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억만장자의 죽음 4화

꿈속으로

by Rooney Kim


정민은 대문 밖 복도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어. 20년도 넘게 산 복도식 구조의 아파트라 종종 주민들과 마주쳤는데 정민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인사하고 지냈던 아주머니와 자신과 동갑이었던, 한 때 정민이 몇 년간이나 짝사랑했던, 아주머니의 딸이 정민의 집 앞을 지나가면서 얘기하는 것도 들렸지.

“나영아, 얘 기억나지? 정민이. 글쎄, 운동하다가 심장마비로 그렇게 되었데. 참, 안됐어. 몇 년간 얼굴이 안 보여서 자취하는구나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너도 어디 나가서 살 생각하지 말고 결혼할 때까지 엄마랑 붙어있어. 알겠지?”

“응. 맞아. 나 정민이랑 초등학교 때 같은 학교에 같은 반도 한 적 있는데.. 기분 참 묘하네.”


그저 그렇게 완전히 타인의 시각에서 본 자신의 죽음은 그저 한마디의 희미한 추억의 한 조각이자 ‘그러니까 너도 조심해’와 같은 간접적인 경고, 타산지석의 한 케이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꽤나 실감 나는, 죽음 이면의 냉정한 평가처럼 느껴졌어.


그렇게 정민은 몇몇의 이웃들이 지나며 한 두 마디 하는 것, 생각하는 것 그리고 이 일은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기에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며 현대인의 죽음과 그 이면 안에, 계속해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대해 잠깐이나마 깊은 생각에 빠졌지. 그러다 어느덧 자정, 즉, 이승에서 망자가 된 혼령이 비교적 쉽게 이승의 사람들과 접촉하기 쉬운 시간대에 접어들었지. 분명히 수아 씨는 꿈을 이용하라고 했고 밤이 되면 안다고 했는데 정민은 여전히 그걸 어떻게 이용해서 어떻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라는 건지 알진 못했어. 당연하지. 정민이도 처음 죽어본 거니까 말이야.

‘엄마랑 누나는 잠들었고. 아빠는 거실에 누워계시고. 보자, 정환이 이 녀석은 아직 잠도 안 자고 있잖아.’

그렇게 집안을 둘러보던 정민은 20년도 훨씬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이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의 기억과 추억들이 담긴 집과 집 안의 물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


오래된 시계, 벽에 걸린 어린 시절의 사진들, 대학교 졸업 사진, 오래도록 쓰면서 낡아 해진 양쪽 귀퉁이가 다 드러난 소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사용한 식탁 등등


이를 보고 있자니 지난 추억에 너무나도 슬픈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어서 다시 밖으로 나왔어. 문을 열 필요는 없었어 그저 통과하면 되니까. 정환이는 여전히 뭘 하는지 스탠드 등을 켠 채 방에 있었고 정민은 정환이가 잠에 들 때까지 다시 복도에서 기다리기로 했어. 그런데 분명 자정이 지난 늦은 밤인데 복도에 사람들이 많이 나와있는 거야. 정민이 있는 복도는 물론 건너편 다른 동의 복도에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나와있었어. 그런데 사람들의 행동이 좀 이상했어. 보통 사람들은 집을 나오면 어디로 가기 위해 이동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거나 어디론가 갈 텐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그 자리에서 맴돌거나 특정 구간을 왔다 갔다 반복하거나 아니면 우두커니 서서 밤하늘의 허공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는 거였지. 이런 일련의 기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정민은 저들이 귀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곧 알게 되었어. 저들은 귀신이 아니라는 것을. 왜냐하면 그 사람들의 머리 위, 다리 아래 그리고 아파트 복도 바깥쪽에 몰려있는 수많은 검은 형상들을 보았거든. 바로 그것들이 귀신이었지. 그것들은 마치 저 사람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이 집요하게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어. 어떤 형체는 팔다리가 기괴할 정도로 길었고 어떤 형체는 눈코 입이 없었고 또 어떤 형체는 마치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며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리고 있었지. 그리고 그들은 바깥에 나와있는 사람들에게 들러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했어. 그래서 복도의 사람들과 귀신들은 확연히 구분이 갔지. 이를 보면서 정민은 순간 자신도 이승을 떠도는 혼령이라는 생각을 잠시 잊고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었어.

‘하긴 몸도 없는데 무슨.. 아니 그럼, 지금 복도에 나와있는 사람들은 뭐지.. 저들은.. 어, 어어, 안돼!’

정민이 생각에 골똘히 빠져있는 동안 갑자기 반대 동에 있는 어떤 여학생이 복도 난간으로 올라가더니 아래쪽을 향해 몸을 던졌어. 미처 정민이 이를 말리거나 할 틈도 없었지. 정민은 여학생이 떨어진 아래를 바라봤어. 그런데 여학생의 몸은 아래로 떨어지다 말고 갑자기 뿅 하고 사라진 거야.

