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대원들 역시 심폐소생술을 행하며 왔지만 사실상 이미 늦어 보였지. 정민과 여자도 함께 병원으로 갔어. 어차피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물리적인 공간도 차지하지 않는 영혼 상태라 구급차 구석에 탔던 거지.
“호흡과 맥박이 전혀 돌아오지 않습니다.”
“사실상 가망이 없는데요..”
“보호자, 어서 보호자 불러.”
“연락처는..”
“이 사람 우리 병원 VVIP야. 서정민 씨라고..! 어서, 보호자 연결해.”
흉부외과 과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소리를 지르자 전공의들이 전화를 하러 튀어나갔고, 과장과 전문의들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정민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어. 곧이어, 흉부외과 과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어.
“조금만.. 미, 미룰까요?”
“뭐? 뭘?”
과장은 굉장히 날카로워져 있었어. 이를 보는 정민이 역시 덩달아 긴장하게 만들 정도였지.
‘저분, 저렇게 까칠한 분이셨어? 나랑 있을 때는 굉장히 부드러우셨는데’
“당연한 거 아닌가요? 어쩌면 앞으로 평생 수십 년을 후원해줄 VIP가 젊은 나이에 사망했으니 그럴 만도 하죠.”
여자가 상황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정민을 바라보며 갑자기 입을 열었어. 마치, 정민의 생각을 이미 다 알고 있기라도 한다는 듯이 말이야.
“저기요. 전 아직 제가 죽었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거든요. 지금 사람이 죽었는데 그 사람 앞에서 후원금 때문에 저 과장님이 그렇다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정민이 그녀에게 쏘아붙였어. 자기가 왜 갑자기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죽은 자신을 데리러온 자를 마주한 상황에서 그 누가 예민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해. 그런데 정민의 기분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그녀가 갑자기 또 미소를 띠는 거야. 그 순간, 정민의 귀에 전혀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어.
‘아, xx 진짜, 내가 이 사람을 어떻게 VVIP로 만들었는데. 왜? 왜 갑자기 죽어서 온 거야. 분명 이번 달 초 정기검진 때도 심장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잖아. 아, 이 새끼 죽으면 또 누굴 데려오지. 누가 연간 10억씩 기부하고 월 천만 원씩 쓰러 오겠냐고.. 나참. 또 어디서 후원자를 구한다.. 그나저나 올초에 계약한 연간 기부금 중 절반은 하반기에 들어올 텐데 왜 하필 지금 죽어가지고.. 나머지 5억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어떡하지..?’
흉부외과 과장의 속마음을 다 들은 정민은 갑자기 벙찐 얼굴을 하고는 여자를 돌아봤어. 그녀는 여전히 빙긋 웃고 있었고 정민은 다시 과장의 얼굴을 쳐다봤어. 정민이 보일 리 없는 과장은 여전히 나머지 5억을 받아낼 생각을 하느라 생각에 빠져있었지.
“과, 과장님!”
그때 한 전문의가 과장을 불렀어.
“어, 응, 왜?”
“빨리하셔야죠.”
“뭘?”
“사망선고.. 요.”
과장은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자세를 고쳐 잡고는 정민에게 다가갔어. 호흡과 맥박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지. 과장은 차분히 사망선고를 하려다 말고 갑자기 생뚱맞은 소리를 했어.
“야, 보호자 올 때까지 기다려. 지금 연락했으니까. 20분 내로 올 거야. 필두, 정소 둘은 보호자 들어오면 급박하게 심폐소생 다시 실시하고, 야, 인턴 너는 정문에 있다가 보호자 차 들어오면 콜 해. 어서들 움직여.”
과장은 보호자들에게 자신들이 정민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고 사망선고를 하며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 생각이었나 봐. 보통 일반적인 수술 중 사망의 경우 보호자들이 의사들을 원망하기도 하지.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상황도 아니라서 정민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나 부담은 전혀 없으니 그저, 심장마비로 실려온 정민의 소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쇼피알로 보여주고 이후 정민의 시신을 수습하며 최고의 예우를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다음 달 예정이었던 하반기 5억 기부금의 이행을 부드럽게 이어가려는 게 과장의 생각이었지. 정민의 마지막 기부금을 받기 위해서라도 이건 과장에게 정말 중요했어.
“말도 안 돼.”
“거 봐요. 사람 믿을 거 못돼요. 물론, 아닌 사람도 있지만요. 아무튼, 어서 결정하세요. 지상에 할 일이 남았어요? 아니면 바로 우주로 갈까요?”
정민은 혼란스러운 머리를 식히기도 전에 자꾸만 자신을 재촉하는 여자가 갑자기 얄미워지기 시작했어. 도대체 자신은 왜 갑자기 죽었고, 이 여자는 누구며, 죽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실감 나지 않는데 왜 자꾸 지구에 있을지 우주로 갈지를 선택하라는 것에 대한 이유가 궁금해졌던거야.
