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검은 옷의 여자아이

by Rooney Kim


‘스으윽-‘


어찌나 조용했는지 단도를 칼집에서 꺼내는 소리조차 귓가를 스칠 정도였다.


‘끼이익-‘


자령은 방 뒤쪽으로 난 작은 창을 열고 내부 동태를 살핀 후 창을 너머 방 안으로 들어갔다. 희미한 빛 조차 없는 밤 중이라 도무지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분명 이 집이, 이 방이 두목이 들어간 방인데 말이야.’


자령은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일각이 안 되는 시간 동안 기다렸다. 섣불리 움직였다가 일을 그르치느니 이 안에서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이윽고 방 안의 구조와 이부자리며 집기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불속으로 덩치가 아주 큰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이 보였다. 거대한 산처럼 솟아 있는 몸집을 보니 필시 두목이라고 생각했다. 자령의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빨리 뛰기 시작했다.


‘내 이 날을 기다려왔다. 이제 너도 저 세상으로 보내주마.’


‘쑤우욱- 쑥-‘


평소 소총과 활을 주로 이용하는 자령이지만 한 밤의 두목 집 안에서 총을 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기에 손바닥 만한 단도를 들어 두목의 가슴과 배로 보이는 곳을 두어 번 찔렀다.


‘어..?’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든 자령은 이불을 들쳐 보았다. 자신이 찌른 것이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아, 아니..? 아니 이것은..’


자령은 허망한 마음이 듦과 동시에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불속에 있던 것은 거대한 솜뭉치와 작은 이불이었던 것이다. 만약 자령의 예감이 맞다면 오히려 자령이 산적 두목 근중의 꾀에 걸려든 것이었다. 자령은 다시 사방을 살폈다. 방문 바깥으로 무언가 어슬렁 거리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자신이 들어온 작은 창쪽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직까지 방문을 열고 자신을 덮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빠져나갈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휙- 탁.’


자령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방을 빠져나왔다. 자세를 낮추고 좌우를 번갈아 살핀 후 앞을 바라본 자령은 자지러질 듯이 놀라고 말았다. 그녀 앞에는 정말 산만한 덩치를 가진 근중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령은 놀람과 두려움으로 차마 입을 뗄 수 없었다.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이 날만을 준비하며 기다렸지만 근중이 자신보다 몇 수 앞서서 덫을 놓았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근중의 실물과 덩치는 예상보다 훨씬 컸고 압도적이었다.


“너 내가 아니라고 했는데도 왜 자꾸 나를 따라다니느냐? 네, 아버지는 우리가 죽이지 않았다. 그건 사고였고 아주 유감스러운 일이었지. 그래서 널 측은하게 생각..”


‘휙-'


근중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자령이 단도를 집어던졌다. 깊은 산속 짙은 밤 산적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아닌가.


‘타닥, 탁’


근중이 슬쩍 몸을 틀어 칼을 피하자 자령은 곧이어 그에게 달려들어 몸을 감아 튼 뒤 오른발을 크게 돌리며 얼굴을 강타하려 발차기를 날렸다. 하지만 근중은 왼손으로 가볍게 그녀의 발목을 잡은 뒤 오른팔로 그녀가 넘어지지 않게 가볍게 안았다가 그 앞으로 가볍게 던져주었다. 사실 근거리에서는 그 어떤 사내도 근중을 당하지 못했기에 그녀 또한 그를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소총과 활을 갈고닦은 것이기도 했다.


“내 이런다고 너를 용서할 것 같아? 난 네 말을 믿지 않아.”


그때, 자령의 뒤로 재빠른 걸음의 발자국 둘이 들려왔다.


“아니, 두목, 두목 몸은 괜찮소? 수상한 소리가 들려 두목 방에 갔는데 침입한 흔적이 있더라고요.”


“저 놈은 누구요? 두목을 해치려던 자가 아니오? 확 죽여버릴깝쇼?”


근중의 오른팔인 장태와 산적단에서 가장 날렵하고 손이 빠른 물포가 어느새 자령의 뒤로 다가와 엄포를 놓았다.


“됐다. 별 일 아니다. 들어가 봐. 이 아이도 이제 집에 가서 다시는 오지 않을 테니. 해하지 말고.”


“닥쳐. 난 오늘 아버지의 복수를.. 억..”


순간, 물포가 자령에게 달려들어 목 뒤쪽의 혈자리를 깊게 짚자마자 자령은 쓰러지고 말았다. 멀리서 수 십의 사람들이 다가오는 듯 웅성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점점 의식이 사라지는 듯 자령의 눈이 감기고 있었다.


“장태야, 얘가 걔다. 다른 애들이 보기 전에 들어다 산 뒤쪽 안전한 곳에 보내줘라. 범이 물어가면 안 되니 되도록이면 민가 입구 근처로. 건방, 수종이랑 같이 가거라. 그리고 너도 몸조심하고. 물포야, 애들 오면 쉬게 해 줘라. 오늘은 뭐 건진 거나 사냥한 것 없어도 다들 수고했다고 하고, 알겠지?”


“네, 두목.”


곧 물포는 야간 일을 하고 돌아온 무리들에게 갔다. 하지만 장태는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리고 있었다.


“왜 그러냐?”


“형님.. 저기, 저 아이 말입니다. 솔직하게 다 말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사실, 우리에겐 눈엣 가시도 안되지만 혹시라도 우리가 방심한 사이에 저 아이가 형님을 다치게 해서도 안되고 또 사실을 아는 것이 저 아이에게도..”


“장태야, 내 전에도 말했듯이 사람일은 모르는 게 약인 것도 많잖아? 그 일은 우리도 쉽게 감당하기 힘든 것인데 하물며 저 어린 여자 아이가 뭘 알고 어떻게 대처하겠냐. 아마 길길이 날뛰며 또 복수한다고 하겠지. 안된다. 저 아이에게 옳지 않은 방법이야. 제 아비라도 그랬을 거야.”


“...네, 형님.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우와, 아재, 여기 엄청 맛있다요. 야호- 너무너무 좋구만요.”


그래도 산골 마을에서 한참 내려와 강을 목전에 두고 평지에 있는 마을이라 그런지 내외주점하나 정도는 있었다. 선준은 행장이가 고기를 먹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에 아주 오랜만에 마음이 놓였다. 비록 본인도 허리춤에 상처와 간 밤의 무력한 모습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쩐 일인지 아주 오랜만에 이렇게 마음을 놓고 푹 쉬었다.


“저기, 주모, 계시오? 뭐 하나만 좀 여쭈겠소.”


곧 안방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무슨 일이 신지요? 아까 전은 주셨는데.”


“아, 혹시, 성주사를 어찌 가는지 아시오? 충청도라는 이야기만 듣고 와서 말입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아는지 모르는지 속 시원하게 대답은 하지 않고 쭈뼛거리며 우물쭈물 서 있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그때 쾅-하고 안방 문이 열렸다.


“뉘신대 거길 가려하시우. 웬만하면 가지 마시우. 험한 꼴 나거나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그냥 조용히 하던 일이나 하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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