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억만장자의 죽음 3화

내 재산, 어떻게 찾지?

by Rooney Kim


“좋아요. 그럼 한 달 뒤에 봐요.”

정민에게 선택을 재촉하던 수아는 이 한 마디를 남기고는 사라졌어. 그리고 정민은 다시 혼자가 되었지. 만 3일 동안 장례식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어. 이혼하셨던 부모님은 이번만큼은 싫은 내색하지 않고 종종 얘기도 나누셨고 정민이 아빠의 친구들로 보이는 아저씨들도 열댓 명은 다녀가셨어. 특히, 이틀 밤을 지새우며 자리를 지킨 분도 계셨는데 정민이가 어릴 때 같이 해변으로 캠핑도 가고 낚시도 다녀서 그런지 정민이가 그나마 좋아했던 아저씨였어. 딱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분은 정민이 아빠를 보자마자 펑펑 울었어. 그런 모습을 보니까 정민이도 마음이 좋지 않았지. 정민이 엄마는 말할 것도 없었어. 이 모든 게 다 자기랑 아빠가 이혼해서 가정이 불우했던 탓이라고만 했어. 그러면서도 정민이 아빠 친구들 중 몇몇을 보면서는 분노를 삼키지 않았지. 사기꾼이라고도 하고 사기 친 xx 얼른 찾아내라고 고함도 치셨어. 정민도 그런 엄마의 모습과 이에 쩔쩔매는 아빠 친구들의 모습은 처음이라 기분이 묘했어. 누나는 자기 친구들이랑 친척들을 모두 살뜰하게 맞으면서 눈물을 훔치기도하고 종종 허공을 응시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주변을 응대했어.

‘아니, 그런데 정환이 저 놈은 왜 내 장례식장에서까지 저러는 거야. 나 살아있을 때도 말을 안 듣더니’

정환이는 갑작스러운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건지 아니면 받아들이기 싫은 건지 장례식장에서도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모두를 퉁명스럽게 대했어. 이제 열여덟 살이나 되었는데 정민의 눈에는 아직도 어리광을 부리는 것으로 밖에는 안 보였지.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래. 이래서 나중에 부모님을 잘 모시기는 할까?’

정민이 역시 자신이 대학생이던 20대 초반에 아빠의 사업 실패로 인한 엄청난 빚으로 이혼한 부모님 때문에 자기도 나가서 을 벌겠다며 독립한 이후 일 년에 한두 번 찾아뵐까 말까 한 부모님이었지만, 동생이 하는 행동을 보면 녀석은 아직 철도 안 든 녀석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던 거야.

돈도 벌었고.. 이제 좀 효도라도 하나 했는데..’

모든 상황이 낯설고 슬픈 장례식장이었지만 제일 힘들었던 건 입관 때였어. 정민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갖춘 육신을 화장 전에 가족들에게 보여주며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자리였는데 이때 정민은 차마 그 자리에 같이 있을 수가 없었어. 아무런 감정조차 보여주지 않았던 정환이 조차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야.

이후 정민은 재가 되어 가족 묘원에 안장되었어. 차갑고 딱딱한 가로 세로 길이가 30센티미터 정도에 불과한 납골당에 들어찬 자신의 분골함을 보고 있자니 정민은 또다시 만감이 교차했지. 여전히 오열하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지인 분들은 자리를 하나둘 떠나 버스로 돌아갔어. 한 시간도 채 안되어 모두 버스를 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지. '산 사람은 살아야지.', '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등등 장례식장에서 들릴법한 뻔한 얘기들이 오갔고, 삼촌과 친지들은 보험 처리, 장례비 처리 등 부모님들이 신경 쓰지 어려웠던 것들을 도맡아 정리해주었어. 정민은 더 이상 가족들을 따라가지 않았어. 그저 자신의 분골함을 골똘히 바라보다 석양이 지는 하늘을 보며 잠시 자리에 앉아있었지. 세상사 허망하고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27세 평생 뭐하고 살아온건지 과거를 돌이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그러다 문득, 갑자기 그게 머리에 번쩍하고 떠오른 거야.

‘아 맞다, 내 코인들, 내 재산!’

정민은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어. 그리고 다시 납골당으로 들어가서 날짜와 시간을 확인했지.

‘벌써, 3일이 지났지. 가만 보자. 포르셰 인도일이 20일 정도 남았고, 옳지 이건 아직 시간이 괜찮네. 새 아파트는 계약하고.. 아 맞다 잔금! 잔금이 두 달 뒤야. 어떡하지..? 가족들은 내 재산도, 내 코인도 모르는데.. 이런 것들이라도 좀 처리하고 죽었으면 얼마나 좋았냐.. 이놈의 팔자는 왜 피다가 마냐!’