‘뭐야.. 뭐지? 그럼 저 사람들도 유령인 건가?’

혼란스러워진 정민은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어. 이승을 머무는 망자로서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던 거지. 그 순간, 부모님의 집 밖으로 누군가 걸어 나왔어. 바로 정환이었지.

‘정환아! 정환아, 나야 형. 나 보여?’

정민이는 정환이에게 달려가며 소리쳤지만 정환이는 쳐다보지도 않았어. 당연히 영혼이 된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생각이 퍼뜩 든 정민이는 어떻게 해서라도 정환이와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어. 정환이 손을 잡아보기도 하고 정환이 몸을 향해 돌진하기도 하고 귀에 대고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를 지르기도 했지만 정환이는 전혀 이를 눈치채지 못했고 오히려 멀리 떨어져 있는 망령들의 주의를 끌게 되었지. 정민은 두려운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어. 자신의 뒤로 아까 보았던 팔다리가 긴 십 척 장신의 혼령과 기괴한 표정과 괴이한 움직임으로 다가오는 망령들이 보였지. 정민은 자신도 혼령이었지만 엄청난 공포가 엄습하는 걸 느꼈어.

‘정환이가 위험해. 어떻게든 얘라도 다시 집으로 들여보내야 해. 정환아, 제발, 나 못 봐도 되니까 다시 집으로 들어가..!’

정환이를 다시 집으로 밀어 넣기 위해 진심과 사력을 다해 정환이에게 달려들었어. 정환이를 집에 밀어 넣기 위해 갖가지 방법은 다하던 정민은 순간, 주변의 모든 것이 바뀌면서 다신 집안으로 들어온 자신과 정환이를 보게 되었어. 마치 TV 채널이 바뀌듯 순식간에 모든 게 변했던 거야.

‘오 됐다. 집으로 들어왔어!’

그런데 사실 그건 집으로 들어온 게 아니었어. 정민은 드디어 정환이의 꿈에 들어가게 된 거야.

‘그런데 얘는 다시 침대에 누워있네. 분명히 내가 끌고 들어왔는데. 언제 누웠지..? 뭐 나도 유령인데 이상할 것도 없지.’

누워있는 정환을 가만히 쳐다보며 정환이가 다시 일어나면 코인과 관련해서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중 정환이의 책상 서랍 안에서 뭔가 빛이 반짝반짝거리는 걸 보였지. 정환이도 기다릴 겸 궁금해진 정민은 서랍을 열어보았지. 그 안에는 정환이가 중학생 때 쓰던 다이어리와 학용품이 들어있었어. 정민은 수년 전 기억이 떠올랐어. 갑자기 벙어리 가 된 듯 도통 그 누구와도 얘기를 안 하고 부모님 말씀도 잘 안 듣던 정환이가 생각난 거였지. 다행히 큰 사고를 치진 않았지만 갑자기 말 수가 줄고 급격히 내성적이 된 정환이를 보며 걱정하던 부모님과 누나도 생각났어. 그래서 다이어리를 끄집어 내 조심히 열어보았어. 혹시라도 정환이라 깰까 봐 다시 침대에 누워있는 정환이를 확인하고는 다이어리 내용을 살펴보기 시작했지.

‘어쩌면 정환이가 그때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몰라. 정환아, 이건 모두 너와 가족을 위한 거야. 오해는 하지 마. 어차피 몇 년 전 일기잖아. 그러니까.. 어.’

정환은 부모님이 이혼하던 날 이후 정환의 일기를 읽다가 그만 손이 언듯 멈출 수밖에 없었어. 다이어리 속에는 정민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정환이의 고민과 생각이 담겨있었지..


‘6월 21일. 엄마, 아빠가 이혼하고 한 달이 지났다. 나도 이젠 좀 덜 두렵고 덜 괴롭다. 처음엔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무서웠는데 시간이 지나니 괜찮네. 엄마는 집과 우리를 지켰지만, 아빠는 맨몸으로 나가셨다. 우리도 걱정이지만, 아빠도 걱정이다. 두 분, 정말 왜 갑자기 이혼하셨을까.. 형은 이제 입버릇처럼 나가서 돈을 벌어오겠다고 한다. 공부나 더 열심히 하지. 대학교 졸업이나 하고 저러면 좋을 텐데.. 그것도 걱정이다. 그나마 누나가 직장인이라 경제적으로 보태고 있고.. 엄마도 평생을 일을 안 하시다가 식당 설거지와 전단지 알바를 하시겠단다.. 하. 나도 뭘 해야 하나? 나 혼자 학생인 게 짜증이 난다. 고등학생이라도 됐으면 알바라도 할 텐데.’


정민은 두 손이 떨렸어. 정환이가 이런 생각을 했으리라곤 전혀 상상조차 못 했기 때문이야.


