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억만장자의 죽음 22화

고맙다 친구야

by Rooney Kim


“이제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네요.”


정민은 정도령의 신당 구석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어.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영혼이 되었지만 꿈을 통해 구천과 이승을 오간 덕분에 동생 정환이의 오랜 마음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왔고 엄마의 깊은 고민도 알게 되었으며 전세 사기범을 잡으면서 누나의 전세 사기금도 돌려받은 데다 덕분에 전세 사기를 당했던 많은 사람들의 문제도 해결했고, 또, 그 덕분에 오래전 아빠의 투자금을 사기 쳐 가족의 평화를 깨트린 사기꾼도 잡고 투자금도 돌려받았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허탈한 기분은 아직 완전하게 해소되지 않았던 거야.

“정민님, 그럼 이제 정말 돌아가시는 겁니까?”

“돌아가다니요? 아, 저기 지구 밖으로요?”

“네..”

“어렸을 땐 돌아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막상 이렇게 되어 보니 돌아간다는 말이 맞는 것 같긴 해요. 점점 마음이 허해지는 게 반이라면, 조금 편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도 있거든요. 마치,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기분말이예요.”

분명, 가족을 두고 떠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고 3천억의 재산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가는 건 아쉬웠지만, 가슴 한쪽 구석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모험심과 비슷한 두근대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험심 때문에 20대라는 젊은 나이에, 가족과 엄청난 재산을 두고 떠나는 건 여전히 아쉽고 아까웠어. 곧, 정민은 마음을 먹었다는듯한 표정을 하고는 고개를 돌려 정도령을 바라보았어.

“정도령님.”

“네?”

“그동안 너무 수고 많았어요. 사기꾼에게 기가 막힌 복수 전략을 짜고 실행해주신 것도 너무 고맙구요.”

“아, 그거야. 전 항상 말했듯이 대왕 도깨비님을 돕는 게 너무 영광..”

“네, 그건 알겠구요. 그래서 이제 보답을 하려구요.”

“대왕.. 아니, 정민님, 아닙니다. 전 이걸로 보답받으면 제 신께 혼날지도 몰라요. 그냥 도우라고 했고 저도 그런 마음으로..”

그러자 정민은 정도령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어.

“그럼, 대왕 도깨비한테 혼나실래요?”

“아앗, 그.. 그건 더 무섭지만..”

“정도령님께 사례하는 건 당연하고 제 가족들과 저희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사례할 계획을 이미 세웠습니다. 정환이랑 잘 얘기해서 적절하게 전달해주세요.”

“네네, 알겠습니다.”

정민은 잠깐 생각에 잠긴 듯 바닥을 골똘히 쳐다보다 다시 물었어.

“참, 코인 지갑은 하나 있으시죠?”


“철민아, 동수야 고맙다.”

정진은 전세 사기꾼에게 대복수를 한 며칠 뒤 다시 친구들을 만났어. 전날 밤 그들의 도움에 대해 어떻게 보답할지 막연해 하던 차에 정도령으로부터 전화가 왔었고 곧 정환이를 통해 구체적인 액수도 듣게 되었어.

“철민아, 난 니가 날 아껴주는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생각하는지 몰랐어. 그동안 몰랐던 건 너무 미안하고 또 날 이렇게 도와줘서 고맙다.”

정진이 담담하게 말을 꺼내자 철민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어.

“그리고 동수야. 사실, 우린 학교 다닐 때도 그렇지 친하지 않았는데 니가 선뜻 나와줘서 너무 고마웠어.”

“나야 뭐.. 철민이가 부탁하기도 했고.. 또, 얘기 들어보니 정민이.. 가 딱하기도 하고 거기에 너네 딸, 아, 정선이 사정도 괜히 열 받고, 부동산 업자로서 참을 수 없었지.”

“이유가 어떻든 너도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준 거니 너무 고마워. 그래서 내가 너네 둘에게 보답을 하려고 해.”

그러자 철민이 강하게 반대했어.

“야, 내가 그런 거 받자고 널 도운 줄 알아? 됐어, 그냥 오늘 점심이나 맛있는 거 사.”

하지만 철민이와 다르게 동수는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지. 그리고 정진이 그걸 모를 리 없었어.

“철민아, 그럼 내가 동수만 챙기랴? 그런데 너 안 준다고 동수에게 안 주면, 너도 그렇지만 어쩌면 나를 도울 이유가 너만큼은 없었던 동수가 우리 돕는다고 자기 부동산 생업을 거의 2주일이나 넘게 못했는데 내가 그 정도는 보답해야 할 거 아냐? 그런데 그래서 보답했다 쳐, 넌 거의 한 달을, 아니 내가 사기당했을 때부터 오랫동안 사기꾼 잡는데 도와줬는데 내가 보답 안 하면 나의 마음의 빚은 어떡할 건데?”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는 말이었어. 자기 마음 편하자고 보답을 안 받으면 은근히 기대한 동수도 받기가 애매하고 보답을 못하는 정진의 마음도 두고두고 불편할게 뻔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그냥 받아줘. 나도 다 상황이 되니까 그러는 거야.”