그랬어. 정민은 2년간의 직장생활 동안 코인 투자를 시작했고 작년 하반기부터 비트 xx으로 수억의 시드머니를 만든 후 비트 및 메이저 알트 코인들에 공격적으로 투자한 뒤 올 상반기, 즉 수개월 전에 투자했던 3개 코인이 그야말로 초초, 아니 초초초 대박이 나면서 이천억이 넘는 현금을 벌어들였던 거야. 당시 정민은 이 사실을 당장 알리려고 엄마에게 전화했지만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가족은 물론 그 누구에게도 이와 관련해서 말을 하진 않았어. 20대의 후반에 들어선 정민은 갑작스레 불안한 생각이 들었던 거지.

가뜩이나 돈 때문에 이혼한 부모님이 정민의 2,500억 원 재산에 대해 알게 되면 이건 득일까 실일까? 혹시라도 몰랐던 돈 욕심에 그나마 유지되던 가족의 관계가 깨지지는 않을까 불안해졌던 거야.

‘집에 빚도 그렇고, 누나도 내년쯤 결혼한다고 해서 돈이 필요하긴 할 텐데.. 정환이도 후내년이면 대학교에 가야할테고..’

그래서 정민은 우선 갑작스레 번 돈으로 자기의 앞가림은 해놓고 하반기에 분위기를 보며 가족들에게 말을 할 계획이었던 거야. 로또 당첨이나 재산 분할로 깨지는 가족의 뉴스를 심심찮게 봐왔던 터라 그런 걱정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

‘이걸 어떻게 한다. 이 많은 돈을 이렇게 주인 없이 버려지게 할 순 없잖아. 게다가 아파트든, 차든 나한테 연락이 안 닿으면 분명 가족들한테 연락이 갈 텐데 그전에 조치를 취해야 해. 2,500억 원이나 가지고 있으면서 수개월간 말도 안 했다는 걸 알게 되면 엄마, 아빠는 누나는 또 나한테 얼마나 실망하겠어..? 그리고 통장에는 지금 500억 원 밖에 없어.. 이천 억은 전부 거래소 계좌랑 개인 지갑 계좌에 있다고..! 아 정말, 이거 어떻게 해야 해. 비번은 나 밖에 모르고, 인증도 나만 할 수 있는데..’

정민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어. 자신의 죽음으로 인한 가족과 친지, 친구들의 슬픔에 함께 취해 멍 때릴 시간 조차 없어진 거였야.

‘일단, 집으로 가자. 누구에게라도 알려야 해. 그런데 어떻게 가지? 지금 걸어가면 자정에나 도착하겠는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죽으면 막 날아다니고 그럴 줄 알았더니. 몸만 가볍지 살았을 때나 다를 게 없잖아.’

고민한 던 중 갑자기 헬스장에서 만났던 그 여자, 메신저라고 자칭하던 수아씨가 생각났어.

‘수아씨는 어떻게 불러야 다시 나오려나. 진짜 한 달 뒤에나 오는 거야?’

혼자 그런 생각에 빠져있던 중 갑자기 허공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마치, 텔레파시로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지.

‘주차장에 좀 있으면 시내로 돌아가는 운구 차량이 있으니까 타고 가요. 어차피 사람들은 못 보니까 괜찮아요.’

전혀 예상치 못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정민은 깜짝 놀랐지만, 어차피 사후 세계인데 새삼 놀랄 것도 없다는 생각이 곧바로 들었어. 오히려, 영혼이 된 몸이 날아다닐 수 없다는 사실에 좀 실망했지.

‘지금 당장은 이동에 제한이 있어요. 날아다니는 건 며칠 지나면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지구 밖으로 나오지는 못하니 엉뚱한 생각은 말아요.’

역시나 정민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그녀는 한마디를 더 남기고 마치 라디오 주파수가 꺼지듯 그녀의 목소리는 사라졌어. 곧장 주차장을 달려간 정민은 이제 막 시동을 걸고 가려는 버스에 올라탔고 맨 뒷자리에 앉은 정민은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다시 시내로 돌아가기 시작했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망자로 인한 슬픔은 극소수의 몫인가 봐. 정민은 그 차 안에서 그 가족들로부터 별 이야기를 다 들었어. 죽은 할머니의 보험 보상금 분할부터, 선산의 땅, 집, 현금, 재산 등등 생판 모르는 망자의 가족들은 차 안에서부터 다투기 시작하더니 병원에 도착해서는 고성을 지르며 노 발대발하기 시작했지. 쌍방으로 고소를 하고 법원에서 보자는 둥 가관이었지. 그래서 정민은 어쩌면 자신의 죽음과 가족들의 이후 대처는 축복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

‘708동, 아니, 707동이었나?’

