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뭐길래

돈에 대한 각자의 사정

by Rooney Kim


오랜만에 고향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러 지방에 다녀왔다.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로 인해 스스로 삶에 제한을 두다 보니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을 못 본 지 어느새 삼 년이나 되었다는 걸 새삼 실감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지만 사회생활을 한지 이제 십오 년도 더 넘은 고등학교 동창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의사, 변호사부터 회계사, 세무사는 물론 대기업 직원, 경찰관, 선생님 등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사업을 하는 친구들도 많은데 이렇게 모두 잘 풀린 친구들을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오랜 친구가 좋다는 게 뭔가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였던 녀석들과 만나면 각자의 사회적 지위, 경제적 능력과 관계없이 그저 그 시절의 녀석들을 떠올리며 서로 놀리고 웃고 떠들며 그때로 돌아간다. 그렇게 허물없이 예전처럼 수다를 떨다 보면 새삼 나 역시 사회에서 묻은 때와 허울로 가득한 가식덩어리는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들의 웃음 너머에도 각자의 삶의 시험에 따른 혹독한 인내가 엿보인다. 게다가 사람의 생이라는 게 참 얄궂게도 힘든 일이 있는 녀석에게 조금 더 많은 짐을 짊어주는 것 같은 경향이 있지않나. 물론, 그 역시 시간이 지나면 거기에 나름의 이유와 뜻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지만 당장 한 치 앞도 못 본 체 수면 위로 겨우 깔짝깔짝 들이쉬는 숨을 이어가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그런 진리의 조언은 딱히 잘 듣지 않는 두통약 정도의 동의만 얻을 뿐이다.


이번 여행은 두 차례에 걸쳐 총 세 명의 친구들을 만났다. 직장인 친구가 한 명, 사업하는 친구가 두 명인데 서로 지역도 다르고 시간이 안되어 따로 만났다. 이제 슬슬 나이도 들고 다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예전처럼 대여섯 명이 한 번에 모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들어보니 고향에 있는 친구들의 모임도 예전 같지 않았다. 친구들을 만나도 세 명이 모이면 많은 편이고 아예 둘이 만나거나, 다른 무리가 생기기도 했단다. 내심 왜 그럴까 했는데 오랜만에 내려가 만난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 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각자의 상황과 경제력에 따라 달라진 삶의 질과 주 관심사의 온도차’가 이들을 극명하게 갈라놓았던 것이다.


직장인, 삶의 수레바퀴를 쉴 새 없이 돌리는 사람들


첫 만남은 유명 금융 회사의 차장인 직장인 친구와의 커피 타임이었다. 친구가 급하게 외근을 가는 바람에 점심 약속은 조금 늦은 오후 커피 한 잔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반가웠다. 그런데 반가움도 잠깐 이런저런 근황에 대해 얘기하던 친구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다들 그렇듯 직장인들, 특히, 외벌이의 애환은 현대를 살아가는 가장이라면 누구나 짊어지고 이겨내야 하는 평생의 운명이요 해내는 것 외에 별다른 옵션이 없는 소명이다. 그런데 여기에 애를 둘이나 기르고 있으니 앞으로 들어갈 생활비와 교육비는 굳이 묻지 않아도 숨을 턱 하고 막히게 만들 지경일 것이다. 그런데 친구의 이야기를 더 듣자 하니 이게 끝이 아니었다.


친구의 가장 큰 고민은 아직 어린 큰 애의 발병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이라 자세히 밝히긴 어렵지만 이 사실을 처음 들으며 놀랐을 친구의 심정을 생각하니 감히 어쭙잖은 말로 쉽사리 위로를 할 수 없었다. 사실, 이 녀석은 내 친구들 중 가장 멋진 로맨티시스트다. 녀석은 과거 ‘유전적 질환 때문에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 것’이라는 미모의 제수씨를 설득해 결혼에 성공했고, 임신은 힘들 것이라고 했지만 그마저도 이겨내 아이 둘을 낳아 잘 키우고 있던 중이었다. 제수씨도 유전적인 원인으로 삼십 대에 당뇨가 발병해 지금까지 관리 중인데, 자녀의 유전병을 걱정하던 차에 큰 애까지 발병했으니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경제적인 부담이 날로 커가고 있던 차였던 것이다.


“외벌이로 어찌 감당할지.. 일단 버티고 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친구의 상황을 듣고 나의 근황도 들려주며 우리는 한 시간 넘게 회포를 풀었다. 하지만 친구는 근무 중이었던 터라 더 오래 자리를 비울 순 없었다. 그렇게 친구를 다시 데려다주며 슬쩍 한마디를 던졌다.


