 웃던 눈과 입가엔 어느샌가 진지함이 어리기 시작했지. 그리고 정민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어.
‘짜식.. 아주 왕따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고민 정도는 얘기할 친구는 있었네. 그것도 여사친? 우리 정환이, 내가 너무 몰랐었나.’
다빈이는 잠시 아무런 말이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무언가에 집중하기라도 하는 듯 한 곳을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갑자기 극심한 두통이라도 온 듯 머리를 쥐고는 끙끙대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어.
“왜 그래, 다빈아?.. 힘들면 안 해도 돼. 난 그냥 너무 궁금해서..”
다빈이는 곧 머리를 쥐고 있던 손을 풀었고 여전히 조금 찌푸린 얼굴로 정환이를 바라보고 말했어.
“너.. 너네 오빠, 혹시.. 학교에 데리고 왔어?”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은 정환이는 사방을 둘러보았어. 멀찍이서 둘의 대화를 엿든던 정민이도 그 소리에 깜짝 놀라서 주변을 둘러본 뒤, 슬며시 반을 돌아 멀리 떨어졌어.
‘아니 쟤는, 내가 보.. 보이기라도 하는 거야?”
“무슨 소리야. 형은.. 그냥 꿈에 나온 거야. 형이 내 방에 있었고 내 다이어리를 보는 형을 본 게 전부야.”
정환이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어. 그리고 다빈은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을 하기 시작했지.
“우리 사촌 오빠가 스물두 살인데 작년에 신내림을 받았어. 외할머니가 유명한 무당이셨거든. 알지? 근데 그 내력이 어디 가겠어? 자, 내가 아무래도 널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에에~ 초코빵 먼저 내놓으시지? 매점 가자!”
다빈이는 다시금 엄청 활짝 웃는 얼굴로 정환이의 오른팔을 끌고 가다시피 하며 매점으로 빨리 내려갔어. 뭐가 진실인지 영문을 모르는 정환이는 얼떨결에 끌려가 초코빵과 우유값을 계산하고 있었지.
‘아휴~ 깜짝이야. 그럼 그렇지. 쟤가 무당도 아니고 내가 보일 리가 없지.’
“아, 이거 정말 맛있다. 오늘 산 빵에는 초코 크림이 더 많이 들어있어. 꺄-아! 좋아라. 그래서 빵 고를 때 이것저것 들어보고 무거운 녀석으로 골라 사야 해. 히히히.”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소름 돋는 말을 했던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밝아진 다빈이는 금세 정환이의 고민은 잊은 듯 다시 다른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 정환이는 살짝 김이 새는 기분에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
“정환아, 근데 아까 너네 형, 우리 교실 근처에 있었는데 몰랐어? 지금은 모르겠는데 아마도 니 꿈에 나온 게 맞나 봐. 뭔가 할 말이 있어서 온 게 아닐까? 나도 왜 인지는 모르겠어. 혹시, 필요하면 우리 사촌 오빠한테 부탁해볼까?”
정환이의 얼굴에는 금세 화색이 돌아왔어. 어쩌면 다빈이를 통해서 형의 죽음, 그동안의 삶 그리고 꿈에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 물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야.
“그래!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야. 그런데.. 오빠분, 많이 바쁘시지 않아? 내 얘기를 들어주실.. 까?”
“맞아. 바쁘지. 그리고 오빠 몸값도 엄청 비싸. 우선, 스케줄 되는지 좀 물어봐야 해.”
다빈의 대답에 정환이는 다시 풀이 죽은 얼굴을 하고는 바닥을 쳐다봤어.
“얼마면.. 될까?”
정환이는 슬슬 비용에 대한 걱정도 들었어. 무속인들의 신점도 비싸지만 굿판은 한 번에 수천만 원에서 1억 도 넘는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야.
“음. 일단, 일정을 알아보는 건 오늘 초코빵으로 됐고, 오빠 문의 비용은.. 야!”
다빈이는 갑작스레 소리를 지르고는 혼자 배꼽이 빠져라 웃기 시작했어. 또 영문을 모르는 정환은 이리저리 갸웃거리며 다빈의 행동에 그저 끌려다니고 있었지.