정민은 집을 나온 지 만 3년째가 되고 늘 기계적으로 부모님 집을 방문하다 보니 어느덧 부모님 집의 주소조차 흐릿해진 자신을 보며 반성하게 되었어.

‘그러고 보니 사소한 선물 조차 보낸 적이 없구나.. 비트로 벌었을 때 소고기라도 보내드릴걸. 그땐 내가 너무 돈에 취해있었어..’

집에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있었어. 아빠는 바로 아빠네 집으로 돌아 갈 줄 알았는데 아직 정리할 게 있는지 같이 모여 있는 가족의 모습을 보니 화목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갑자기 울컥해졌지. 매번 가족 여행을 다녀오면 이렇게 다함께 모여있었는데 하는 생각에 잠깐 아련해졌던거야. 대충 가족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정민과 관련된 원룸 등의 재산과 통장 잔고는 모두 정리해서 장례 비용에 들었던 걸로 충당하고 보험금은 엄마에게 모두 준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어. 정민의 500억 통장은 전혀 눈치도 못채고 있었지. 그마저도 비밀계좌에 들어있어서 본인 혹은 10장의 대리인 서류가 없이는 접근 못하는 통장이었지. 아무튼 아빠는 이혼 후에 본인도 원룸에 살면서 힘들 텐데 그 마저도 양보하는 모습을 보니 정민은 더더욱 빨리 코인을 정리해서 가족들에게 도움이 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아빠의 결정에 누나는 아빠를 걱정했고 엄마도 반으로 나누자고 했지만 아빠는 한사코 거절했어. 그러다 엄마가 갑자기 다시 울기 시작했고 누나도 엄마를 달래다 같이 울었지. 동생 녀석은 또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아빠 역시 눈물을 훔치며 엄마와 누나를 위로했어.

‘정환이 저 자식은 또, 나참. 도대체 방에서 뭘 하는 거야.’

정민은 정환이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생에 처음 보는 정환의 모습을 보았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끄윽끄윽 소리를 내며 숨죽여 울고 있는 동생을 본 것이었지.

‘아니.. 야.. 정환아.’

그 모습은 정민이 생에 단 한 번도, 결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정환의 모습이었어. 매사 냉정해서 피도 눈물도 없는 동생이라 생각했는데 속은 달랐었다고 생각하니 또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 그나마 정환이가 초등학생 때는 정민이랑 같이 자주 놀러 다녔었는데, 그 녀석의 중2 때 사춘기가 세게 온 뒤로는 정민이도 정환이랑 제대로 얘기를 해본 적이 없었기에 정환의 이런 모습이 낯설기도 했고, 그래서 그동안 제대로 못 챙겨준 게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도 묵묵하게 사고 한 번 안치고 살아준 게 고맙기도 했어. 그때 또 밖에서 엄마와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정희야, 정민이 보험금 나오면 네가 가져가. 내년에 수종이랑 결혼해야지. 엄마, 아빠도 뭐라도 챙겨주겠지만.. 일단 우리 정민이가 누나 결혼 비용 보태준다고 생각해.. 너 그동안 아르바이트하면서 생활비도 보탰잖아..’

그러면서 엄마는 또 펑펑 울기 시작했고 누나는 그 돈은 절대 안 받겠다며 오히려 화를 냈어.

‘아니, 뭐야.. 내가 우리 가족들을 너무 몰랐나? 누나는 학창시절부터 아르바이트해도 용돈 한 번 제대로 안 주더니 집에 다 드린 거였어..? 난.. 도대체 그 동안 뭘하고 산거지..?’

정민은 이제 어떻게든 자신의 재산을 다 찾아서 가족들에게 줘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들었어. 수년간 가족들과 깊은 대화가 없었기도 했지만, 자신이 몰랐던 가족의 사정이 너무 많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거든.

‘저기, 수아씨? 저기요. 저승사자님? 아니, 메신저님? 제 목소리 들리나요?’

정민은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질렀어. 자신의 재산, 코인, 집, 차 등등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그리고 자신이 짧은 시간에 번 큰돈들에 대해 왜 바로 가족들에게 얘기하지 않았는지 등에 대해 방법을 찾고 싶었어. 그리고 곧바로 그녀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어.

‘꿈을 이용해요.’

‘꿈.. 꿈!? 어떻게요..?’

‘밤이 되면 알게 될 거예요. 아~주 자연스럽게.’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hope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젊은 억만장자의 죽음 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