“잠깐, 잠깐. 저기, 그쪽, 그쪽 이름이 뭐예요? 제가 뭐라고 불러야 해요?”
정민은 더 이상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보기로 했어. 자신은 죽었다지만 현재 입고 있는 옷, 감정이 여전히 살아있을 때와 동일한 상황이라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지. 그런디 눈앞의 자신의 시신을 보니 부정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던 거야.
“수아라고 부르세요. 제 역할은 메신저 겸 가이드예요.”
“수아라.. 한국식 이름인데요?”
“저도 사람이었을 던 순간 중 제가 가장 마음에 들고 좋은 기억이 많았던 이름이라서요.”
“가장 마음에 들었다라면..?”
“아, 아직 영혼의 개념에 대해 생소하죠? 하긴, 우주로 가기 전까지는 가장 최근의 기억이 거의 전부라 그래요.”
수아는 정민의 이런 타들어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웃어댔어. 그 모습에 짜증이 확 날 법도 했지만 너무 티 없이 맑은 얼굴이라 정민도 화를 내기에 애매했지. 게다가 어쩌면 이제 이런 현실을 조금씩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
“지금 지구 상에 있는 사람들은 인류가 발생한 이후 최소 100번 이상은 환생을 했다고 보면 돼요.”
“……네 ………네?”
평소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사후 세계에 대해 관심도 많고 제법 믿던 정민 조차도 이런 얘기를 들으니 쉽게 와닿지 않았어.
“저는 거의 천 번은 다시 환생을 하면서 어느 정도 단계에 도달해 마지막 사후에 메신저가 되었구요. 정말 많이 환생한 사람은 오천 번도 넘게 태어난 사람도 있어요. 그런 분의 생 중에는 낙태되어 죽거나, 어린 시절 죽은 경험도 다수 포함되어 있죠.”
“그럼 저는.. 요?”
“정민 씨는 이번 죽음이 딱 375번째인데요?”
정민은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어. 하지만, 물리적으로 소름이 돋을 몸은 이제 없으니까,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던 거야.
“그럼, 기억은, 난 지금 죽었는데. 수아 씨와 함께 얘기하고 이런 기억은 요? 이런 기억이 남아있으면 다음 생에 생각나지 않을까요?”
“에이~ 영혼의 구조가 그렇게 단순하게 설정되었겠어요? 영혼이 우주로 가는 순간 모든 기억은 자고 (jargo: 영혼이 생전에 겪은 모든 경험을 저장하는 거대한 기억 창고)로 이동해요. 그리고 그 영혼은 적절한 평가를 받은 뒤 보통은 다시 태어나 새로운 수련의 기회를 얻게 돼요. 삶이 힘든 것도, 잘 풀리는 것도 모두 과거 자신의 영혼이 그 생 동안 쌓은 업적에 따라 달라져요. 여기서 포인트는 현생이 잘 풀린다고 전생을 잘 살았다는 뜻이 아니고, 현재 힘든 삶을 산다고 해서 전생에 죄를 지은 건 아니라는 거죠. 아참, 새롭게 태어나면 그 아이는 다시 모든 기억이 리셋된 상태라서 아무것도 몰라요. 지금 정민 씨처럼, 당장 죽어도 자신의 영혼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기억은 몰라요. 오직 우주로 가서 자고와 연결될 때 모든 걸 깨닫게 되는 거죠. 그리고 다시 태어나거나 아님, 적정 단계에 도달했다고 평가받으면 저와 같은 역할을 받거나 아님 정말 우주 밖으로 나가서 초월자가 되는 거죠.”
수아의 이야기를 한참 듣던 정민은 여전히 이해가 잘 안 가는 표정이었어. 영혼이 어쩌고, 환생을 하고, 모든 기억을 자고로 연결하고 등등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였지.
“그럼, 결국 우리가 살고 죽는 것도 영혼의 수련을 위한 건가..? 우주 바깥의 어떤 세상에 가기 위해서?”
“그런.. 셈이겠죠? 저도 아직 거기까진 안 가봐서 잘은 모르겠어요.”
“수아 씨는 어디까지 알죠..?”
“음. 자살하면 안 된다는 거요.”
“왜죠? 자살은 왜 안되죠?”
“그야, 질서에 어긋나는 행위를 해서죠. 영혼의 수양과 수련을 위해 자꾸 환생하는 건데 스스로 죽어버렸으니. 그건 가장 큰 잘못 중 하나랍니다. 사람이나 동물들이 왜 고통을 느끼는 줄 알아요? 최대한 오랫동안 껍데기를 벗지 말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야 영혼이 최대한 수련을 받고 다음 껍데기로 그 영혼을 옮길 수 있으니까요. 나름, 영혼의 수련 전략 같은 셈이죠.”
