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새x, 무슨 꿍꿍이야. 너네들 다 한 통속이다 이거지? 내가 이대로 죽을 것 같아! 내 돈이야, 다 내놔!”
재철은 정진의 멱살을 잡고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채 광분해 날뛰고 있었어. 그때 정진이 녀석의 두 손목을 꽉쥐어 멱살을 떼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어갔지.
“피해자 여러분, 방금 각자 사기당했던 전세금을 돌려받으셨을 겁니다. 그리고 추가로 입금된 5백만 원은 그동안 여러분이 겪은 마음고생과 고통에 대한 소소한 대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내 돈, 내 돈으로 무슨 생색을 내는 거야! 야.. 으아아!”
괴로운 건 은수도 마찬가지였어. 사실, 은수는 전세 사기는커녕 재철의 비즈니스에 참여한 게 처음이라 친구를 잘못 둔 탓에 5억을 날린 셈이었거든.
“나.. 난 전세 사기랑은 관련 없어요. 이번에 투자한 게 처음이라고! 내 돈, 내 돈이라도 돌려줘요. 난 억울해..!”
재철과 은수는 저마다 자기 생각만 하며 소리를 질러댔어.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얘기를 듣지 않았지. 부동산 천장 한쪽에서 이를 지켜보던 정민이 묘수를 냈어. 은수의 5억 중 4억만 돌려주자는 거였지. 정도령이 이를 캐치하고는 당장 정진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어.
“은수 씨?”
정진이 나지막하게 은수를 불렀어.
“네? 네네..”
“그럼 4억을 돌려주죠. 1억은 친구를 잘못 둔 탓이라는 걸 알고 교육비로 썼다고 생각해요.”
“네? 정말요? 아니, 그래도 전 억울하니까 그냥 5억을 전부..”
“1억에 집착하다 4억도 잃을래요?”
은수는 그제야 4억이라도 받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자 재철이 은수에게 달려들었지.
“야, 왜 너만 돌려받냐. 같이 투자한 거니까 나눠. 내가 90% 했으니까 3억 5천은 나한테 보내라.”
하지만 눈이 돈 은수도 가만히 있지 않았지.
“꺼져 이 새x야. 내가 니 말 듣고 투자했다가 1억을 날렸어.”
그러자 재철이 은수 멱살을 잡고는 입에 담기도 어려운 험한 욕설을 해댔어. 그때 은수의 휴대폰으로 입금 완료 메시지가 왔고 재철이 그걸 듣고는 은수의 휴대폰을 뺐으려고 했지. 당연히 은수는 강하게 저항했고 둘은 한 동안 부동산 안에서 19명이 보는 앞에서 몹시 흉하게 몸싸움을 했어. 그리고 철민이 조용히 정진에게 다가와서는 귓속말로 무언가를 전했고 정진의 눈은 동그랗게 커지며 깜짝 놀라고 말았어.
“그게 정말이야?”
“맞아. 저 자식이야. 박재철이 경식이가 투자했던 10억을 들고 튄 그 자식이라고!”
“형, 형 맞아? 언제 왔어? 부동산에서는 잘 해결되었어?”
늦은 주말 오후 깜빡 잠이 들었던 정환의 꿈에 정민이 갑자기 나타나자 정환이는 반가운 마음과 놀라운 마음에 정민을 반겼어.
“응. 거의 다 해결되었지. 일단, 누나는 전세금을 모두 돌려받았어. 좀 이따 일어나면 엄마에게 전해.”
“정말? 와.. 알겠어.”
“그리고 이제 니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어.”
“마지막..이라고? 형, 어디가? 형, 이제 곧 돌아올 거잖아? 사람들이 그러던데 형 잘하면 깨어..”
그러자 정민은 한없이 냉정한 표정을 한 채 정환이의 말을 끊고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어.
“정환아, 받아들여. 물론, 형도 힘들었어. 이 젊은 나이에, 우리 가족과 수 천억 원을 남겨두고 떠나는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엄청 컸어.”
“형..”
“잘 들어. 내가 남긴 돈으로 니가 해야 할 마지막 중요한 일들에 대해 알려줄게. 물론, 니 몫도 있어. 엄청난 몫이지. 하하.”
“박재철. 니가 그놈이었구나. 내가 경식이에게 투자한 3억을 홀랑 들고 튄 쳐 죽일 사기꾼 새끼.”
전세금을 되찾은 기쁨에 들떠 있던 부동산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그라들고 모두 정진과 재철을 바라보았어. 재철은 그동안 벌인 자신의 범행이 모조리 발각되어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 그런데 일순간에 표정을 바꾸고는 대뜸 이렇게 말했어.
“애비나 딸이나 사기를 잘 당하는 건 똑같네. 낄낄낄.”
죄송하다며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소름 끼치는 얼굴로 주객전도하는 태도를 보니 정진의 가슴은 다시금 분노로 끓어올라 녀석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댔어.
“너 때문에, 이 자식아. 너 때문에 우리 가족이..”
“아니지, 사기는 내가 쳤지만 그 돈으로 대박을 노린 건 너의 아둔한 투자 지식과 단번에 대박을 노리는 투기 욕심 때문이지. 안 그래?”
