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을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났고 드디어 그를 만나기로 한 날이 되었다. 이번에는 내가 살고 있는 강남으로 직접 오겠단다. 딱히 동네에서 밥을 먹지 않아 아는 맛집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자기가 다 준비했으니 그저 이 두 번째 만남을 즐겨달란다.
이럴 때면 심심하고 무심했던 내 삶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주변의 친구들 그리고 만났던 사람들마다 아주 모난 사람은 없었다. 인복이 있나 보다. 삶은 후회와 실수로 가득하지만 그래도 반성하는 사람에겐 또 좋은 날로 지난 아픔과 상처를 보상해 주는 것 같다. 누구나 그렇지 않나 삶 속에서 후회하는 것들은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기에 가끔은 타인의 후회와 상처로부터 위로를 받기도 한다. 상대방의 상처가 쌤통이라거나 고소하다거나 상대적으로 나은 현실로 애써 자기 위로를 하자는 게 아니다. 그저 이 험한 세상 속 거친 모험을 하는 영혼이 나 하나는 아니구나 이런 바보 같은 사소한 이벤트로 괴로워하는 미련한 인간이 나 말고도 더 있구나 하는 생각에 동병상련의 공감대와 동지가 생겼다는 반가움의 위로다.
후회는 영혼을 잠식해 정신을 갉아먹고 산다. 종종 후회는 미련이라는 친구와 함께 기거하는데 이땐 미련이라는 녀석이 더 강해지면 사람들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선을 넘기 시작한다. 미련이 있기에 하지 않아도 될 연락도 하고 그렇게 멍청한 시간이 쌓이다 보면 집착이라는 베스트 프렌드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아주 막장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제정신이 아닌 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마치, 오늘도 내게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얼굴 만이라도 보길 갈구하는 그 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젠 아무래도 좋다. 연락이 오든 우연히 마주치든 그저 받아들여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정확히 괌을 다녀온 시점부터였던 것 같다. 승희는 마법처럼 십 년 만에 날 다시 찾았고 난 오랜만에 나 자신이 진흙탕 속에서 빛나는 보석처럼 느껴졌다. 보석의 값어치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나 스스로가 날 보석처럼 여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신기한 게 나 자신을 다른 관점에서 보기 시작하니 주변 사람들에 대한 나의 태도도 바뀌었다. 분명 저들도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었을 테고 나처럼 우리처럼 치열한 현대를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동시대의 영혼들이 아닌가. 승희가 남긴 다이어리의 한 구절이 여전히 내 가슴 한쪽을 아리게 때린다. 그런데 아프지 않다. 오히려 마사지처럼 너무 시원하다. 감성 마사지라고 해야 할까 마치 뇌가 정화되는 기분이 들 정도다. 승희가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에 썼던 글이라는 점이 여전히 놀랍다.
‘타인의 존재는 너무 중요하지만 그들의 시각은 대부분 허상에 가까워. 그들의 말에 물들지 말고 행동에서 힌트를 얻어. 단, 힌트 역시 마법을 푸는 한 조각의 단서에 불과해. 힌트에 목맬 필요가 없다는 말이야.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네 존재에 대한 인식이야. 삶의 방향에 대한 주체가 너인지 타인인지 매번, 시시각각 확인해야 해. 사람들은 타인에게 너무 쉽게 물들고 너무 쉽게 방향키를 내어주거든.’
머릿속의 큰 방망이가 큰 종이라도 때린 듯 아찔해진 나는 이후 이전과는 조금 다른 마음 가짐으로 그 사람과의 두 번째 만남을 위해 약속 장소로 나갔다. 처음 보는 식당이었다. 아주 고급스럽지도 그렇다고 맛집이랍시고 사람들로 가득 차 시끌벅적하거나 바쁜 일정을 핑계로 지저분한 식당의 위생을 인기로 커버하는 그런 위선적인 곳도 아니어서 좋았다. 이런 적당한 곳을 찾는 센스는 그 사람의 타고난 능력인지 여러 번의 연애를 거쳐 통달한 지식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덕분에 난 오늘 이 시간을 한치의 불편함도 없이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괌은 어떠셨어요? 저도 정말 가보고 싶은데요.”
순간 그 사람의 질문에 ‘내가 괌에 다녀온걸 어떻게 알았지?’ 싶었다가 아까 만났을 때 해외에 다녀왔다는 인사를 한 게 기억이 났다. 하지만 내가 괌이라고 했었던가.. 아니었나. 뭐 아무렴 어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을 했었나보다.
“여전히 좋더라고요. 너무 속이 시원한 여행이었어요. 덕분에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 너무너무 좋은 기억들도 다시 찾고..”
식사를 마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한 달이나 기다려준 그 사람에게 빚을 진 마음이 들어 저녁은 내가 사겠다고 했다. 그 사람은 자신이 먹고 싶은 곳을 정한 거라 굳이 자기가 내겠다고 했지만 나 역시 마음의 빚을 지고는 못 사는 사람이라 밥만큼 좋은 커피를 사달라고 했다. 어차피 그는 물론이고 나도 이젠 술을 즐기지도 않고 영화를 보거나 외곽으로 나가기엔 시간이 애매했다. 그렇게 선선한 초여름의 밤이 깊어갔다. 서로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것들 투성이라 우리 대화의 주제는 사회생활을 하며 겪는 고충과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서로 공유하는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길어지며 종종 자신의 정서 안정에 도움을 주는 각자의 유치한 취미 생활에 대해서 얘기할 땐 서로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아주 오랜만에 타오른 순수의 열정을 나누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이야기는 더 잘 통했다. 이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좋은 사람이라는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역시나 지나친 걱정이 습관인 난, 나에게도 이렇게 좋은 사람이라면 타인에게도 오죽할까 하는 어리석은 의심병이 평화로운 가슴 들판 한 곳을 뚫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참, 사람의 마음은 언제쯤 온전한 평화를 이룰까. 또 어떻게 해야 그 평화를 오래도록 유지할까. ‘평화=힘’이라는데 내 힘이 아직 삐죽빼죽 솟은 사회의 가시밭 길을 아무런 상처 없이 지나기엔 많이 부족한 걸까.
헤어질 무렵, 다음 애프터 신청은 내가 선수를 쳤다. 그 사람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 쉽사리 내려오지 않는 걸 보면 참 잘했다 싶었다. 그 사람에게 아직 이렇다 할 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대화의 주제와 깊이 그리고 이를 함께 풀어내는 속도가 편안했던 터라 당분간은 이 정도의 선에도 두어 번 더 만나보면 우리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사람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혹시 이번에는 주중 저녁은 어때요? 퇴근하고 제가 바로 그리로 가겠습니다. 을지로에 제가 잘 아는 맛집이 있거든요. 거기가 저랑 친한 형이 하는 레스토랑인데 제가 특별히..’
그렇게 우리의 세 번째 약속이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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