“참 대단하다. 큰 기업에서 15년 넘게 일하면서 차장 자리를 지키는 것도, 아이 둘을 낳고 키우는 것도, 거기에 큰 애가 아파 마음은 더 약해지고 부담은 더 커질만한데도 이렇게 버티고 일하면서 한 가정을 건사하는 것 자체가 이미 대단한 거다. 물론, 네 속은 썩어 문드러지겠지만, 제삼자인 내 시각에서는 니가 진짜 대단해 보인다. 너 엄청 잘 살고 있다.”


내 진심이 통했던 걸까. 친구가 곧바로 되물었다.


“그렇지? 나 잘살고 있는 거지?”


다른 친구 둘을 만나기 위해 출발하기 전, 그 친구가 한 마디를 툭하고 내뱉었다. (우리 모두는 같은 반 친구였다.)


“걔들 만나면 아마 나하고는 다른 딴 세상 얘기를 할 거다. 잘 놀다 가라.”


무슨 의미일까 했지만 그렇게 난 다시 먼 거리를 달렸다. 이후 나머지 친구 둘과 저녁을 먹다보니 그 친구의 말이 이해되었다. 녀석들이 정말 딴 세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부자라고 고민이 없으랴


우선, 한 명은 건물주다. 학교를 다닐 때는 전혀 잘 사는 티를 내지 않아 몰랐었는데.. 여튼 녀석은 아이 셋 아빠이자 건물주였다. 녀석은 코로나 시국을 거치며 임대료 등 관리 관련 문제로 이미 십 수억의 마이너스를 메꾸면서 백억 원대의 건물을 아예 팔아버릴까 고민하다 세금만 수십억 원이라 아까운 마음에 통임대를 고려하던 중 발생한 한 임차인과의 마찰로 인한 문제 해결이 고민이었다. 해당 임차인만 설득되면 월 수천만 원의 월세가 보장되는 다른 임차인을 들일 수 있다는 게 요지였다.


그리고 다른 친구는 자수성가로 본인의 사업체가 번영하여 알부자가 되어있었다. 참고로 애 둘 아빠다. 자수성가 전에는 연봉 몇 천으로 뭘 해 먹겠냐며 종종 넋두리를 늘어놓더니 성공 이후에는 대략 월 수천만 원을 벌며 포르셰도 뽑고 백화점의 MVG 프레스티지 등급도 되는 등 호화롭게 잘 살고 있는 중이었다.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하면 정말 꿈에도 예상 못했던 성공한 모습이라 부럽기도 했지만 대견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딱히 고민까지는 아니지만, 자신도 충분히 잘 벌고 있고 부자가 되어 살고 있는데 녀석의 주변을 보니 ‘중견기업을 물려받아 부회장이 된 친구, 건물주인 또 다른 친구, 여러 기업체 중 하나를 물려받은 친구’ 등등 월 수입이 1억 원은 그냥 넘어가는 또 다른 레벨들이 있다 보니 ‘도대체 잘 버는 것의 기준을 모르겠다’고 했다. 물론, 심각한 고민은 아니지만.


결국 돈이 문제일까


이쯤 되니 점심때 같이 커피를 마시며 넋두리를 늘어놓던 친구 녀석의 한 마디가 떠올랐다. ‘딴 세상 얘기’ 정말 그랬다. 이 친구들에게 흔한 직장인들의 경제적인 고민은 강 건너 불구경보다 더 먼 얘기지만 그렇다고 녀석들의 삶에 고민과 아픔이 없을까. 그건 아니다. 특정 위치에 올라가면 또 그 위치에 맞는 고민과 갈등은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저 일반적인 직장인들과는 결이 다를 뿐이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서 삶이 던져준 양극단의 모습을 보았다. 삶은 비교와 질투라는 상대적인 욕망으로 가득 차 있기에 여기저기 뜬구름 잡는 얘기 혹은 제 분수를 넘어간 얘기를 듣다 보면 삽시간에 중심을 잃기 쉽다. 따라서 유혹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삶에 대한 절대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빨리 제 그릇의 크기를 인정하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나도 저들처럼 경제적인 걱정 없이 월 수천만 원을 벌고 싶다’


누구나 이런 꿈은 꾼다. 단, 주변의 이야기만 듣고 망상에 젖어 현실의 나를 직시하지 않으면 미래의 자신 역시 그렇게 밝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우선, 현실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작은 것부터 제대로 해내야 큰 일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이는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다. 참, 돈이 뭐길래. 직장인 친구도, 사업가 친구도 표면적으로는 똑같이 '돈'이 고민이다. 하지만 우리는 돈의 속성에 속으면 안 된다. 돈은 수단으로써 매우 중요하니 이를 잘 구슬려야 할 뿐. 돈을 수단으로써 잘 활용하며 삶의 목표를 이루고 싶다면 그저 내 갈 길을 꾸준히 가는 것, 일단 그거 하나면 충분해 보인다.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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