순간, 부동산이 술렁였어. 범죄자가 저렇게 뻔뻔할 수 있나에 대한 오싹함도 있었지만, 정진이 투기 욕심을 부린 것 또한 사실이긴 했거든. 결국, 얼굴에 강력한 철판이라도 깐 듯한 사기꾼 녀석이 또 대중을 호도하듯 본질을 흐리고 있었던 거야.
“이 자식, 너 가만히 안 둘 거야.”
“그럼 어쩔 건데? 어차피 너도 지금 나한테 부동산 사기 쳤잖아. 그럼 같이 깜빵 갈래? 나야 뭐, 익숙하고 편해서 좋아. 낄낄낄.”
사기꾼 재철이 보란 듯이 큰 소리로 웃으며 자신이 마치 다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듯이 나대자 다시 변호사 부부가 나섰어.
“박재철 씨,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나 본데요. 물론, 이분들이 당신의 재산을 상대로 사기를 친 건 사실이지만 그 모든 돈을 사기당한 사람들에게 돌려주었고 본인들 또한 피해자였으며 이를 통해 사적인 욕심을 내려고 한 정황이 없는 점만 보더라도 상당 부분 정상 참작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저희가 광적으로 도울 거거든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속이 결정되더라도 저희가 어떻게든 보석으로 금방 석방되도록 조치를 할 수 도 있고요. 반면, 당신은 그동안의 모든 사기 행각이 발각되면 적어도 20년은 감방에서 썩어야겠지요. 그럼 50대 중후 반에 땡전 한 푼 없이 사회로 나올 텐데 그게 더 끔찍하지 않나요?”
변호사 부부의 달변에 재철은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자 갑자기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사방의 눈치를 살피며 듣고만 있었어.
“에이.. 씨.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내 돈은?”
“하하,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시나 본데. 지금 남아있는 재산이 있을 거 아녜요. 그걸 기반으로 이제 사기 그만치고 떳떳하게 사시라고요. 어디 가서 또 사기 칠 생각하지 말고. 그리고 아저씨.”
변호사 부부의 남편이 재철에게 말을 끝내자마자 은수에게 다가갔어.
“…네?”
“들어보니 아저씨는 사기랑은 관련 없던데요. 맞나요?”
“네? 아, 네네, 맞아요. 전 이 새끼가 괜히 투자하라고 부추겨서..”
그러자 재철이 은수를 무섭게 노려보았어.
“저.. 전 그냥 5억을 투자한 게 다예요. 그것 때문에 제 1억을..”
“전 그건 모르겠고요. 그럼 아저씨는 아무런 혐의가 없으니 이제 좋은 친구만 만나요. 4억을 돌려받은 것도 저분들이 정말 선한 사람들이기에 가능했던 거니까 감사하게 생각하세요.”
“네네.”
은수는 혹시라도 재철에게 돈을 뜯길까 봐 안절부절못하더니 말이 끝나자마자 은수는 부동산을 뛰쳐나갔어. 그러자 재철도 주변의 눈치를 보며 뛰쳐나가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 이를 눈치챈 정진이 재철을 불렀어.
“어딜 가려고? 친구 따라 가게?”
재철은 아무런 대꾸 없이 씁쓸한 미소를 띠고 있었어. 뒤를 돌아보니 스무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어차피 이제 다 끝난 거잖아. 쟤네들 돈도 돌려받았고. 우린 피차 서로 사기 친 거 쌤쌤으로 퉁쳤고..”
“퉁치긴 누가 퉁쳐!”
전세사기 15인 중에서 대뜸 큰 소리가 터져 나왔어.
“거봐, 너 아직 안 갚은 게 있어.”
그러자 재철은 이젠 도리어 억울해 죽을 지경이라는 얼굴로 정진을 쳐다봤어.
“뭐, 뭘 더 원하는데. 내 돈도 다 줬잖아! 돈으로 사기 친 거 돈으로 갚았으면 된 거지. 이자라도 더 줘? 그지 새끼야?”
정진은 이젠 더 들을 것도 없다는 얼굴로 한심한 듯이 재철을 쳐다보았어.
“사과는 해야 할 거 아냐. 너 때문에 다친 저분들의 마음, 충격, 공포, 좌절, 그 악몽에 대한 사과는 니 뚫린 입으로 해야 할 거 아냐!”
하지만 재철은 그게 무슨 말인지,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듯했어. 오히려 비아냥거리기까지 했지.
“내가? 난 내 돈으로 이미 사기 친 거 다 갚고, 각자 500만 원씩도 다 나눠가졌더니만. 그럼 된 거지. 이걸로 다들 한몫해 먹으려고 그러나. 나참.”
“너한테 사기 친 돈 다 갚고 내 돈 포함 경식이한테 사기 친 돈 빼면 딱 1억 4천 남거든. 네가 저분들에게 큰절로 사죄하면 내가 그건 줄게.”
정진의 한 마디에 재철이 눈알이 굴러가며 눈빛이 흔들렸어.
“1억 4천으로 누구 입에 풀칠하냐.”
“그럼 말든가. 잘 가.”
정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씩씩대며 걸어 나가던 재철이 갑자기 돌아서 다시 걸어오더니 전세 사기를 당한 15인에 피해자를 향해 큰절을 하며 외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