‘7월 9일. 형이 주말에 집에 왔다. 방학이라 온 것도 있지만 방학 기간 동안이라도 자취방에 빼서 월세를 아끼겠다고 한다. 형은 휴학을 하고 일을 하겠다고 했고 엄마는 우선 졸업이라도 하라며 형을 다그쳤다. 누나도 가세했다. 돈 걱정 말고 졸업이나 잘하란다. 사실, 그 말이 맞지 뭐. 형이랑 얘기를 안 한지 오래라 어색해서 인사만 했다. 형은 나한테 언제까지 그렇게 답답하게 말도 안 하고 살 거냐며 또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다행인 게 우리 형은 날 한 번도 때린 적이 없다. 학교 친구들은 형한테 맞아서 코피도 나고 팔도 부러지고 난리도 아닌데, 그래서 난 형이 좋다. 소리를 질러도 대부분 맞는 말만 하니까. 형이 낮잠 자는 동안 잠시 형 방에 가봤는데 5년 전에 샀던 구닥다리 노트북을 아직도 쓰고 있었다. 순간, 내 걸로 바꿔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몇 년째 가족들과 얘기도 잘 안 하는데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하면 이상하게 여길 것 같아서 그만뒀다. 나중에 어른이 돼서 돈 벌면, 형 노트북도 하나 사주고 싶다.’


정민은 뒤통수를 크게 한 번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동안 가족들과 말도 잘 안 해서 답답하게만 여겼던 동생이 알고 보니 이렇게 속이 깊은 아이였다는 걸 자신이 죽은 후에나 깨달았으니 그럴 만도 했지. 정민은 동생 곁으로 다가갔어.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는지 도무지 깰 것 같지 않았지. 동생의 깊은 속마음을 알게 된 정민은 미안한 마음과 함께 빨리 정환이 깨길 바랬어. 아니면 수아 씨의 말대로 정환의 꿈속에 들어가고 싶었지.

‘밤이 되면 알게 된다더니, 도대체 어떻게 꿈속에 들어가는 거야..! 젠장..’

그때였어.

‘혀.. 형..’

정환이를 쳐다보던 정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지. 그리고 얼른 뒤를 들아보았어.’

‘저.. 정환이?’

정환이는 분명히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정민이 뒤를 돌아서 본 정환이의 모습은 아까 복도에서 집으로 끌고 들어온 모습 그대로의 정환이었던 거야.

“정환아!”

정민이 정환이를 부른 순간 정환이는 사라졌어. 그리고 정민은 아까처럼 또 주변의 모든 것이 마치 TV 채널을 돌리듯 바뀌어 다시 복도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지.

‘뭐야.. 이게 도대체’

정민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어. 분명히 집 안이었는데 정환이를 본 순간 다시 복도로 돌아온 것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헷갈린 거지. 눈앞에서 자신을 바라본 정환이를 놓친 것도 아쉬웠지만, 적어도 정환이의 진심을 알게 되었고 그동안 아주 건강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가슴 한 구석에 막혀있던 무언가가 뻥하고 뚫린 기분이 들어서 후련한 마음도 들었어.

‘다시, 집으로 들어가 보자.’

문을 뚫고 들어가 정환이의 방으로 들어간 정민은 잠에서 깨어 침대에 앉아있는 정환이를 보았어. 당연히 정환이는 정민을 볼 순 없었지. 잠시 앉아있던 정환이는 곧장 책상으로 가 스탠드를 켜고 서랍에서 또 다른 다이어리를 하나 꺼냈어. 그리고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지. 정민은 정환의 옆으로 가서 녀석이 또 어떤 내용을 쓰는지 몰래 지켜보고 있었어.

‘형이 꿈에 나었다. 내 방에서 나의 지난 일기장을 읽고 나를 쳐다보는 형을 보았다. 이건 무슨 뜻일까. 형이 정말 날 찾아온 걸까. 형이 너무 보고 싶다..’

정민은 있지도 않은 심장이 마구 뛰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 당장 정환이를 붙잡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 어느 하나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무력감이 마저 들었지.

‘수아 씨,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정민은 막막한 마음에 또 속으로 수아 씨를 불렀어.

"잘하고 있어요. 이제 시작이군요. 30일 남았습니다. 그럼 행운을 빌어요!”

“아니 어떻게요? 꿈에는 다시 어떻게 들어가고, 얘기는 어떻게 해야 해요??”

“곧 방법이 생길 거예요. 걱정 마세요.”

수아의 목소리는 곧 사라졌고 정민은 복도에 서서 꿈속을 떠도는 사람들과 그 안에 들어가려는 망령들을 보며 또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졌어.


‘분명히 형이었어. 형이 내 다이어리를 봤어. 형이 내 꿈에 나타난 건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이걸 누구에게 물어보지.. 다빈이..? 다빈이가 꿈해몽도 잘하고 예지몽도 꾸고 그랬지.. 그래 학교에 가서 다빈이에게 물어봐야지.’


정환이는 이른 새벽부터 학교를 가기 위해 집 밖을 나와 학교를 향했고 정민은 정환이를 보자마자 따라가기 시작했어.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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