정민이는 표정이 멍해졌어. 자기가 지금 도통 무슨 얘기를 듣고 있는지, 저 말을 듣고 ‘아, 그렇군요. 참 유익한 정보네요. 소개팅 나가서 써먹어도 좋겠어요.’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던 거야.
“그럼, 그런 전 도대체 왜 죽은 거죠? 딱히 잘못한 것도 없고, 젊은 나이에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거 말곤 딱히 제 인생에 눈에 띄게 튀거나, 모가 나거나, 잘못을 한 건 없는데 말이죠.”
“그야 때가 되었으니까요.”
수아는 여전히 싱긋 웃고 있었어. 정민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지. 갑자기 이 모든 것이 그저 꿈이고 거짓말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둘이 얘기하는 동안 정민의 가족들이 응급실로 뛰어들어왔는데 갑작스러운 비보 때문인지 다들 사색이 되어있었지. 과장과 전문의들은 마치 방금 실려온 환자를 살려내기라도 할 듯이 심폐소생술을 다시 시작했어. 하지만 이미 한 시간 전에 사망한 정민이 다시 살아날리는 없었지. 정민은 가족들을 보자마자 다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 분명히 영혼 상태였지만 감정은 생생했어. 정민의 어머니와 누나는 정민의 시신을 어루만지며 다시 살려내라며 고함을 치고 있었고, 아버지는 비통한 얼굴로 정민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볼 뿐이었어. 그리고 정민의 남동생은 정민의 시신과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충격에 빠진 건지 혹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건지 그저 멍하니 슬픔에 빠져 오열하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서 있었어.
“정환이 저놈, 뭐 하는 거야. 내가 죽었는데 울거나, 소리치는 것도 아니고.. 내 저럴 줄 알았어. 피도 눈물도 없는 동생 같으니라고.”
“정민 씨, 사람들은 쇼크를 받으면 아무것도 못하기도 해요. 제가 보기엔 정민 씨는 가족들과 사이가 좋았나 본데요.”
“좋긴요.. 나쁜 건 아니지만, 저도 집 나와 산지 몇 년째였어요. 이렇게 갈 줄 누가 알았나요.”
“지구 상에서는 영혼이 되더라도 전생의 삶 때문에 괴로울 거예요. 그래서 자살하지 말라는 거예요. 아무튼, 아직 여기서 할 일이 남았어요? 아니면 얼른 우주로 가는 게 정민 씨의 영혼 정신 건강에 이로워요. 우주로 나간 뒤에 모든 걸 알게 되면 오히려 더 이상 괴로운 일은 없을 거예요. 현생의 껍데기에 집착하지 말아요.”
“아니 그래도 그렇죠. 전 죽은 지 한 시간밖에 안 됐고 저 몸은 여전히 제 몸이고.. 그러니까.. 저 딱 며칠만, 며칠만 다시 환생해서 마무리하고 오면 안 될까요?”
“안돼요. 전 그런 능력 없어요. 전 메신저라니까요. 더 이상 전 육신에 집착하지 마세요. 그냥 껍데기라니까요. 곤충의 사체를 생각해봐요. 인간의 몸도 그냥 죽으면 굳어 사그라드는 껍데기에 불과해요. 정민 씨의 진짜는 정민 씨 영혼이에요.”
정민은 여전히 복잡하고 괴로운 얼굴이었어. 당연한 일이지.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수천 억 원의 자산을 가진 젊은 부자가 갑작스럽게 죽었는데 이 모든 것을 쉽게 버리고 떠나기는 쉽지 않았거든.
“서정민, 2021년 7월 2일 오후 4시 28분, 사망.”
흉부외과 과장의 사망선고와 함께 울음을 참던 정민의 아버지도 눈물을 쏟아내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어. 어머니와 누나는 오열을 하며 침대에 드러누웠지.정환은 갑자기 어디론가 달려가서는 모습을 감춰버렸어. 이 모습을 바라보면서 정민은 당장이라도 달려가 자신이 여기에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몸이 도저히 움직이지 않았어. 영혼이 되고 나서 그토록 가볍고 자유롭던 몸이 마치 거대한 힘이 자신을 붙들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던 거야.
“수아 씨, 수아 씨!”
“네.”
비록 영혼의 몸이지만 정민은 이 모든 현재의 기억을 이렇게 쉽게 저버리고 떠날 순 없었어. 여러 가지 일로 가족들과의 살가운 교류가 끊어진 지 2년째였지만, 그래서인지 갑작스러운 옛 기억들에 밀물처럼 쏟아지자 정민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버린 거였지. 무엇보다 자신이 지구에 살던 동안 이룬 것들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