“내가 누구니~ 나 우리 오빠랑 엄청 친해. 걱정 마. 근데 그래도 아무런 대가 없이 미래를 보거나 질문을 할 수는 없으니까. 오빠가 좋아하는 장난감 정도로 지불할 수 있도록 해볼게. 아, 그거 안 비싸, 하나 당 1~2만 원 안팎이야. 내가 지난 오빠 생일 때 사줬거든. 엄~청 좋아하더라. 오빠도 너 얘기 들으면 되게 좋아할 것 같애. 맨날 손님들이 와서 ‘난 언제 부자가 될까요?’, ‘전 오래 살까요?’ 뭐 이런 얘기만 듣다가 네 얘기 들으면 아주 신나 할지도 몰라!”
다빈이의 얘기에 한껏 기분이 들뜬 정환이의 얼굴에는 또다시 화색이 돌았어.
“열개라도 사줄게! 그건 걱정 마! 필요하시면 돈도 드릴 수 있어!”
“피규어면 돼.”
“그럼 언제가 좋을까..? 그 형님 정말 바쁘시지 않아?”
“나 오늘 오빠 만나는 날이야. 저녁에 피자 사준 댔거든~ 룰루~ 야, 너 운도 좋다. 히히. 너 아까 멍 때릴 때 내가 오빠한테 톡 보냈는데, 오래. 오늘 저녁에 같이 오래. 얘기 들어보겠데.”
정환이는 다빈이의 촉과 실행력에 깜짝 놀라고 말았어. 당장 형이 자신의 꿈을 찾아온 이유를 묻고 싶은 마음의 간절함과 별도로 그저 다빈이의 실행 능력에 감탄을 숨길 수 없었지.
‘오, 어쩌면 오늘 저녁에 많은 일들이 해결되겠는데? 정환이 자식, 친구도 없는 줄 알았더니, 기가 막힌 친구가 하나 있었네.’
학교를 파한 뒤 정환이와 다빈이는 지하철을 타고 다빈이네 사촌 오빠를 만나러 이태원으로 갔어. 왜 이태원인지 다빈이에게 물었더니 거기에 오빠가 좋아하는 화덕구이 피자집이 많아서 그렇다는 말에 정환이는 현대의 무당 이미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지. 자신이 너무 편협한 고정관념에 빠져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건 거야. 둘은 곧 굉장히 고급스러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도착했어. 입구의 종업원은 처음에는 교복 차림의 둘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더니 예약자명을 듣자마자 표정을 싹 바꾸고는 둘을 정중하게 안내하기 시작했어. 둘은 굉장히 아늑하고 큰 방으로 안내되었고 정환이는 거기서 다빈이의 사촌 오빠를 처음 만나게 되었지.
“오빠~ 꺄르륵~”
다빈이는 평소 성격답게 오빠에게 달려가더니 푹하고 안겼어. 그런데 사촌 오빠는 다빈이를 반기면서도 다빈이의 과도한 스킨십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다빈이를 슬쩍 떼어내고는 테이블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았지. 실로, 웃지 않을 수 없는 재미난 광경이었어.
“자자, 앉자. 아, 다빈이 친구분이죠. 얘기는 들었습니다. 반가워요.”
“네네.. 저 근데 오늘 바로 오게 되어서 제가 피규어는 아직 준비를 못했거든요.. 그래서..”
그때 다빈이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어.
“그거 이미 내가 오빠한테 링크받았어. 나중에 보내줄게. 까먹었네. 히히. 아 만 이천 원 밖에 안 해. 걱정 마.”
“어.. 그래.”
연신 밝은 분위기라 그런지 정환이도 어느새 둘과 함께 있는 자리가 편해지기 시작했어. 곧 샐러드와 피자 그리고 파스타도 나왔지.
“보아하니 이거 굉장히 재밌겠는데?”
조금 얘기를 하는 사이에 이미 친해진 듯한 분위기가 되자 다빈이 사촌 오빠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을 놓고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어. 그분의 이름은 정철령이었는데, 주로 정도령이라고 불렸지.
“정환아, 이제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얼마 안 가서 너네 형이 널 다시 찾아올 거야. 그런데 형은 꿈에서만 만날 수 있어. 넌 귀안이 안 열렸으니까.”
정환이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용어가 난무하는 정도령의 설명을 완전히 다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그분은 뭔가 아는 눈치였어. 정도령은 얘기를 하다 말고 고개를 들더니 주변을 다시 둘러보기 시작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