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억만장자의 죽음 8화

정민, 드디어 정환이와 만나다

by Rooney Kim


“저기, 무당님, 아니, 무당 선생님!”


생전에 점을 보기는커녕 길에서도 무당을 본 적이 없는 정민은 다빈의 오빠인 정도령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고 있었어. 그런데 정도령도 이미 정민이 자기네 신당으로 들어온 건 눈치채고 있었지. 다만, 모른척하고 있었을 뿐이야.

‘그래, 어차피 빨리 얘기하고 해야 할 일을 하자. 정환이한테 코인 비번도 알려줘야 하고 아빠한테 사기 친 놈도 잡아야 할 거 아냐’

단단히 마음먹은 정민은 신당에 앉아 잠자고 기도하고 있는 정도령의 뒤로 가서 섰어. 그리고 그의 어깨를 쥐고 흔들기 위해 손을 뻗었지.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정민에겐 그다지 많은 대안이 없었어. 정민도 처음 죽어본 거라 영혼 상태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여전히 어려웠거든. 그때였어.

‘펑-‘

‘으악! 앗 따가워!!’

정도령의 어깨에 손이 닿자마자 정민은 엄청난 소리와 함께 정도령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에너지에 밀려 신당을 지나 집 바깥으로 튕겨나가서는 골목 한쪽에 처박히고 말았어.

‘뭐야.. 죽어서도 이렇게 물리적인 힘에 온몸이 날아갈 수도 있는 거야..? 처음 죽어봤더니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잖아. 수아 씨한테 물어봐야 하나? 으윽.. 그나저나 정도령 정체가 뭐지? 진짜 무당이 맞긴 한 거야? 기공사야 뭐야..

정민은 깜짝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뒤 자리에서 일어났어. 그리고 문으로 다시 다가가려는데 옥빛 쇠문이 끼이이-하는 소리와 함께 살며시 열렸지. 정민도 긴장했어.

‘죽어서도 긴장이 되는구나. 이게 뭐야, 죽어도 산거나 다름없네.’

그리고 열린 쇠문 사이로 정도령의 얼굴이 반쯤 빼꼼히 나오더니 정민이의 동태를 살피는 거였어. 정민은 그런 정도령의 모습에 또 의아해졌지.

“저기, 혹시.. 정환이의 형 맞나요? 정민.. 님?”

정민은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는 정도령에 대해 두 가지 의문이 생겼어. 첫째, 자신을 어떻게 한 번에 알아봤는지에 대한 궁금증, 둘째, 자신의 정환이의 형이고, 자신에게 찾아갈 건 예상했으면서 왜 이렇게 엄청난 물리력으로 튕겨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었지.

“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긴장해서 제가 모시는 대왕 신과 산신령이 모두 제 몸을 감싸고 저를 보호하고 있었어요. 정민님이 오니 제가 모시는 신들의 항마력 수치가 굉장히 올라갔나 봐요. 신들도 지금은 좀 미안해하며 눈치를 보고 있네요.. 하하.. 들, 들어오시죠.”

정민은 정환이와 대화하던 호탕한 모습의 정도령과는 전혀 딴판의 사람이 되어있는 정도령이 수상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지만, 뭔가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과 어쨌든 자기가 올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매개인이라는 점에서 그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다시 그의 신당으로 들어섰어.

“보시다시피.. 저기 천장에.. 제가 모시는 신들이 정민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깐 정말 제 본의, 제 신들의 본의도 아니었으니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그러면서 정도령이 큰 절을 하려길래 정민이 그의 어깨를 붙잡고 막았어.

“아니, 아까 한 번 사과했음 됐죠. 괜찮아요. 저도 처음 죽어봐서 아직 이 세계가 익숙지 않아서요. 제가 여기 온건..”

“대왕 도깨비님 너무 영광입니다!”

정민은 순간 사방에서 들려오는 엄청난 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어. 그건 뭐랄까.. 마치, 사방에 스피커를 설치한 후 음량을 최대치로 올려놓은 홈씨어터를 틀어놓은 것 같았지.

‘대왕 도깨비라니 도대체 뭔 소리들이야..’

알 수 없는 그들의 행동은 물론, 가뜩이나 적응이 안되는 사후 세계에 정민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지. 그때 정도령이 한 얘기가 떠올랐고 천장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신들의 모습을 찾기 위해 천장의 구석구석을 살폈어. 하지만 천장엔 온통 까만 어둠 밖엔 보이지 않았어.

“저기 무당.. 님, 아니, 선생님? 여기에 도대체 뭐가 있다는 거죠?”

“… 제가 모시는 신들이요. 노여움을 끼쳐드렸다면 갑절로 사죄드리겠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어..?”