그러자 철민이는 마지못해 대답했어.

“… 그래.”

“먼저, 동수. 요즘 부동산 시장이 핫해서 1 급지는 아파트 한 건하면 무조건 천만 원 대더라 그래서 계산을 해봤지. 2주 정도를 하면 얼마나 벌지.”

“그.. 그렇긴 한데. 그래도 뭐 한 달에 수천만 원을 벌긴 힘들어. 잘해야 2~3천만 원이고 아님 천만 원 아래야. 워낙 경쟁이 치열해서.”

“그래서 사기꾼 놈에게 받아낸 것 중 남은 1억 4천에 1억 6천만 원 더해서 3억, 3억 줄게.”

정진의 말을 들은 동수는 두 눈이 똥그래져서는 정진과 철민을 번갈아보며 놀란 표정을 감출 수 없었어. 심지어 입도 크게 벌렸지.

“뭐.. 뭐?! 진짜야? 정말이야? 아니, 너무 과하게.. 과하긴한데.. 아, 정말?”

“응, 그냥 받아. 그리고 다음은 철민이.”

한사코 보답을 받지 않겠다고 거부했던 철민이었지만 동수에게 말한 금액을 듣고는 자신에게는 얼마나 줄지 도저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던 나머지 침을 꼴깍하고 삼키고는 정진의 입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어.

“청류동에 집 50채 있잖아. 작전 짜고 하느라 니 이름으로 다 되어있잖아? 그거 그냥 다 너 가져.”

그러자 동수는 아까보다 더 깜짝 놀라서는 들고 있던 아메리카노 컵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고 철민 역시 깜짝 놀랐다가 한사코 거절하며 그럴 수는 없다며 응수했어.

“야, 그건 너무 많아. 말도 안 돼.”

“아니, 말이 돼. 니가 그동안 나 도와주고 한 것만 해도 충분했고 이미 넘쳤어.”

“싫어, 이건 너무 많아. 난 그냥..”

“정민이가 그러래. 정민이가 주는 거라고..”

서로 주겠다 받지 않는다며 옥신각신 거리던 중 정진의 한 마디에 분위기는 다시 반전되어 조용, 아니 고요해졌어.

“정민이가.. 너도 알잖아. 정민이가 니 꿈에도 나왔다며? 정민이의 의견이야, 이 모든 건. 그리고 나도 동의했고.”

“그래도 청류동 50채면.. 거긴 이제 정말 얼마 안가서 100억 도 넘어갈 텐데..”

“넌 그거 이상 받아도 돼.”

동수는 한없이 부러운 눈으로 철민을 바라봤고 철민은 여전히 고민에 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어. 정진은 친구들을 데리고 서울에서 가장 비싼 호텔 레스토랑으로 가 점심을 대접했고 셋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세상사 겪으며 살아온 이야기로 몇 시간을 떠들며 긴 시간 동안 회포를 풀었어. 동수는 대낮부터 와인을 엄청 마셔대다 곯아떨어져서 오후 늦게 대리를 불러 태워 보냈고 정진과 철민이 남아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어.

“철민아, 우리도 이제 인생의 삼분의 이는 살았잖아?”

“그렇지.”

“나도 이런 일 저런 일 겪어보니까 인생 별거 없어. 가족끼리 좋은 사람끼리, 좋은 거 나누며 사는 게 제일 인 것 같아.”

“그건 나도 동의해. 그런데 청류동 50채는 솔직히 너무 과해. 아직도 이걸 받는 게 맞나 싶어.”

그때였어. 정민의 코인 지갑에 알림이 떴어. 이번 전세 사기꾼 작전을 할 때 자금 이동 때문에 만들었던 계좌였지.

“뭐.. 뭐야, 야, 서정진, 너 뭘 한 거야?!”

그러자 정진이 웃으며 밖으로 뛰어나갔고 철민이 정진을 잡으러 또 따라 나갔어. 마치, 고등학교 시절 반에서 장난치고 놀던 그 모습 그대로였지.

“나도 알아. 요즘 종부세 (종합부동산세) 엄청 비싸다며 너 그 정도 현금 없을 거 아냐. 있다 해도 한 번에 1억 4~5천을 어떻게 세금으로 내냐. 정민이가 그런 것도 잘 알더라고 어차피 50채는 선물인데 선물을 받으려고 1억 5천을 쓰면 그게 선물이냐?”


“아니, 그렇다고 10억을 또 주는 게 말이 되냐? 야, 나 너무 부담스러워.”


“정민이가 그러더라 한 10년 치 세금을 주고 싶은데 거기가 앞으로 더 오를 거라 몇 년은 그걸로 내고 나머지는 이제 철민 아저씨가 알아서 할 거라고.”

정민은 호텔 근처 높은 나무에 걸터앉아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곧 일어나서 큰 가지를 발판으로 뛰어오르더니 하늘을 날아갔어.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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