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은 가슴팍의 저릿한 통증이 사라질 때쯤 아까 넘어질 때 바닥을 찍었던 왼쪽 무릎을 어루만지며 내려다보았어.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달리다 보니 오버페이스가 되었는지 오른발을 내딛는 순간 몸이 기울며 넘어졌던 거야.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운동을 하다 말고 자신이 넘어진 러닝머신 주변으로 와서는 놀란 토끼눈을 하고 자신을 쳐다보는 게 민망하기도 하고 부담스러웠지.
“전 괜찮아요. 넘어지면서 무릎만 다친 거라 괜찮으니 다들 하시던 운동 하세요.”
정민은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애써 웃으며 얘기했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눈을 거두지 않았어.
‘아니, 괜찮다는데 왜 다들 자꾸 쳐다보지. 바벨 들다가 깔린 것도 아니고 뛰다가 넘어진 건데 무슨 구경이라도 난 마냥..’
그런데 사람들의 눈빛은 정민이 아니라 묘하게 다른 곳을 보고 있었지.
‘나, 아냐? 나 말고?’
고개를 휙 하고 돌려 뒤를 돌아보니 자신의 뒤로 흰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어떤 젊은 남자가 쓰러져 누워있었고 트레이너로 보이는 여자가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어. 심폐소생술을 하던 여자가 다급하게 앞에 있던 남자에게 119에 전화하라고 소리쳤지. 상황은 굉장히 급박했어. 정민이 넘어져서 무릎이 까진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약간 민망함을 느낀 정민을 어차피 여기서 자신이 할 일은 더 없어 보여서 슬쩍 그 장소를 빠져나왔어.
‘어휴, 나도 조심해야지. 아까 가슴 쪽이 따끔했는데 이따 병원에 가야겠다.’
오늘 운동은 이 정도만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한 정민은 샤워를 하러 남자 탈의실로 가고 있었지.
“정민 씨?”
난생처음 보는 여자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름을 불렀지만, 정민은 왠지 현실감이 들지 않아 그녀를 슬쩍 쳐다보고는 휙 하고 지나가버렸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여자였고 아마 자기도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자기 이름을 부른 게 맞는 것 같아서 걸음을 멈추고 다시 뒤를 돌아보았어.
‘아무도 없네? 헛것을 봤나?’
뒤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정민은 다시 고개를 돌렸는데 자신의 눈앞에 보라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여자가 서 있는 것이었어. 방금 정민의 이름을 부른 그 여자였어.
“아이 깜짝이야. 누구.. 세요?”
“정민 씨, 맞죠? 어디 보자. 서정민, 1990년 8월 27일 생. 이승 시간 2021년 7월 2일 리셋.”
정민은 갑자기 자신의 앞에 나타나 자신의 생년월일과 알 수 없는 말을 읊어대는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어.
“네? 무슨 말씀이세요? 누구시죠? 이상한 소리 할 거면 전 바빠서 이만.”
정민은 그 길로 그냥 가던 길을 가려고 했지. 그런데 그 여자는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정민의 길을 가로막고는 정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어.
‘이 여자.. 미친 여자인가? 뭐야, 혹시 내 돈을 노리는걸까? 그냥 빨리 탈의실로 뛰어 도망가야겠..’
정민은 이 여자를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하고는 뛰어서 들어가려 한 순간 그 여자가 정민의 오른팔을 꽉 잡더니 놓아주지 않았어. 젊은 남자도 온 힘을 다해서 뛰어가는 남자를 제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여자가 그것도 한 팔로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남자를 붙들고 있는 건 더 대단한 일이었지.
“뭐야, 왜 이래요? 뭘 원하는 거죠?”
“서정민 씨, 이제 결정하셔야 해요. 방금 지구 상의 껍데기를 벗었는데 바로 우주로 갈 건가요? 아니면 여기 이승에서 할 일이 남았나요?”
여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았어. 정민은 그녀가 분명 미쳤거나 혹은 조현병과 같은 뇌질환을 앓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무슨 말씀이세요. 누가 보냈어요? 제롬 투자증권 박대표? 아니면, 아, 세종 거래소 대표가 보낸 거예요? 아, 이 사람들.. 내가 가만히 안 둬.”
“정민 씨, 뒤를 돌아보세요.”
“네? 제가 왜요? 보아하니 어디 몸이 안 좋으신 거 아니면 누구 사주받고 오신 거 같은데. 전 드릴 돈 없고요. 제롬 쪽이나 세종에서 보낸 거라면 모두 제가 가만 안 있을 거고 곧 내용증명 도착할 테니 법적인 대응이나 준비하시라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어서요. 한 번만 뒤를 돌아봐요. 지금 정민 씨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닌데..”
정민은 순간 그녀의 눈을 봤어. 그녀의 두 동공은 정확히 정민을 바라보고 있었고 자신의 말에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표정을 보니 아주 이상한 사람은 아닐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네네, 한 번 보죠. 뒤에 뭐가 있죠?”
정민의 눈에는 쓰러져있는 남자 주위로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과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여자 그리고 119에 현장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남자가 보였어.
“어쩌라는 거죠? 아, 저기 쓰러지신 분. 네, 참 안됐는데요. 이미 사람들이 저 사람을 살리려고 도와주고 있고 제가, 뭐, 제가 딱히 할 건 없잖아요? 전, 바쁘니까 이제 그만..”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정민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그의 말을 끊었어 그래서 정민은 그녀가 좀 매너가 없다는 생각도 했지.
“정민 씨, 저 사람 정민 씨예요. 정민 씨 이제 이 세상 사람 아니라고요. 저 그거 말해주러 온 건데.”
“네??!!”
그녀가 아주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정민은 그녀가 이제 미쳤거나 맛이 간 사람이라고 믿게 되었어. 하긴 누구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저기요. 저 이제 씻으러 갈 거니까.”
그때 뒤쪽에서 트레이너와 짐의 관계자들이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고 이윽고, 정민의 귀를 의심하게 할 만한 소리가 들렸어.
“이 분, 서정민 씨 아냐? 정민 씨, 정민 씨. 이거 어떻게 된 거죠?”
“러닝머신에서 뛰다가 쓰러졌어요.”
“심, 심장마비 같아요.”
그러자 사람들은 더 웅성이기 시작했고 곧 119 구급대원들이 뛰어들어왔어. 정민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면서 자신의 뒤에 있는 여자를 다시 한번 더 돌아보았지. 여자는 여전히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웃고 있었고 정민은 곧 쓰러져있는 남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어. 남자는 구조대원에 의해 들것에 실렸고 정민은 그제야 그 남자의 얼굴을 똑똑히 쳐다보았지. 최근에 산 것 같은 나이키의 흰 트레이닝복과 그날 같이 산 30만 원도 넘는 에어맥스 운동화 그리고 그의 손목에 반짝이는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브라이틀링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