그때 까만 어둠 속에서 새 파랄 정도로 하얀 흰자위를 가진 왕구슬 같은 눈동자들이 감았던 눈을 뜬 것 마냥 번쩍이기 시작했어. 형형색색의 의복을 입은 듯 슬며시 보이는 어깨선의 색감이 마치, 탱화에 나올법한 모습이었지. 얼핏 보면, 절 입구의 사대천왕처럼 보이기도 했어. 하지만, 정도령이 모시는 모든 신들이 그런 모습은 아니었어. 새하얀 도포를 입고 인자한 눈빛으로 지긋이 내려다보는 눈도 보였기 때문이야. 하지만, 정민은 어차피 자신도 혼령이니 두려울 것이 없었기에 애써 못 본 척을 하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지.

“사죄는 됐고요. 대신 제 부탁이나 좀 들어주시죠.”

“네..? 아, 네네, 뭐든 말씀만 하시지요. 대왕 도깨비님.”

정민은 정도령이 계속해서 영문도 모르는 호칭을 불러대자. 그 이유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어.

“아니, 도대체 왜 계속 그렇게 부르는 거죠? 전 서정민이구요. 지난주에 심장마비로 죽었는데 아직 할 일이 남아서 저승문, 아니, 지구 밖으로 안 나갔구요. 그 일, 제가 꼭 해결하고 가야 하는 일 좀 도와달라고 찾아온 거예요.”

그러자 정도령은 자꾸만 정민의 얼굴과 정민의 뒤편을 번갈아 바라보며 우물쭈물 댈 뿐 빨리 대답은 하지 않았지.

“저기요. 저 바쁘다구요!”

이에 정민이 버럭하고 소리를 질렀고 정도령은 그제야 대답을 했어.

“정.. 정민님이 대왕 도깨비이시고, 대왕 도깨비가 정민님이세요. 진작에 몰라봬서.. 죄송할 뿐입니다..”

‘아니.. 자꾸 도대체 뭔 개똥 같은 소리야..? 내가 대왕 도깨비라니?’

정민이 이런 생각에 빠져있는 순간 천장 위 허공에서 엄청난 크기의 어떤 강한 음성이 들려왔어.

“정도령, 사설은 그만 늘어놓고 빨리 정민님이 원하는 걸 들어줘라. 알겠느냐?”

그 소리의 크기는 태풍이 몰아칠 때 들었던 천둥소리와 비슷했고, 포병 출신이었던 정민이 자주포로 실사격을 할 당시 들었던 엄청난 포탄 사격 소리와 같았어. 이후 정도령의 눈빛이 안정적으로 돌아왔어. 그리고 더 이상 이상한 소리도, 행동도 취하지 않았지. 꿈속을 헤매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린듯한 모습이었어. 정민도 그 소리에 놀랐지만, 자신을 옹호하는 소리였기에 그냥 모른척했어.

“어.. 정민.. 님, 어서 오시죠. 정환이 때문에 온 거죠?”

정도령의 정상적인 눈빛을 본 정민은 이제야 말이 통하겠다 싶었고 그동안 있었던 일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얘기했어. 물론, 은행계좌와 코인이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는 말하지 않았지. 참고로 정민의 재산은 조금 더 늘어나 있었어.

“이 정도 일은 제가 충분히 도와드릴 수 있죠. 정환이가 오늘 잠만 제대로 자면 말이죠.”


‘까톡’

“정환아, 오빠 카톡 왔어!”

“어.. 뭐라셔??”

“너, 요즘 밤에 안 자고 뭐해? 너가 잠을 제 때 안 자서 지금 형이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말을 제대로 못해주고 있는 거래.”

“형이? 할 말..?”

정환은 형이 꼭 전하고 싶다는 말이 뭔지 엄청 궁금해졌어. 어린 시절 같이 뛰어놀던 추억으로 버티던 정환은 이번이야 말로 형의 진심도 듣고 자신도 형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지. 정환은 학교를 파한 뒤 평소 자주 가던 책방과 레코드 가게에 들리지도 않고 바로 방으로 가서 침대에 누웠어. 평소보다 일찍 집에 온 정환을 본 엄마가 거실에서 그를 불렀지만, 정환은 역시나 답하지 않았어. 엄마 역시 이런 일은 자주 있었다는 듯 더 이상 정환이를 부르지 않았지. 며칠을 밤을 지새우고 밤잠을 자지 않았던 때문일까 정환은 거짓말처럼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고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어. 그리고 얼마지나지않아 그의 앞으로 정환이 그토록 기다렸던 형이 나타나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어.

“… 혀.. 형..? 형 맞아..?”

그러자 정민은 인자하게 한 번 씩 웃어 보이며 다가오더니 갑자기 정환이에게 꿀밤을 먹이는 게 아니겠어.

“아, 아얏, 왜 그래 형? 형 할 말이 있다며..”

“너, 이제 엄마나 아빠, 누나가 밖에서 부르면 1초 만에 튀어 나가라, 알겠냐?”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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